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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2월의 춤, 최효진의 ‘소쩍새 울다’와 정은주의 ‘붉은 가면의 진실’
2017년 03월 09일 (목) 18:06:16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소쩍새는 올빼미 과에 속하면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새다. 깊은 산 속에서 소쩍 소쩍 하고 우는 소리가 적막한 심산의 이미지와 어울리며 듣는 이로 하여금 슬픔과 회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효진의 춤 ‘소쩍새 울다’(2.11~12, 무용전문 M극장, 30분)는 이러한 새의 이미지에 충실하다.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아니다. 새들은 새 만남을 위해 운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가면 잊자고 서둘러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 이렇게 시작되는 이면우 시인의 시(詩)가 작품의 텍스트다. 

무대가 열리면 검은 옷의 여인이 등을 보이고 벤치에 앉아 있다. 반대편 무대 앞 쪽에 장독대가 놓여 있다. 크고 작은 세 개의 독이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양새다. 자리에서 일어선 여인의 솔로(최효진)가 시작된다. 무대를 튕기듯 마디가 굵은 음향이 규칙적으로 울려온다. 고동치는 심장의 울림과 힘차게 뛰는 맥박의 운동을 묘사하는 듯하다. 음악과 어우러진 힘 있는 춤사위가 10분간 무대를 장악한다. 장독대로 다가간 여인이 독 안에서 붉은 색 커다란 망토를 끄집어낸다.

그녀의 추억이 모두 그 속에 담긴 듯하다. 등 쪽이 까만색 망사로 이어진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 셋이 차례로 등장한다. 한 여인이 독 속에서 진홍색 꽃잎을 한 움큼 씩 끄집어낸다. 꽃잎이 길 위에 뿌려지고 여인들은 꽃을 밟으며 춤추기 시작한다. 여인들은 소쩍새고 꽃잎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젊은 날의 아픈 추억들이다. 세 여인(박관정, 최진실, 최은진)이 만드는 크고 유연한 춤에서는 3인무가 아닌 세 개의 솔로를 동시에 보는 듯하다. 장중하게 무대 전체를 휘감는 김재덕의 창의적인 음악에서 에너지를 받은 듯 여인들의 춤은 흐느끼듯, 절규하듯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검은 옷의 최효진이 다시 등장한다. 어둠을 주조로 하던 조명이 명멸하는 사이 서정적인 노래가 무대를 감싼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빈 손짓에 슬퍼지면/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김필, ‘청춘’). 무용학원과 대학에서 무용교육자로서 꾸준한 행보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춤에도 소홀하지 않는 최효진의 안무능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같은 장소에서 정은주의 춤 ‘붉은 가면의 진실’(2.18, M극장)을 보았다. 가면 속에 감추어진 여인의 진실을 욕망과 방황과 열정으로 묘사한 45분 솔로작품이다. 두 작품은 같은 듯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같은 것은 붉은 색과 검정 색이 몸의 앞뒤를 나누고 있는 긴 드레스 의상과 어두운 조명, 훌쩍 키가 큰 여인들이 펼치는 시원한 춤사위다.

음악의 사용과 드라마터지는 전혀 딴판이다. ‘헤케이브 소은 컴퍼니’(정은주)의 춤과 ‘소리연구회 소리 숲’(김지윤), 두 단체가 만나는 무대에 내레이션(김지영)이 앞서 깔리면서 춤과 음악을 리드한다. 소리 숲의 음악은 피아노(이수연), 바이올린(김정수)과 피리(김지윤)로 구성된 특이한 3중주 형식이다.

놀라운 것은 슈베르트와 생상, 헨델, 쇼팽을 연주하면서 양악기와 국악기가  이루어내는 절묘한 음색이다. 국가무형문화재 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이수자인 김지윤이 중심에 있는 소리의 앙상블이 정은주의 열정적인 솔로 춤사위와 어울린다. 붉은 색과 흰 색의 폭 넓은 천이 십자 모양으로 무대 뒤쪽에 설치되어 있다.

어둠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그 뒤에서 한 여인이 등장한다. 부끄러운 듯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세상의 호기심으로 크게 열린 두 눈은 쉼 없이 반짝인다. 이화여대 무용학과와 캘리포니아 미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Arts)을 졸업(MFA)한 정은주의 표정은 치열하고 장신에 긴 팔다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펼쳐내는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세상에 대한 커다란 욕망과 이를 움켜쥘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여인의 방황은 시작되지만 방황의 회오리에서 벗어날 때 여인은 작은 바람들에 손을 내민다. 음악은 경쾌해지고 편안해진 표정은 자유로운 춤사위로 변화한다. 붉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스스로의 주인이 된 여인의 진지함이 소극장 작은 무대 1,2층을 가득 채운 객석과 교감하면서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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