[기획]태평무 보유자 지정 보류로 바라본 무형문화재, 무엇이 문제인가?
[기획]태평무 보유자 지정 보류로 바라본 무형문화재, 무엇이 문제인가?
  • 이은영 기자/박우진 인턴기자
  • 승인 2017.02.0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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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과정 문제, 권력화된 보유자로 인해 무형문화재 폐지 주장까지 나와

지난해 8월, 중요무형문화재 92호인 태평무 보유자 지정이 보류된 후 이를 둘러싼 무용계 내부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태평무 보유자 지정 문제는 지난해 1월 21일, 태평무 명예 보유자였던 강선영이 별세한 후 새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 발생했다.

현행법상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인간문화재가 공석이 될 경우 기존 보유자가 준보유자인 전수교육조교 중에서 후임 보유자를 정하거나 국가에서 지정하게 되는데 강선영 보유자가 전승자를 지정하지 않아 문화재청이 새 보유자를 선정하게 됐다.

▲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이현자 태평무 보유자 후보

다음날인 22일, 문화재청은 양성옥 한예종 교수를 태평무 보유자로 선정했는데 이에 대해 유력 후보였던 이현자 후보는 1인 시위와 함께 뜻을 함께한 무용계 인사들과 공동 성명 발표 등을 통해 반발했고, 결국 보유자 선정 후, 7개월만인 8월 26일,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보유자 인정을 보류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은 무용계 요청에 의해 면담을 실시해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듯 했으나 끝내 묵살했고, 이들이 요구한 토론회 역시 제한된 인사가 참여하는 속에서 이루어진 형식적 토론회로 진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투명하고 객관적이지 못했던 태평무 보유자 선정

이번 사태에 대해 이현자 후보 측이 반발한 이유는 크게 전형보존의 기준, 평가항목과 방식 등에 있다.

문화재청은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 당시 새로 지정된 무형문화재법에 의거해 기존의 원형 보존이 아닌 전형 보존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원형 보존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고, 전형 보존은 유네스코의 방식으로 문화재의 핵심적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면 무형문화재로 인정하는 것으로 무형문화재 해석 범위를 넓게 본 것이다.

무형문화재법은 지난해 3월 시행된 법률로 기존 문화재보호법에서 독립하여 무형문화재 만을 위한 법으로 마련했고, ‘무형문화재위원회 별도 설치’,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 지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데 특히 기존의 원형 유지 원칙 대신 전형 유지 원칙을 규정해 무형 문화재 범주를 확대했다.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은 양성옥 후보자를 태평무 보유자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양성옥 후보자가 태평무 전수교육조교이지만 본래 서양춤을 한국화한 신무용에 주력한 사람이기에 태평무 보유자로 적절치 않다는 것이 이현자 후보 측의 주장이다.

▲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좌측), 이현자 태평무 보유자 후보(전수교육조교)

평가항목에 있어서 리더십, 건강상태 평가 등의 항목이 있는데 이러한 항목들은 주관적일 뿐 아니라 고령의 예술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심사위원 중 특정 단체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점, 일회성 실기 평가, 심사위원 사전 유출 등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평가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주목 된다.

무형문화재 제도, 문제는 없는가?

그러나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문제는 태평무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며 무형문화재 제도 자체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무형문화재는 1962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되었고 그동안 전통문화 보존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태평무 선정과정에서 드러나듯 보유자 선정 문제, 무형문화재가 문화 보존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최근에는 문화계 내부에서도 무형문화재 폐지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 문제 중의 하나는 심사위원들이 한번의 실기 평가로 후보자를 평가하는 것인데 이는 보유자 후보들의 여러 차례 활동들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일본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보유자 선정 심사위원에 준보유자인 전수교육조교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이수자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치 제자가 스승을 평가하는 것으로 심사 과정에 공정성, 전문성에 있어서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

그 외에도 전승의지, 건강상태, 리더십 등의 항목을 점수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량화 논란이 있다.

