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까지 손을 뻗힌 '한한령', 무대응이 상대응인가?
순수예술까지 손을 뻗힌 '한한령', 무대응이 상대응인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2.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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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붐은 불법 다운로드라도 볼 수 있기에 가능,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예술계

최근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방영,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광고 출연을 금지한 일명 '한한령(限韓令)'의 여파가 대중예술을 넘어 순수예술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 '문화 교류'의 큰 타격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7일 중국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의 공연을 전격 취소했다. 당초 김지영은 오는 4월 중국 상하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설 예정이었지만 이날 상하이발레단으로부터 출연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립발레단 측은 "발레단에서 공식 초청을 한 사안인데 갑자기 공연이 불발되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 상하이발레단으로부터 갑작스럽게 공연 취소 통보를 받은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사진제공=국립발레단)

앞서 지난달 24일 소프라노 조수미는 자신의 SNS에 "저의 중국투어가 취소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들의 초청으로 2년 전부터 준비한 공연인데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습니다. 국가간 갈등이 순수문화예술분야까지 개입되는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큽니다"라며 갑작스럽게 중국 공연이 취소됐음을 알렸다.

또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3월에 예정됐던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돌연 취소됐다. 중국이 비자를 내주지 않은 것이다. 이들 모두 급작스럽게 공연 취소가 통보됐고 비자조차 내주지 않아 중국 공연이 불발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예술계에서는 그동안 대중예술계의 문제인 줄만 알았던 한한령이 순수예술계로까지 번졌고 결국 사드 배치 결정이 예술계의 교류까지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물론 '사드 때문'이라고 직접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전후 상황을 지켜보면 한한령의 중심에는 결국 사드 배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한국 TV드라마 <도깨비>의 인기가 거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 공유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검색어 순위 1위는 물론 '남신(男神)'으로까지 불릴 정도다.

여기에 중국의 연예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드라마에서 공유가 가슴에 검이 찔린 채 살아가는 모습을 흉내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물론 공유는 한한령으로 인해 김수현이나 송중기처럼 중국에서 팬미팅을 하거나 광고를 찍지는 못한다.

▲ 한한령을 뚫고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 하지만 그것은 '불법 다운로드'였기에 가능했다

<도깨비>는 어떻게 한한령을 뚫었을까? 정답은 '불법 다운로드'였다. 한한령이 일었지만 중국인들은 국내 방송 직후 자막을 입혀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퍼뜨리면서 '도깨비 붐'은 중국을 강타했다.

TV에서 방영됐던 <별에서 온 그대>나 <태양의 후예>의 인기에 맞먹는 <도깨비>의 인기를 보면서 많은 이들은 '결국 정치도 문화를 못 이겨'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드라마나 예능은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라도 중국인들이 볼 수 있기에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순수예술계는 '어둠의 경로'조차도 없다. 공연 자체가 불허가 됐기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완전히 없어졌다. 중국인들은 백건우의 연주를, 조수미의 노래를, 김지영의 발레를 볼 수가 없다. 공연 자체를 못 보니 '붐'이 일어날 일도 없다. 

게다가 중국 예술인들과의 협업을 통한 교류의 기회까지 무산되면서 해외 활동을 통해 길을 만들려했던 한국 문화예술계의 구상에 큰 타격이 일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 안에서는 '블랙리스트 검열' 문제로 속썩고 밖에서는 한한령 문제로 속썩는 상황을 지금 한국 문화예술계가 맞고 있다. 정치가 문화예술계에 암으로 작용한 사례를 다시 만들어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한한령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자세는 여전히 '무감각, 무방비'다. 도리어 이들은 '<도깨비>를 봐라, 한한령도 별거 아니잖아'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무대응이 상대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1%의 예만 보고 99%의 불안요소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1%마저 붕괴된다.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의 숨통을 틔우기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