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수진 산울림 소극장 극장장 “추억의 소극장 넘어 모든 이와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인터뷰] 임수진 산울림 소극장 극장장 “추억의 소극장 넘어 모든 이와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 박우진 인턴기자
  • 승인 2017.02.1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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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극장 통해 많은 이들이 고전에 관심보여 기뻐, 더 많은 분들 찾아주셨으면”

1985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임영웅 연출가가 세운 뒤 30여년 동안 대한민국 대표 소극장으로 자리잡은 '산울림 소극장. '고도를 기다리며', '위기의 여자' 등으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곳은 한때는 서울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 중 하나였으며 이 곳에서 공연을 본 이들이 연극 배우를 꿈꾸었던, 처음으로 연극을 보고 연극의 세계에 매료됐던 추억의 장소였다.

이 곳은  현재 임영웅 연출자의 장녀 임수진 극장장이 운영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자리를 맡게 된 임수진 극장장. 연극을 전공하지 않은 그에게는 당연히 극장 운영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 임수진 산울림 소극장 극장장

결국 그의 선택은 ‘소극장’을 넘어선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연극 공연 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산울림 고전극장’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산울림은 이제 ‘대표 소극장’의 자리를 다시 다지고 있다.

그와 인터뷰를 나눈 곳은 산울림 소극장 건물 2층 '소극장 갤러리'. 지난해 새로 태어난 곳이다. 여러 작가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 그 곳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올해 산울림 고전극장 첫 공연인 '이솝우화'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관객들의 반응이 우선 궁금하고 '산울림 고전극장'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이솝우화' 를 보신 관객 분들이 대부분 작품을 좋아하셨고,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다. 흔히들 고전이라고 하면 ‘꼭 읽어야 하지만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가장 고전스러운 것이 현대적이고 보편적이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시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3년부터 고전극장을 시작했다. 때마침 영화 '레미제라블'이 흥행하면서 사람들이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계기가 됐다.    

산울림 고전극장의 특징은 젊은 극단의 적극적인 참여다. 무대에 오를 극단과 작품 선정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눈여겨 보는 부분은? 

산울림 소극장하면 ‘고전적인 정통극’의 이미지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고전을 젊은 극단들의 시각에서 다룬 연극을 올리면 좋다는 생각으로 젊은 극단을 참여시켰다. 초기에는 청년단, 양손프로젝트, 작은 신화 등 몇몇 극단들과 함께 했는데 많은 극단들이 생기면서 여러 극단들이 자신들의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하면서 최근에는 공모로 극단을 선정하고 있다. 

우선 공고를 낸 뒤 신청을 하면 각 극단에서 여름 이전에 팀을 구성한다. 이때부터 매달 1회 이상 팀원들과 만나서 진행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언을 해준다. 극단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간섭은 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진정성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하는지를 살펴본다.    

산울림 고전극장을 매년 1~2월에 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학생들을 고려한 것이 크다. 학생들에게 고전은 ‘숙제’로 다가오기에 내용이나 의미가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연극을 편히 볼 수 있는 방학철 1~2월에 '산울림 고전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 절찬리에 공연된 '산울림 고전극장' <이솝우화> (사진제공=산울림 소극장)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는데 그 동안의 성과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을 본 관객 분들이 '고전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갖고 직접 읽어보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연극을 통해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100권을 목표로 했는데 올해로 총 23작품을 했으니 4분의 1을 채운 셈이다. 앞으로 15년 정도 걸릴것 같지만 100권을 채워보고 싶다.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기획자, 배우, 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산울림 고전극장이 모두가 만족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성과라고 본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보다 많은 관객들이 와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많은 관객 분들이 연극을 영화보다 어려워 하시는 것 같다. 공연을 하는 모든 단체들이 하는 말이지만 국가나 서울시에서 지원을 해주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점도 아쉽다.   

극장장이 되신 이후 연극 외에도 다양한 장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신데 어떠한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소개를 부탁드린다. 

