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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종상 화백] 독도진경과 그날의 해돋이(1)
2017년 03월 09일 (목) 17:11:20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 sctoday@naver.com
   
▲ 일랑 이종상 화백/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철학박사 / 서울대학교 초대 미술관장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내가 처음 독도를 찾아 그림으로 세상에 발표한 것이 1977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38년 전의 일이 된다. 당시 나는 진경(眞景: 실제로 산수, 풍경을 답사하고 그리는 그림 )에 빠져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화가로써 독도를 처음 찾아가 그 장쾌한 해돋이를 그려다가 개인전을 열었던 때가 어제일 같기만 한데 돌이켜보니 벌써 근 38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는 한, 일간에 독도의 영유권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지금처럼 관심도가 높지 않았었다. 내가 독도에 관심을 갖은 것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정신을 이어 받아 이를 완성해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그림이 중국의 그 것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겸재의 동국진경은 근세 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되는 바다.

그러나 그에게서 조차 아직도 중국의 대륙적 성향인 고산준령을 선호하려는 화풍이 남아 있음으로 해서 해금강의 총석정을 제외하면 섬 그림이나 바닷가 해안선을 소재로 한 진경작품이 없다.

아마도 당시 유가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의 산수풍을 흠모하는 귀족 선비들의 취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요 특히 서남해로는 리아스식 해안의 발달로 해안선이 길뿐 아니라 유, 무인도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섬이 많다.

이처럼 해안이 발달하고 섬이 많다는 것은 그 곳에 그만큼 많은 사람의 삶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삶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이 있게 마련이다. 예술은 곧 삶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판의 농사일과 바닷가의 삶이 많은 한국의 현실에 비해 그림에 나타나는 소재는 깊은 산, 맑은 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조선조 말기에 잠간동안 실사구시의 영향을 받아 서민의 삶이 녹아들기는 했으나 이 역시 속화(俗畵)라 하여 양반네들로부터 폄하(貶下)되는 운명을 맞게 됨으로써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만다.
70년대 들어와 내가 제주도를 비롯한 ‘섬 찾기 진경’을 시작한 까닭이 여기 있었다.

북녘 땅을 제외해 놓고 유, 무인도 가리 것 없이 섬과 해안선을 따라다니며 진경 여행을 하다가 동해멀리 해 돋는 우리 땅 독도를 생각했다. 아주 간헐적으로 영유권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던 독도를 그림의 소재로 문화 속에 끌어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독도가 그려진 지도 찾기에 온 신경이 쏠려있을 때 겸재 정선이 그린 조선시대 독도진경이 발견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를 생각했다. 알고 보면 지도라는 것이 그림의 부감(俯瞰)이고 보면 그림과 같이 사람의 눈에 띄어 기록해 둔 시각적 기록물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유명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도 알고 보면 진경여행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면 지도와 그림의 차이란 과학전 사실의 외연(外延)과 정신적 정서의 내포(內包)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문화 속에서 독도의 지도를 분명하게 그려 한국인의 가슴 속에 묻어두고 싶었다.

가슴 속에 새겨진 문화의 지도는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혹시라도 독도를 그린 화가가 역사 속에 있었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신 최순우 관장님이 적극적으로 나를 도왔다. 오랜 조사 끝에 결론은 아직까지 독도를 예술작품의 소재로 삼았던 화가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최고가 아니면 최초가 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당찬 생각을 미리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으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결과는 내가 독도를 가장 먼저 그림에 담아온 화가가 되어버렸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가 남한에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뜻 박의 장소에서 이런 사실을 알아주어 한편 흐뭇하면서도 한편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다름 아니라 고구려벽화 답사 차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으로 한국의 원로화가 10명이 평양 만수대창작사 작가들과 평양서 만났을 때였다. "아! 드디어 최초로 독도를 그리신 화가가 평양에 오셨군요. 우리도 통일되면 독도에 해뜨는 그림을 한 번 그려보고 싶습네다"  공항 귀빈실에서 처음 만난 누군가가 나를 덥석 껴안은 채, 등을 도닥거리며 하는 말이었다.

물론 같이 간 일행들도 잘 몰랐던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듣는 순간 그들의 철저한 정보력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독도에 관심을 보였던 그들이 지난번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으로 일본 수상이 망언을 한 후에 일본도 뒤질세라 독도우표를 만든다고 하는데 드디어 북한에서 독도우표를 발행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1999년 방북했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그 후에 독도문화심기운동을 벌리며 많은 행사를 해왔다. 서울대학교박물관 주최로 3회에 걸쳐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을 열었고, 이제 정년을 하고나서 금년(이 글을 쓴 당시 해-편집자 주) 3월 13일에는 아홉 번째로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연수생들과 독도행을 맞았다. 이제 독립기념관에서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독도를 지켜야한다”며 독도관련의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음을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른다.

독도를 지키는 일은 이제부터다. 국토사랑에는 나이가 없다. 직업의 차이도 있을 수 없다. 관과 민이 따로 없다.  그저 ‘관심만 가져주는 것, 사랑하는 마음만 품어주는 것’으로도 그 사람은 훌륭한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일본사람이 망언 할 때만 반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다가 이내 시들어버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영혼 육신이 아울러 노쇠한 사람들이다.

본시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니 일본과 상관없이 늘 우리 것에 관심이 있고 언제라도 일단 유사시에 용기백배하여 곳곳하게 서서 태평양을 내달릴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항심으로 늘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이 영원한 젊은이인 것이다. 

나는 가끔씩 독도에 첫발을 내 딛고,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았을 때의 감격을 되새기며 활력을 얻는다. 그때 독도를 다녀오며 스켓치북에 굵은 도화연필로 무디게 써두었던 글을 소개함으로써 함께 독도행을 하고자한다.  

獨島의 해돋이

지필묵(紙筆墨)을 둘러메고 우리의 산천을 누비고 다닌 지도 어언 10여 년. 이제는 내 나라 내 산야를 어지간히 쏘다녀보았건만 동쪽 바다 저 멀리 혼자 떠 있는 독섬(돌섬), 독도(獨島)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중국의 오악사독(五嶽四瀆)에서 벗어나  줏대 있는 그림으로 내 산하를 찾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정신(眞景精神)이 좋아 독도를 마지막으로 현대진경(現代眞景)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에서  그동안 들판으로, 바닷가로, 섬으로, 낮은 곳을 향해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왔던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의 구성진 가락이 들려오는 독섬을 그려  문무대왕(文武大王)의 청룡호국(靑龍護國)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독도의 해돋이를  맞을 수있는 오늘은 내 생애에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 되리라.  
 
지금 나는 꿈에도 그리던 독도로 간다.  화가로서 최초로 화구를 챙겨들고 독도에 올라 태극기 펄럭이는 소리, 갈매기 우는 소리, 파도가 넘실대는 소리를 만만파파곡(萬萬波波曲)으로 그려낼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에 누구 한 사람 독도를 그린 적 없고  일본에 누구 한 사람 그림의 소재로 삼은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숙명처럼 지금 칠흑(漆黑)의 바다를 타고 거기에 가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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