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오페라에 시골 아낙 머슴이? 그래서 정겹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시골 아낙 머슴이? 그래서 정겹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3.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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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즌 첫 공연 오페라 '사랑의 묘약', 동서양 조화가 오페라 편견을 깨다

2017 '세종시즌'의 출발을 알린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 공연은 지난해 5월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번 세종시즌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재공연됐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선보인 <사랑의 묘약>은 우리에게는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 가짜 약을 먹으면서까지 여주인공 '아디나'의 마음을 얻으려는 가난한 시골 청년 '네모리노'와 아디나와 결혼하려는 장군 '벨코레', 네모리노에게 조금씩 마음이 기울어지는 아디나와 가짜 약을 파는 약장수 '둘카마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유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세종시즌의 첫 공연이었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오페라'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고급스러움을 생각하고 '서양의 문화'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와 유럽의 고급스런 분위기, 화려한 옷과 무대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 상황에서 이질감을 느낄 이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오페라는 음악을 아는, 고급스런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며 오페라 관람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졸리는 이 공연에서 정말 재밌는 발상을 한다. 배경은 당연히 19세기 초엽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마을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로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시골의 아낙, 머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무대는 유럽이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킨다. 황금빛 논밭이 연상되는 무대 배경과 나무, 작품에 등장하는 초롱불 등을 보면 이 작품이 이탈리아 작품인지 우리나라 고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물론 노래는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지며 군인들은 그 당시 이탈리아의 군복을 입고 등장하고 아디나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유럽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있다. 글로만 보면 '이런 부조화가 어디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공연을 보면 부조화는 커녕 오히려 정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정서를 건드린다.

오페라의 엄격함을 생각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정서가 담긴 인물들과 무대 배경을 보면서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사랑의 묘약>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이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실제로 페졸리는 작품 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을 방문하며 연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그림을 보고 '브뢰겔(16세기 유럽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김홍도와 브뢰겔의 공통점을 떠올리며 한국 서민들의 모습으로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서막에서 네모리노와 아디나가 둘카마라가 타고 있는 비행선의 등장이 마치 동화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둘카마라의 조수와 네모리노가 펼치는 무대는 오페라라기보다는 뮤지컬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조수가 추는 춤은 19세기의 춤이라기보다는 이른바 '막춤'처럼 보이는데 이 또한 고전 오페라의 선입견에 갇혀 오페라를 기피하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소프라노 손지혜(아디나), 테너 허영훈(네모리노), 베이스 양희준(둘카마라), 바리톤 한규원(벨꼬레) 등은 자신들이 맡은 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손지혜와 허영훈은 앙상블도 좋았지만 특유의 감정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이들의 연기 또한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한 이들에게 극의 재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랑의 묘약>은 원작 자체가 재미있고 유쾌한 작품이지만 한국 관객들의 정서를 간파한 외국 연출가의 발상이 딱딱한 오페라가 아닌, '재미있는 노래극'으로 우리 관객들에게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동서양의 멋진 조화와 극의 재미, 오페라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격을 잃지 않는, 어쩌면 지금 오페라에 익숙지 않던 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오페라가 이번 <사랑의 묘약>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