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그날들 앙코르’를 보고, 김광석(1964~1996)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그날들 앙코르’를 보고, 김광석(1964~1996)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2.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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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2013년 4월이었지. 뮤지컬 ‘그날들’이 처음 공개된 날이었어. 나도 그 현장에 관객으로 앉아있었지. 이 공연이 순탄하게 무대에 올라간 건 아니었지. 시공자와 건물주의 갈등으로 해서, 공연을 올리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돌았어. 배우들이 실제 무대에서 연습도 잘 못하고, 첫 번째 공연을 올리게 됐다는 얘기도 들렸어.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날들’을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설레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어. 평소에 뮤지컬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지. 그들은 한 때 ‘386세대’라고 불린 사람이었어.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지. 그들도 나이가 들어서 중년이 되었지. 장년이 된 그들은 김광석을 통해서, 자신의 청년기를 반추하는 기분이 들었어. 

그들은 아마 오랜 친구를 만나러 거기에 왔을 거야. 김광석을 통해서, 옛 친구를 만나고픈 마음이 컸을 거야. 나이가 쉰 언저리가 되고 보면, 누구나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가 있고, 그들이 가끔씩 그리워지지. 그런 친구들 중에서는, 너의 노래를 같이 불렀던 친구도 있었겠지. 거리에서, 교정에서, 술집에서,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목청컷 불렀던 기억이 새롭구나. 

뮤지컬 ‘그날들’의 첫공을 보면서, 실망감은 말할 수도 없었어. 김광석의 노래를 가능한 ‘김광석답게’ 듣고 싶은 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김광석 특유의 울림이 거기서 느껴지지 못했지. 네가 부른 노래의 가사와 곡조가 분명함에도, 나는 거기서 너를 느낄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는 기분이었단다.

뮤지컬의 제작자들은 ‘포크’에 근거한 너의 음악을, 뮤지컬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꾀했지. 그게 원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리감 혹은 거부감을 느끼게 해주더라. 

세상에 살다보면, 누구나 적응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더 앞을 내다본 걸까? 뮤지컬 ‘그날들’을 보고 또 보게 되면서, 그들의 이런 접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도 되더라. 

“나와 같은 사람이, 김광석을 너무 ‘연민’의 대상으로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한 시대와 한 세대 속에, 김광석을 가두어 두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뮤지컬 ‘그날들’의 제작팀들이 과거형의 김광석을 현재형과 미래형의 김광석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이 뮤지컬이 공연하는 그 햇수로 5년 동안, 우리가 청와대와 경호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어쩌면 이렇게라도, 이 장소와 이 직업에 대해서 숭고함(!)을 지속시킬 수 있는 뮤지컬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단다. 

그날들을 보면, 언제나 ‘정학’과 ‘무영’에 집중하게 돼. 작품을 바라보는 너무 도식적인 이분법일지 모르나, “살고 있는” 정학(나, 우리)와 “먼저 떠난” 무영(너, 그들)을 바라보게 되지. 그리고 뮤지컬 속의 정학이 그런 것처럼, 무영에 대한 미안함과 시대적인 부채감은 마음에 자리한다. 

첫날 본 정학, 곧 오만석 배우에겐 좀 실망했어. 감기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건, 커튼콜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김광석 노래를 ‘저렇게 불안한 음정으로 노래해도 되는 거야? 될까?’싶었지.

오만석 배우가 만들어낸  ‘헤드윅’과 같은 작품의 좋은 기억마저 희석되지 않으려면, 뮤지컬 혹은 ‘그날들’에 대한 추후의 출연 여부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 

하지만 ‘언제나’ 그 장면이 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장면이 있지. 여전히, 나는 2막의 후반에서 ‘무영’의 대사와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단다. 무영이 너(김광석)와 겹쳐지는 것이고, 또한 그 시절의 나 - 특별히 그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 를 반추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되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 옆에 앉은 젊은 여성도, 나처럼 계속 울어주어서(!) 참 다행이었어. 뮤지컬 ‘그날들’은 분명 특정 시대와 특정 세대를 넘어선, 이 작품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생각해. 

이 작품의 모든 것을 넉넉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등병의 편지’(김현성 작사, 작곡)가 등장하는 장면은 어색하더라. 이게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던 정학이. 무영의 실종을 인해서, 특수부대로 전출을 가는 것도 장면이잖아?

내용적인 면에서도 물론이고, 노래와 편곡, 합창과 무용의 모든 면에서, ‘이등병의 편지’의 장면은 정말 저런 정서는 아닌데라는 생각은 언제나 볼 때마다 들더라. 그냥 이 곡만이라도, 라디오나 어디에서 들리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이렇게 많은 불만이 있더라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분명 또 뮤지컬 ‘그날들’을 볼 것이 분명하단다. 1막에서 무영과 함께 미소 짓고 웃다가, 2막에서는 무영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하며 또 눈물 짓게 될 것 같다. 그러면서, 김광석과 김광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들과 ‘그날들’을 생각하겠지.

김광석, 너는 지금도 우리 곁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단다. 고맙다. 김광석! 

* 뮤지컬 '그날들 앙코르' (2017. 2. 7. ~ 3. 5.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