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기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리 정가에서 마음의 여유 찾기를”
[인터뷰] 김영기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리 정가에서 마음의 여유 찾기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2.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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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에 어려움 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알릴 것, 문하생 10명만 있으면 된다”

‘청산~리~ 벽계~수야’. 혹시 이렇게 시조를 부르던 옛 어른들의 모습을 기억하는지? 유명한 시조시에 가락을 붙인 시조창은 ‘가사’와 ‘가곡’으로 발전했고 이들을 한데 모아 ‘정가(正歌)’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여유로운 박자로 이루어진 정가는 문화가 꽃을 피우던 조선 후기에 빛을 발했지만 일제 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서양 음악에 밀려 차츰 뒤로 밀려났다.

더욱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악 장르보다 느린 박자로 인해 방송에서도 제대로 들려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악을 전공한 이들도 정가에 대한 지식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 가곡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가곡이란 이름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 또한 정가 부흥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 김영기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그래도 정가가 꺼지지 않는 이유는 정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영기 보유자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노래’라고 정가를 평가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서울 만리동고개 길에 위치한 그의 전수관이었다.

그는 정가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올해 서울문화투데이 국악부문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김영기 보유자의 따뜻한 웃음과 함께 정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궁금하다 

얼떨떨하고 깜짝 놀랐다(웃음). 국악대상 같은 것은 한 해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에게 주는 상이잖나. 그동안 하던 일만 계속 했고 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을 준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이 꾸준히 활동해온 문화인들을 격려하고 치하하기 위해 주는 상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99년도에 국악대상을 받은 후 콩쿨 같은 것에 나간 적이 없어서 상받을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상을 받았다. 오랜만에 상을 받으니까 정말 기쁘더라(웃음).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해 봄과 가을에 각각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반응이 어땠는지?

지난해 4월 덕수궁 정관원 뜰에서 야외공연 '가비에 앉은 노래'를 열었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정관원이라는 곳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틔여있는 곳이기도 하잖나. 고종 황제가 상궁들과 어울려 공연을 즐기고 고종 황제가 가비(커피)를 좋아한 것을 따서 공연 제목과 장소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관객들이 많이 왔고 지나가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많은 관객들과 정관원 뜰에 선 나무들이 눈앞에 보이니 자연과 함께 어우러졌던 풍류 음악이 그 속에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도 역시 정관원에서 '가비에 앉은 노래'를 하려고 한다. 5월로 예정하고 있다.

그리고 11월에는 서울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戀慕之情(연모지정)‘어룬님 오신 날 밤에'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을 가졌다. 이 기획전에도 많은 분들이 와 주셨는데 가곡은 거의 사랑 노래가 많다. 그런데 조선시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녀의 사랑보다는 만나지 못하는 기다림을 표현한 것이 많다. 그 주제를 가지고 기획전을 했다.

공연을 하면서 가곡을 좋아하는 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지만 기본 매니아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화가 되려면 늘 음악이 들려져야하고 어린 학생들이 많이 접해야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 하지만 국악을 듣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처음에 퓨전을 듣던 이들이 오리지널을 듣고 산조에 익숙해지다보면 가곡, 정가에도 깊이 빠져들 것이다. 국악에 익숙해지는 단계가 필요할 것 같다.

정가라는 것이 ‘가곡, 가사, 시조’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들의 정확한 차이는 무엇인지

가곡과 시조는 모두 시조 시를 가사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가곡은 반주 형식이 있는, 형식을 갖춘 노래고 시조는 가곡보다 선율이 단순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이 있는 장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가사인데 현재 12곡이 전해지고 있으며 다양한 곡마다 맛이 다르다. 이들을 모두 합친 것이 바로 정가다.

일반적으로 옛 어른들이 시조창을 하시던 박자에서 조금 더 늘어난 것이 가사고 가곡은 11박자까지 늘어난다. 가령 '청산리 벽계수야'를 부른다고 하면 '청산리'를 뽑는데도 박자가 다르다.(기자 주: 그는 실제로 시연을 하면서 박자의 차이를 알려주었는데 이 소리를 지면에 싣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널리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가사의 경우 박자가 늘어나니 시간이 길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시조로 3~4분 정도 걸리는 창을 가사는 6~7분이 걸린다. 시간이 길기 때문에 가사의 대중화가 어렵다. 그렇지만 가사를 한 번 들으면 푹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서양 음악으로 치면 클래식이라고 할까, 품격이 있는 노래다. 