산울림 소극장 갤러리, 편지콘서트, 백스테이지, 판페스티벌, 연극 아카데미 등을 꼽을 수 있다. 갤러리(건물 2층)에서는 여러 공예품과 미술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물품 구매 등이 사실 큰 일은 아니고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지만 이것이 다른 문화예술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편지콘서트’는 음악가를 선정해 그들의 삶에 대해 손편지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다룬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그들의 곡을 라이브 연주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보다 실감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백스테이지’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평소 접하기 어려운 무대 뒤 대기실을 비롯해 극장 곳곳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고 ‘판페스티벌’은 다양한 장르의 젊은 예술가들의 기획 공연 무대로 지난해에는 판소리, 독립영화, 현대무용, 인디 음악을 선보였다. 

‘연극 아카데미’는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작년에 시작한 연극 아카데미는 입시 목적이 아닌 일반인들이 연극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를 통해 많은 분들이 연극에 대한 꿈을 키우고, 연극 인구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연극 외에 다른 분야로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임영웅 연출가)의 건강이 좋지 못하셔서 연극 전공이 아닌 제가 갑작스럽게 극장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께서 잘 꾸려오신 소극장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소극장을 세우실 때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연극 공연 외에도 클래식, 재즈, 판소리,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을 소극장에서 기획하셨던 것에서 답을 얻어 여러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게 됐다.    

연극 비전공자로서 극장장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사실 어쩔 수 없이 맡은 부분도 있다(웃음). 쉽지 않았지. 하지만 연극, 미술 같은 분야도 결국은 폭이 넓기에 전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부분 때문에 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지난해 개관한 '소극장 갤러리'

산울림 소극장 하면 ‘임영웅’,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임영웅 연출가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고 올 4월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되는데 이번 공연의 특성이 있다면?

딱 하나 짚어서 말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겠지?(웃음)  아버지께서 극장 운영 등에 대해 말씀하시지는 않으신다. 사실 저는 연극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의 연극을 봤던 기억이 많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나 환경이 극장을 운영할 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번 공연은 공연 자체의 특징보다도 ‘아카이브 전시’가 열린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하다. 공연 기간동안 갤러리에서 저희 소극장이 소장하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 대본, 의상, 소품, 사진, 포스터 등 자료들이 전시된다. 막 연극을 보신 분들, 또는 이전에 연극을 본 이들이라면 정말 반가울 것이다. 

많은 분들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좋아해주시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연극인의 꿈을 키웠다는 분들도 계셨다. 심지어 부모님 손잡고 온 아이들도 이 연극을 좋아한다. 관객들이 연극을 보면서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몇십년간 사랑받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산울림하면 또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여성주의 연극으로 중장년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주의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당시 연극의 주 관객은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연극을 보러온 여대생들이 결혼을 하면 극장과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런 분들, 중장년 여성들에 맞는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여성들의 삶을 다룬 연극을 했는데 이것 역시 성공했다.   

관객 유치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텐데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지

젊은 관객들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젊은 관객들은 SNS 홍보 활동이나 극장 주변 대학교 학생회와 공동으로 대학생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마포 구민들은 마포구 문화재단, 마포구 행사 참여와 함께 마포구 주민 할인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아지면 '경의선 책거리'에서 야외 낭독회나 공연들을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 임수진 극장장은 산울림 소극장을 '복합예술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시가 소극장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소극장의 극장장으로서 이번 소극장 지원방안에 대한 생각과 함께 국가나 지자체에서 어떤 지원을 소극장에 해야될 지 밝혀달라

민간극장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소극장의 특성상 관객 수익으로 꾸려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 예전에 공연장 지원사업인 '공간 지원사업'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아쉽다.

또 지원을 해도 주로 일회성, 소모적인 지원이 많다 보니 조명, 음향 등 극장 시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지원금 항목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이 많이 아쉽다. 가장 좋은 방법은 관객 분들께서 공연을 보러 자주 와주시는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산울림이 우리 연극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30년 뒤 산울림 소극장은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평소 아버지께서는 "연극은 사람사는 이야기이고, 그것을 계속해서 해 나가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항상 좋은 무대를 고집했고, 시류의 흐름보다 좋은 작품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 운영되어 왔고 그런 점이 산울림 소극장이 우리 연극계에서 했던 역할이라고 본다. 

30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겠다. 그 때도 제가 극장장으로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하지만 그때까지 극장을 운영한다면 산울림 소극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관객과 예술가들이 연결되는 장소, 관객들에게 일상의 즐거움과 여유를 주는 공간으로 인식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