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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김남진 댄스시어터 창(倡),‘길, 걷다’의 두 작품
2017년 03월 30일 (목) 16:43:58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창(倡)은 광대란 뜻이다. 광대는 연극, 판소리, 서커스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예능인이다. 얼굴에 회칠을 하고 울긋불긋한 옷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웃음을 빼앗는 삐에로가 서양 광대라면 짙은 삶의 애환을 몸과 소리에 담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동양적 광대의 본래모습이다.

김남진이 만들고자 하는 공연의 성격이 2006년 그가 창단한 ‘댄스시어터 창(倡)’이란 무용단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2016년의 신작 두 편, <무게>와 <씻김>을 1, 2부로 구성한 <길, 걷다>(3.25)를 대학로 예술소극장에서 보았다.

1부 <무게>는 이 시대의 각박한 현실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우울한 초상이다. 흰 색 셔츠와 검정색 바지로 의상을 통일한 8명 젊은이들이 이력서를 손에 들고 일렬로 서 있다. 박사, 외국유학생, S대 출신, 자격증 등 화려한 스펙에도 취업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자리가 펴지면 공중에서 낙하산이 떨어져 자리를 채운다. 곧이어 흙수저 들의 반항적인 춤이 무대에 펼쳐진다.

커다란 피자가 쪼개지듯 여러 조각으로 분할된 한 부분씩에 올라타 그들은 침입자들을 경계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간다. 그러나 경사진 비탈은 더 이상 버틸 힘을 빼앗아가고 그들은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릴 뿐이다. “너희들에게 꿈이 있는가?”란 질문에 그들은 머뭇거린다. 대통령, 최고의 무용수...이미 효력을 상실한 어린 시절의 꿈은 30대의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은 답이 될 수 없다. 꿈을 말하는 대신에 그들은 동문서답하듯 현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다른 쪽에선 “염병할”, “ 내가 이러려고...”란 냉소가 쏟아진다.

대사와 소도구 등 연극적 요소와 춤이 교묘하게 결합된 무대에서 김남진은 유행어가 되어버린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던지면서 자포자기 상태의 젊음을 그려낸다. 무대에선 어떠한 해답도 제시되지 않는다. 아마도 해답이 없다는 것이 현실을 보는 그의 해답일지 모른다. 

2부 <씻김>에서 그의 시각은 사회문제에서 자신으로 수렴된다. 무대 한 가운데 차려진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때늦은 후회는 시작된다. 무대 뒤 한 쪽에 징을 든 소리꾼 양일동이, 다른 쪽엔 기타리스트 김성민이 멀찌감치 자리 잡고 있다.

은은하게 울리는 징소리를 배경으로 아들은 제주잔에 술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킨다. 징소리와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듯 판소리 구음이 울려온다. 작달막한 키에 근육질의 그가 영정 앞에서 시도하는 날렵한 뒤집기는 가정을 꾸려 한 아비가 되었지만 아직 젊은 육신을 가진 그가 뛰어난 무용수임을 보여준다. 몸을 씻어주듯이 천정에서 어깨 위로 하얀 가루들이 쏟아져 내린다.

가루들을 바닥에 흘리며 그의 열정적인 독무가 계속된다. 징과 기타가 각각 판소리와 노래를 반주하며 투박한 듯하면서도 유연한 춤사위를 받쳐준다. 천정에 달린 카메라가 그의 춤을 비추면 이는 영상으로 후면에 투영된다. 영상과 소리와 춤의 앙상블로 보여준 ‘씻김’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식이 채 느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간 아버지를 불러보는 김남진의 사부곡일 것이다. 

김남진이 다루는 주제들은 대부분 무겁고 심각하다. 사회적 부조리와 조명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아픔, 환경파괴(미친 백조의 호수), 재난이나 신 앞에선 나약한 인간들이(두통, 봄의 제전) 그에겐 익숙한 소재가 된다. 해답을 찾을 수 없도록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담은 <무게>나 무너지는 가족제도 아래 사라져가는 효 개념을 가슴 아파할 뿐인 현대인의 나약함을 다룬 <씻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가는 능력에 있다. 연극적 구성과 대사, 서정적인 음악, 가면과 마네킹 등 소도구의 적절한 활용으로 심각성은 완화되고 무대와 관객의 거리는 좁혀진다. 무용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경성대학 무용과를 졸업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렌느국립현대무용단’과 벨기에 ‘세 드라 베 발레단(Les Ballets C de la B)’에서 몸으로 익힌 10년간(1998~2007)의 경험이 안무의 저력을 갖추게 해준 요인일 것이다.

야구에 비한다면 직구를 위주로 던지는 정통파 투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의 문제를 정 중앙에 놓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그의 진지한 안무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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