시조는 특별한 악기 없이 무릎 장단만 쳐도 이루어지지만 가곡은 6개 악기가 기본으로 있어야하는데 여기에서 문학과 음악(실내악)이 만난다. 우리나라 음악에서 노래와 기악이 같이 가는 것은 가곡이 유일하다. 가곡은 아예 반주가 짜여져있다.

형식미를 추구한 것이 가곡, 형식은 있지만 약간의 자유로움이 있는 가사, 시를 전달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시조, 이를 모두 합친 것이 정가.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정가의 매력은?

방금 '청산리'하면서 느꼈겠지만 말을 길게 늘여서 부르지 않나. 우리나라의 대표 시조집이 <청구영언>인데 영언(永言)이라는 말 자체가 바로 가곡을 뜻한다. 길게 늘여 부르는 순간 선율이 유장하게 흐를 때의 아름다움, 그러면서도 담백한 맛이 나는 게 정가다. 저는 이 때문에 정가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듣게 되면 저절로 품격이 느껴질 것이다.

▲ 김영기 보유자는 정가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노래'라고 칭했다.

지난 번 수상 소감을 보니 ‘산업화 이후 정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조선 후기에 정가가 성행했다. 그러다가 일제 시대가 되면서 우리 음악이 전체적으로 축소됐다. 일제 시대에 음악 교육을 받은 이들은 일본 및 서양 음악을 접했고 새로운 시대에 맞춰야한다면서 서양식 음악에 우리 가사를 붙여 음악을 만들었다. 여기에 일제의 문화 말살이 있었고 광복과 전쟁을 거친 후에는 서양 팝송이 대세가 되면서 국악이 라디오에서마저도 점점 들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가는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가 있어야 멋을 즐길 수 있는데 새마을운동이 확산되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지고 각박해졌다. 여유있게 무엇을 즐길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과거 시조를 즐겼던 분들이 점점 줄어드는 점도 있다. 시조를 즐기시는 분들은 물론 직접 부르기는 어려워도 가사나 가곡에 관심을 보일텐데 이런 분들이 점점 사라지고 그 뒤를 잇는 이들이 나오지 않으니 정가가 발전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정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정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아버지께서 국악을 좋아하셔서 저를 스승인 김월화 선생님에게 데려다주셨다. 그분이 워낙 조신하시고 단아한 이미지셨는데 정갈한 선생님의 모습을 꼭 빼어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국악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판소리를 배우기도 했는데 발림을 하는 게 참 부끄럽더라.

지금은 어린 명창들이 판소리를 잘 해내지만 저는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어느 날 정가를 접하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제 10대 어린아이가 느린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라고 다들 의아해했는데(웃음) 그냥 저는 그 노래가 재미있고 좋았고 저에게 잘 맞았다. 정가가 저와 인연이 정말 깊은 듯하다(웃음).

배울 때는 몰랐는데 대학에 가서 친구들을 보니 국악 자체의 폭이 너무 작고 정가는 보이지도 않았다. 정가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소외감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국악을 공부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알 줄 알았는데 이들조차 정가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사명감이라기보다는(웃음) 선생님들께서 정가가 굉장히 귀하고 독보적인 것이기에 지켜야한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그저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도 이 아름다운 음악을 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지 의문이었다.

사실 꾸준히 들어야 정가를 알 수 있는데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없다. 라디오나 TV에서 국악 방송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이 국악 방송을 찾아서 들어야하고, TV를 봐도 정가보다는 민요나 판소리에 치중한 것 같다.

