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고전을 넘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온 '이솝우화'
그리스 고전을 넘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온 '이솝우화'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2.0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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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산울림 고전극장' 1탄, 13편의 우화와 우리 전통악기, 춤이 어울러져

산울림 소극장이 매년 첫 레퍼토리 기획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산울림 고전극장'이 올해도 막을 올렸다. '산울림 고전극장'은 산울림과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라는 부제로 그리스 고전을 재해석한 젊은 연출진의 극이 선을 보인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고전극장의 첫 문은 공상집단 뚱딴지의 <이솝우화>가 열었다. <이솝우화>는 우리에게 '이솝우화'로 잘 알려진 우화 모음집 중 13개의 에피소드를 모으고 여기에 우리 전통 악기의 음악과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곁들여 연극이면서 동시에 무용극을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소극장 무대로 펼쳐진다.

▲ 2017 산울림 고전극장 1탄 <이솝우화> (사진제공=소극장 산울림)

봄날, 굶주린 네 명의 여우는 새끼 양을 발견한다. 여우들은 새끼 양을 잡아먹으려하지만 이미 여우에게 정이 든 새끼 양을 보면서 먹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새끼 양이 물에 빠지는 일이 벌어지고 양과 친해진 한 마리 여우는 새끼 양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극은 '봄날의 여우, 여름의 바다, 가을의 바람과 별, 겨울의 귀환'으로 새끼 양을 찾으러가는 여우의 여정을 그린다. 고래를 낚으려는 어부 삼형제, 외톨이 물총새, 피가 필요하다는 모기, 햇볕에 타죽기 일보 직전임에도 고민만 하는 개구리, 새로운 왕을 맞은 늑대들 등이 등장하고 중간중간 다양한 전통 악기를 배우들이 직접 치고 그에 맞춰 역시 배우들이 춤을 추고 동작을 한다. 

황이선 연출가는 "이솝우화의 에피소드를 모으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텍스트로만 보면 사실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면서 자칫 개연성이 없을 수 있는 부분을 음악과 춤으로 채웠다고 밝혔다. 이것이 이 연극의 '신의 한 수'가 됐다. 

특히 새끼 양을 보는 관객들은 '어머'를 연발하는데 바로 꼬마 배우가 양을 연기하기 때문. 야무지게 대사를 하는 꼬마 배우의 귀여움이 이 연극의 '히든 카드'인 셈이다. 이 배우가 여우들과 함께 덤블링까지 해내니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새끼 양과 여우의 어울림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사진제공=소극장 산울림)

<이솝우화>를 보면 이 연극의 원작이 그리스 고전이 아닌 우리의 고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고 우리 무용극을 보는 듯한 연출 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연극이 전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이런 착각을 낳는 가장 큰 이유가 될 듯 하다.

실제로 이번 고전극장에 선보이는 4편의 연출가들은 모두 한결같이 "우리의 현실과 일치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수천년 전 그리스의 희곡, 세계 연극사의 기본이 된 그리스의 연극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 연극들이 왜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지를 알려줌과 동시에 우리가 왜 고전을 지금 읽어야하는지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특히 극 중 '늑대 에피소드'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새로운 왕은 앞으로 사냥한 것을 똑같이 나누자는 맹세를 하자고 한다. 그러나 새끼 늑대들이 덫에 걸려 허둥지둥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늑대들은 새끼들을 구하자고 하지만 왕은 "새끼는 또 낳으면 된다"며 그들을 구하지 않으려한다.

게다가 새끼 늑대들이 위험에 처한 순간에도 왕은 사냥을 하고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이미 극을 본 이들, 혹은 글을 통해 이 상황을 이해한 이들에게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 전통 악기와 춤이 어우러진 <이솝우화> (사진제공=소극장 산울림)

이렇게 되면 왜 <이솝우화>가 '겨울의 귀환'을 마무리로 정했는지 이해가 간다. 극이 전하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무엇이 정말로 자연스러운 것일까? 여우가 양을 잡아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극은 이보다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솝우화>는 그리스의 우화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화가 아닌,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는 '우리 이야기'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산울림 고전극장'은 이후에도 소포클래스의 <안티고네>를 각색한 <카논-안티고네>, 역시 소포클래스의 <아이아스>를 각색한 <아이, 아이, 아이>,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헤카베>를 차례로 선보인다.

이로써 4년간 고전극장을 통해 선보인 작품은 총 23편. 임수진 극장장은 앞으로 100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연극의 기원으로 내려가며 고전의 힘을 전파하고 있는 산울림 고전극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이솝우화>는 오는 12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