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차 촛불집회]빗속에 울려퍼진 ‘박근혜 없는 3월’
[18차 촛불집회]빗속에 울려퍼진 ‘박근혜 없는 3월’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3.0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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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주년 3.1절, 쪼개진 광장에서 동시에 치켜든 태극기물결은 극과 극

주말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드는 광화문 광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 1일은 주말은 아니지만 98주년 3.1절 기념일이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이나 지역이나 이념이나 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다. 선열들 또한 다 함께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 '박근혜탄핵'에 마음을 보태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그러나 2017년 3월1일은 98년이 지난 그때와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날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태극기집회는 대형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손에 들고,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광화문 일대를 덮치듯 날아다녔다.

▲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준비한 박근혜탄핵을 담은 깃발을 들고 있는 시민들모습

촛불민심이 한마음으로 탄핵을 외치는 것은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없애고 정의로운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두고 우리시민들이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순간은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태극기마저 두 갈래도 갈라져 촛불집회에서는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들어야 했다.

▲ 노란리본 달린 태극기

아이들과 함께 나온 유모씨(39)는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3.1절이면 태극기를 개양했는데, 오늘은 태극기를 포기했다"면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현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같이 나왔는데 노란리본을 장식한 태극기를 나눠줘 아이들이 받았다” 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태극기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리본을 장식해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줬다.

▲ 촛불을 든 아이 손이 말한다 '박근혜할머니 퇴진해주세요'

이날 광화문광장은 차벽으로 인해 열린 광장이 아니라 100m이동도 힘든 닫힌 광장이었다.

인천에 산다는 안진이(49)씨는 “태극기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마네킹처럼 행동하고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촛불집회 현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막아놓아 코앞거리를 한시간여 걸려 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태극기집회를 향해 야유를 보내는 모습

그녀는 “우리사회에 노인인구가 많다고 들었지만 실제 태극기집회에 나이든 분들이 많아 놀랬다"며, "촛불집회에는 유모차에 갓난아이까지 데리고 나온 젊은이들이 있다. 우리나라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 비가와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안씨는 “비까지 오는데 자리를 지키는 것은 나라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배려하고, 아끼고, 단합하는 모습 보니까 기분이 좋다”며 비를 맞아가며 온몸으로 ‘박근혜탄핵’을 외쳤다.

촛불집회 때마다 예술활동으로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펼치는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민주주의 촛불공화국만세!!’라는 주제로 ‘태극기역사’를 오픈에어갤러리에 전시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또한 ‘3.1절 깃발을 들자!’와 정고암, 강병인작가의 서예퍼포먼스, 작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바닥글쓰기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 작가와 시민들이 바닥글쓰기에 참여해 박근혜탄핵에 대한 메세지를 담았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 누구나 바닥글쓰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시국에 대한 개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날은 3.1절로 ‘태극기를 모욕하지 마라’는 글들이 유독 많았다. 유치원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바닥글쓰기에 참여한 시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 깃발과 함께 박근혜탄핵을 염원하는 '광화문미술행동'대표 김준권작가

특히 이날 광장에서는 ‘국민통합, 민족화합, 3.1정신 이어받아 통일독립 이룩하자!’는 ‘제98주년 3.1절 민족공동행사’가 진행되었다. 윤승길(3.1절민족공동행사준비 위원회 사무총장)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3.1절 노래와 만세삼창에 이어 민족화합축제가 펼쳐졌다.

▲ ‘국민통합, 민족화합, 3.1정신 이어받아 통일독립 이룩하자!의 만세삼창

전라남도 곡성과 해남우수영에서 준비한 퓨전각설이 ‘우리는 하나’와 통일독립을 부르는 강강수월래 ‘모두가 하나되세’는 광장시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곡성 석곡면 오봉순(65)씨외 12명이 깡통을 들고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시민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정겨운 모습도 보였다.

댕기머리에 하얀 한복치마에 초록저고리를 입은 여인네들이 드넓은 광장을 수놓듯이 통일독립의 염원을 담은 강강수월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 해남우수영의 강강수월래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갈현동에서 온 정주영(58)씨는 “하늘도 서럽고 슬픈지 비를 뿌린다며, 한쪽에서는 탄핵을 반대하고, 한쪽에서는 탄핵을 찬성하는 이런 나라에 사는 내가 부끄럽다. 98년 전에는 다함께, 한마음으로 태극기를 들었는데 탄핵찬반집회로 갈라진 슬픈 광장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 기독교단체 교인들이 태극기집회에 참여해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있다.

독립운동의 상징인 태극기 의미마저 달라진 촛불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불평등이 없는, 정의가 바로 서는 그날을 위해, 오는 주말에도 촛불을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