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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Coulmn] 가곡의 반주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2)
2017년 02월 16일 (목) 13:46:16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코리아 네오 심포 sctoday@hanmail.net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반주와 노래의 상대적인 중요성은 이 두 부분 사이에 음악적인 창의가 어떻게 배분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적인 중요성은 한 가곡의 골조를 이루는 피아노의 독주 부분(전주, 간주, 후주)의 길이와 작용에 의한 것이다.

전주는 노래를 인도하고, 간주는 노래의 반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며, 후주는 휴지(休止)로 이끈다. 이것들은 매우 귀중한 이행부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3가지 요소는 명료함의 차이는 있지만 옛날의 리토로넬로(기악의 짧은 단편의 반복으로 작품의 시작과 끝, 그리고 노래로 되어 있는 삽입부 사이에 도입되어 있음)에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 간주, 후주가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리토로넬로가 되는 셈이다.

악기에 의한 되풀이는 특히 단순유절형식에 알맞다. 이 방법은 매우 소박한 것으로 모차르트, 슈베르트, 구노, 그리고 포레 조차도 가곡의 반주에 사용하였다. 

종종 후주는 전주를 그대로 재현한다. 양자의 상위는 코다 외에는 작용하지 않을 때가 많으며, 이 차이는 작품을 열면 닫는다는 각자의 사명에 의해서 설명된다. 또한 동시에 양자는 똑같은 주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대응할 때도 있다.

이 경우에 추억이 있을 뿐이며, 문자 그대로의 반복은 없다. 그러나 늘 후주가 전주를 재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며 전주와 후주가 그 어떤 공통점을 갖지 않을 때도 있다.

전주의 효용은 무엇보다도 우선 실제적인 것이다. 즉 전주는 가수의 발성을 쉽게 한다. 이 때문만이라면 전주는 곡의 음악적인 흐름과 긴밀한 관계가 없는 짧은 악구로 음을 확인하면 충분한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절대로 없다. 일반적으로 그 도입적인 역할 때문에 전주는 노래되는 주제를 예고하거나 또는 단순히 반주부를 시작하는 준비를 한다(슈베르트의 <밤인사>와 <마왕>을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격이 더욱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포레의 <우아한 노래>의 제9곡 ‘겨울이 지나고’의 경우 전주는 선율의 도중에 나오는 두 개의 악상을 이어주고 있는데, 이들 악상은 똑 같은 가곡집의 제6곡과 제7곡의 추억인 것이다.

전주가 곡에 선행한다면 후주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발전의 장일 수도 있다. 후주는 끝내는 선율에서 빌린 음악적 요소로 만들어질 때도 종종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맺어져 있는 가사의 의미에 깊게 침투되어 있다.

따라서 이 특권적인 위치 덕분에 후주는 지금까지 가사가 걸어온 음악의 길 위에서 자유롭게 한가로이 있거나, 또는 노래가 끝난 다음 듣는 사람의 시적인 꿈을 확대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반주가 담당하는 갖가지 문학적 역할은 반주의 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종소리, 말 발자국 소리, 파도의 일렁임 등 흔히 볼 수 있는 모방의 효과에서 감정의 가장 섬세한 번역에 이르기까지 피아노는 설명하고, 회화적인 배경을 그려내고, 또는 시에 의해서 제기된 정서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주라는 것이 그저 아무래도 좋은 개성이 없는 뒷받침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음악적인 풍부함으로, 시사(示唆)에 뛰어난 힘찬 능력으로, 반주는 노래와 동등하거나 노래 이상의 효과를 갖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반주라는 호칭과는 모순되기도 한다.

실제로 노래가 이 반주에 ‘반주’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볼프의 많은 리트가 그러하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몇몇 노래들도 그러하다.

여하튼 독일의 리트와 프랑스의 멜로디 등 서양의 가곡들은 반주의 독자성을 증대시켜 웅변적인 힘을 가지고 노래에 가담한 그 때로부터 이전의 모습에서 변화되어 참다운 가곡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구성의 요소가 어떠한 주종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각각의 역할이 갖는 독자성이 증대될 때 전체의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로 몇 개월을 지내고 있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인가? 이는 균형이 깨져 하나로 집중화 됨에서 기인한다. 누군가는 그 집중화 힘으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그리고 나눠져야만 할 이익들을 편취하니, 그 집중화로 인해 사회는 멍들어가고 섞어가는 것이다.

이제 다수의 반주역할을 해오던 이들이 독자성을,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성을 회복해만 한다. 반주가 개성을 가지게 될 때, 그때 노래는 노래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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