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블랙텐트, 한국민족춤협회에서 펼친 “몸, 외치다!”
광장 블랙텐트, 한국민족춤협회에서 펼친 “몸, 외치다!”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3.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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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몸짓을 삶속에 녹여내는 진보적인 무용가들이 뭉쳤다

한국민족춤협회에서 마련한 “몸, 외치다!”가 지난 2일 밤,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이색적인 춤판이 벌어졌다. 소리꾼 이덕인씨의 구수한 판소리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서정숙씨의 (조갑녀류)승무로 시작했다.

한국민족춤협회는 2016년 3월에 진보적인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다른 장르와 폭넓은 결합으로 설립됐다. ‘겨레의 몸짓, 생명의 몸짓, 세계 속에 우리의 몸짓’을 슬로건으로 더 넓고 높게 비상해 사람들 삶 속에 녹여내어 역사문화예술성의 본질을 되찾고자 하는 단체로서 이사장은 한양대 장순향교수가 맡고 있다.

▲ 사자춤을 끝낸 정병인, 노병유씨가 입으로 흘러내린 '헌재는 탄핵하라'

장순향교수는 “나쁜 대통령 때문에 온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져 자기할일을 멈춘 채 ‘박근혜대통령탄핵’만을 바라고 있는 시국이다. 춤추는 사람으로서 ‘춤 행동’으로 시민들과 함께 하고자 이번 공연을 블랙텐트에서 열게 됐다”고 말했다.

▲ 소리꾼 이덕인씨가 판소리로 사회를 이끌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첫무대는 서정숙씨의 승무가 열었다. 승무의 아름다움은 정면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능선과 긴 장삼을 열기설기 공간에 뿌리치는 춤사위다.

하늘을 향해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의 멋스런 모습으로, 양손에 북채를 든 서정숙씨의 승무는 예술 본연의 내면적인 멋을 자아냈다.

▲ 서정숙씨가 승무를 보여주고 있다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재인청 춤의 전승자인 이동안 선생의 춤을 정주미씨가 처연한 흰 의상을 입고 대나무에 한지를 곱게 접어 만든 가는 술을 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나왔다. 중몰이 장단으로 한의 맺힘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춤으로 ‘맺힘’과 ‘풀이’로 병행됐다.

망자와의 이별의식을 담았다는 이 춤은 산자와 죽은 자의 슬픔을 위로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섬세하게 표현해 광장텐트에 있는 세월호 넋들을 위로하는 춤사위로 선보였다.

▲ 엇중몰이신칼대신무의 정주미춤꾼

민속진혼굿을 추는 춤꾼 이삼헌씨의 ‘삼천초목’에서는 세월호에 갖힌 아이들 모습을 리얼하게 몸짓으로 보여줘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재인식하게 했다. 또한 세월호가 기울어 배 난간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몸으로 그려냈다.

▲ '삼천초목'의 이삼헌 춤꾼

엄격한 규격이 있으면서도 속박이 없고, 춤의 자태가 곱고, 발 디딤새가 어려워도 자연스럽고, 단정하고 깔끔한 살풀이춤은 장순향교수가 보여줬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배를 무대로 등장시켜 지켜보는 내내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서정훈, 윤태경, 이권형, 이준희악사의 시나위음악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한, 서러움, 흥과 멋이 우러나 세월호의 넋을 위로했다.

▲ 한국민족춤협회 장순향 이사장의 살풀이

경상도 지방의 대표적인 춤사위로 알려진 ‘덧베기춤’은 춤꾼 남기성씨가 즉흥춤으로 시작했다. ‘덧베기춤’은 절도 있게 고개 짓을 하거나 어깨춤으로 동작을 풀어나간다.

▲ 윤태경,서정훈,이권형,이준희 악사

이춤사위는 동작이 큰 허튼춤으로 남성이 주로 추는데 땅에 박듯이, 앞다리 혹은 양다리로 무릎을 굽혀 제자리에서 정지하는 동작과 잔가락이 많아 흥겨운 우리 춤의 멋스러움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 '덧베기춤'의 남기성 춤꾼

큰칼을 들고 허름한 복장에 탈바가지를 쓰고 무대를 장악한 ‘망나니칼춤’은 현시국에 대한 메시지가 크게 느껴졌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목적과 상황에 알맞은 형태의 춤으로 변형된 ‘망나니칼춤’은 TV사극을 통해 여러 번 봤던 장면이다.

사형장에서 집행하기에 앞서 형장에서 칼춤을 추는 장면을 보여준 춤꾼 전종출씨가 큰칼로 하늘 끝까지 치켜든 모습은 ‘박근혜탄핵’에 대한 울부짖음으로 보였다. 온몸으로 시대를 저항하는 몸짓이 그대로 언어가 되었다.

▲ '망나니 칼춤'의 전종출 춤꾼

이밖에도 만수복덕과 안녕, 부부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우포따오기춤’은 춤꾼 형남수씨, 역동적인 춤사위와 경쾌한 말채놀음이 돋보이는 여럿이 함께하는 군무인 ‘영남말뚝이춤’은 탈춤모임인 목탈에서 흥겨운 리듬과 함께 보여줬다.

▲ '따오기춤'의 형남수 춤꾼
▲ '영남말뚝이춤’의 탈춤모임

마지막으로 사자춤은 정병인과 나병유씨 두 사람이 사자 가면을 입고 등장하여 온갖 재주를 부리며 객석에 있는 시민들도 사자춤을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사자춤'의 정병인, 노병우 춤꾼

객석에 앉아 있는 시민들이 사자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등, 보는 것을 넘어 다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정서가 담겨있는 우리 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자춤을 마무리하면서 사자 입에서 흘러나오는 ‘헌재는 탄핵하라’ 는 지금의 현실을 저항하는 예술행동으로 보여주는 몸으로 쓰는 언어였다.

▲ 객석에 있던 시민과 함께 하는 사자춤에 정병인, 노병유 춤꾼

'블랙 텐트'극장은 아픈 시대가 세운 공공극장으로서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극장의 공공성에 대해 새롭게 질문을 던졌다. 혹한의 추위 와 광장을 둘러싼 자동차들의 소음 속에서도 공연은 계속 이어졌었다.

▲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무대

사람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만 있었다면 비상식적인 리스트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이 탄핵되면 블렉텐트 극장도 막을 내린다.

그러나 몸짓으로, 언어로서, 문화예술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삶의 이야기를 호소했던 순간만큼은 지워지지 않고 광장 곳곳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