투명하지 못한 심사과정도 늘 지적되는 문제이다. 태평무 보유자 선정 뿐 만이 아니라 지난 2014년 일본식 기법을 사용해 무형문화재 지정이 철회된 채화칠장의 경우에도 당시 심사위원 대다수가 특정 학교 출신들로 구성돼 논란이 됐다.

보유자 선정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소수의 심사위원이 짧은 검증 기간을 통해 평가하고, 명확하지 못하고 부적당한 기준을 사용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서 관련 분야 전문가의 폭을 넓히고, 일회성 심사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심사로 변경하고, 관계자들 간의 협의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무형문화재 제도는 우리의 전통문화 보존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 중에서도 편차는 심하게 존재하고 있어 과연 무형문화재 제도가 효용성이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판소리, 태평무, 경기민요 등의 인기 종목에 비해 전수조교와 이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줄타기를 비롯해 다수의 공예 종목은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있는데 현재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취약 종목 지정을 통한 약 39만원의 지원금 지원이 전부이다.

▲ 보유자 지정 문제를 겪고 있는 무형문화재 제 92호 '태평무'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반면 인기 종목에서는 태평무 보유자 지정 문제처럼 보유자 지정 문제를 놓고 파벌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이 전통문화 보존에 기여하기 보다는 보유자에게 특권만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면 1년에 1회 이상 기능을 공개하고 전수교육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지만 매달 전승지원금으로 130만원을 받게 되고, 공개 행사 비용, 전수 장학금 지원 등 많은 혜택을 받는다.

이외에도 해당 문화재 전수 과정에서 교육비, 의상비 등의 명목으로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혜택을 받는 등 인간문화재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살풀이 보유자 지정도 1년 째 표류, 무형문화재 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

무형문화재 제도가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취약종목에 대한 지원 강화, 인기 종목들에 무형문화재 지정 해제 검토 등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문화재 관련 사안들을 해결해야 할 문화재청은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태평무 문제에 있어서는 후보자 선정을 공표했다가 논란이 되자 다시 보류하는 모습을 보였고,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한 해결 노력의 부재, 선정 절차 논란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 등도 나타났다.

▲ 보유자 지정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살풀이춤'

문화재청은 현재 태평무 보유자 지정을 보류한 이후,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보유자 지정을 예고했던 승무나 살풀이춤에 대해서는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무형문화재에 대한 논란은 지난해 9월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많은 전문가들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성기숙 한예종 교수는 태평무 논란을 언급하면서 “심사위원 사전유출, 제자가 스승을 심사하는 불합리한 심사방식등의 문제를 문화재청이 시정하지 않고 심사를 강행한 것이 석연치 않다. 공정성과 합리성 검토를 문화재청이 소홀히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심사 기준에서 ‘리더십 평가‘,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일회성 실기 경연으로 마치 콩쿠르 방식으로 국무(國舞)를 평가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비판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백현순 국립한체대 교수는 “문화재청 기준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우리 심사위원은 기준에 맞춰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 심사의 문제가 있었다면 심사 전에 말이 없다가 심사 결과 발표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집어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보유자로 인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서 “심사에 대한 비판도 좋지만 이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내놓아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 나선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날 토론의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무형문화재 심사를 ‘나가수(나는 가수다)식 심사’라고 비판하면서 문화재청의 무책임이 결국은 태평무 보유자 논란의 주 원인이라는 주장에 동의했다.

명예보유자 제도 도입 목소리도

한편 일부에서는 고령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명예보유자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아직은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이고, 이 제도 또한 쉽사리 받아들여질 지는 의문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문화재청은 태평무 뿐 아니라 무형 문화재 선정 과정과 무형 문화재 제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숙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들 역시 무형문화재 제도 취지에 맞게 해당 문화재 기능의 전승과 유지에 힘써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문화재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지원하면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