정가가 길고 느리다보니 아마 방송국 입장에서는 채널이 돌아갈까봐 안하는 모양인데(웃음), 사람들이 즐겨듣는 프로그램에서 전체까지는 못 들려줘도 맛보기로 정가를 살짝 들려준다면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가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책 속에 묻혀있던 작품들을 새롭게 가사로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시조시를 공모해 가곡에 얹어 부른 적도 있다.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의 시에서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꼭 시조시가 아니더라도 현대시를 정가로 불렀고 실제로 2014년 '꽃을 노래하다' 공연에서는 시조와 비슷한 현대시를 정가로 선보였다. 올해 정기공연에서는 피아노, 플룻 등과의 협연도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고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보유자 입장에서 너무 확 바꾼다는 점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가곡의 본 모습은 그대로 가져가려고 한다.옛 정제무 속에 '창사'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가곡과 비슷하다. 그래서 춤을 추면서 창사를 보여주는 것도 생각 중이고 '동동' 같은 고려 가요를 가곡으로 만드는 생각도 하고 있다. 

콜라보도 물론 생각하고 있다. 아까 ‘조심스럽다’는 말을 했는데 격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가곡의 아름다움을 벗어나지 않으면 얼마든지 멋진 곡으로 새롭게 나올 수 있고 어설픈 이들보다는 저같이 정가를 깊이 이해하는 이들이 해야 격이 지켜진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현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작업은 필요하다. 확신이 있으면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정말 잘 맞는 작곡가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울 뿐이다. 

문하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들은 항상 노래는 민족의 기운이 내려온 것이기에 자긍심을 가지고 지켜내라고 가르치셨다. 정가(正歌)를 그대로 풀면 '바른 노래'잖나. 마음이 바로서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문학, 음악, 예술 속에서 우리를 정화시키는 것이 정가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기교는 정말 전보다 좋아졌는데 여기에 바른 마음을 항상 강조한다. 근간이 중요하지 꾸미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바른 마음으로 음악을 대해야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국악부문 문화대상을 수상한 김영기 보유자

2010년 가곡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정말 감격스러웠을텐데

가슴 벅찼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주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정말 기뻤다. 우리가 우리 국민들에게 힘들게 예술성을 알리고 있었는데 그 예술성과 노력을 알아주니 뿌듯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자랑스럽고 그렇기에 이 유산을 더 뿌리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가가 갈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가장 큰 아쉬움이 있다면   

전수자가 없다. 인문계는 거의 전무하고, 국악고나 국악예고조차도 한 학년에 3~5명 정도밖에 안 된다. 타 장르에 비해 숫자가 적고 경쟁력이 없다. 거기에 가사나 시조 쪽으로 또 나뉘게 되면 또 흩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전수관의 경우는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문하생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리 개방을 해도 오는 사람이 없다. 정말 10명만 됐으면 좋겠다. 지금 국립국악원마저도 초급반이 새로 편성되지 않을 정도로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강습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정가를 하는 이들의 현실도 좋지 않다. 학력은 높지만, 돈은 제일 못 벌고, 그러면서 공연하면 가장 돈이 많이 든다. 6명의 연주자가 기본으로 있어야하니까.

결국은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잘 가르칠 자신도 있다. 지금 아이들 교육도 전래동화나 장단에 집중하지 정가는 하지 않는데, 물론 어린이에게 벌써 느린 정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아이들은 흥미가 생기면 흉내를 내지 않나(웃음). 아이들에게 정가를 들려주고 싶고 가르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들어야 앞으로 정가를 들을 때도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나 어른들은 정가를 들을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꼭 정가를 들려주고 싶다. 일반인 문하생도 10명을 채웠으면 좋겠고(웃음).

올해 계획은 

5월 공개 공연, 가을 기획 공연을 하고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도 2~3회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 전수관 옆에 조그만 공연장이 있는데 자연 그대로의 느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한옥에서 음악을 들으니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다. 매월 셋째주 일요일 오후 4시에 월간 상설공연을 하는데 오셔서 정가의 느낌을 같이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왜 우리의 정가가 지켜져야하는지를 대중들에게 알려달라

노랫말이 우리의 멋을 살린 시조고 그 아름다운 시조에 여유로운 장단을 입힌 것이 정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몰랐고 결국 우리의 자산을 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정가는 바로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아름다움이 지켜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