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흔적을 품은 쓸쓸함과 만나는 내적풍경, 김준호작가의 ‘애오개’
[전시리뷰]흔적을 품은 쓸쓸함과 만나는 내적풍경, 김준호작가의 ‘애오개’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2.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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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린 시간들이 되살아나는 유년의 골목길 흑백사진으로 보여줘

15년 넘게 애오개의 변천사를 그려낸 김준호의 ‘애오개’ 사진전이 지난 17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이날은 눈빛사진가선 ‘애오개’ 사진집이 출판된 날이기도 하다.

김준호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유년의 동네를 가보고 싶은 생각에 아현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애오개’가 눈에 들어왔다고 회고하며, 그 후로 그가 살았던 골목이 시간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흔적을 모으게 됐다고 한다.

▲ '애오개' 의 김준호사진가

충정로(忠正路) 3가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현(阿峴) 또는 아현(兒峴)이라고 하는데, 고개 모습이 엄마 등에 업힌 아기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아현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아이처럼 작다는 의미에서 아이고개, 애고개로 불리다가 5호선 ‘애오개역’이 생기면서 다시 ‘애오개’로 불리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잊어버린 시간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유년의 골목골목이 모두 말을 거는 듯 했다"는 그는 "골목의 너비와 처마가 나이 들어 처져가는 내 어깨에 닿을 듯 다가와 절절한 그리움의 사연을 털어놓는 듯하였다”고 작가노트에 적고 있다.

▲ 김준호의 '애오개' 전시작품 (digital print)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다 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햇빛 좋은날, 담벼락에 기대어 들판에서 나락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살찌웠을 것이다. 오후가 되면 골목길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 뛰어놀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려앉으면 집에서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었다.

애오개 골목의 담벼락에 켜켜이 쌓인 흔적들을 찾아다닌 시간들은 김준호의 흑백사진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에게 ‘애오개’는 내면의 풍경으로 존재해 과거를 불러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간으로 다시 만난다. 또한 날것 그대로 자본주의 그늘에 숨어 있는 허구로 보인다는 것은 사진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 갤러리 브레송 전지작품

소설가 프루스트는 할머니를 만나려고 애를 썼는데 “어느 날 구두끈을 매는 순간 할머니가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고 했다. 김준호작가 또한 ‘애오개’에 쌓아두었던 시간들이 골목골목에서 튀어나와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저장해둔 시간이 작가의 무의지적 기억을 되살려낸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리 본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온기는 간데없고 민낯을 드러낸 부서진 벽 틈 사이에서 ‘애오개’의 그림자만 사람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 '애오개'전시작품 (digital print)

그의 사진 속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어느 골목길서 마주한 햇빛에 속살을 말리는 빨래를 보면서 삶은 떠돌지만 기억이 머물러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기억은 허구와 비슷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리 보게 된다.

고향은 '휙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희망을 만들기 때문에 그리워한다. 애오개의 풍경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중세의 조각가들은 그들의 지나간 시간을 돌 안에 새겨 넣었다. 사진가 김준호는 지나간 시간을 사진으로 되찾기 위해 셔터 뒤의 마음의 눈으로 자기의 존재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 눈빛사진가선 038 '애오개' 김준호사진집 표지

한겨레사진마을 곽윤섭씨는 사진집 해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준호의 ‘애오개’는 존재의 증명이자 부재의 증명이다. 기와지붕, 골목의 보도블록, 가로등, 어느 집 담장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화분, 전기 계량기, 창문 밖에 달려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모두 애오개의 게딱지같은 집을 형성한다.

지금 애오개엔 김준호의 사진에 찍힌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재개발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운명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다만 사진 속에 남아 그것이 존재했음을 전해준다. 또 동시에 이 사진 속에 찍힌 그 순간의 파편 같은 빛과 그림자는 김준호의 카메라와 삼각대가 물러서고 난 다음의 빛과 그림자와 다르기 때문에 '부재의 증명'이다.

김준호작가의 ‘애오개’사진전은 오는 2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