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스모크’을 보고, 시인 이상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스모크’을 보고, 시인 이상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3.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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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당신을 소재로 한 뮤지컬 ‘스모크’를 봤습니다. 이상(李箱, 1910~1937), 당신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自)의식’과 ‘초(超)현실’입니다. 이 단어와 함께, 왠지 편두통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잘 모르면서, 당신을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스모크’라는 뮤지컬을 통해서, 당신에게 좀 더 다가간 것 같습니다. 극본과 연출은 추정화! 당신은 그녀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뮤지컬 ‘스모크’는 1937년 2월, 일본 경찰서에 유치장 신세를 진 당신으로 시작해서, 거기서 끝맺습니다. 당신을 취조하는 형사의 목소리가 들리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하죠. 뮤지컬 ‘쓰릴 미’입니다. 이 작품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쓰릴 미’와 닮았습니다. 나의 이런 발언이 누군가는 ‘지적’이라고 받아들이겠지만, 어쩌면 그건 극본과 연출의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날 그 곳에서, 아주 긴 꿈을 꿨을 겁니다. 그 꿈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를 쓰는 남자 ‘초’,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아픈 고통을 가진 여자 ‘홍’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인물이지만, 결국 분열된 자아겠죠. 이 뮤지컬에서 ‘연기’라는 단어와 개념은 중요한데, 그래서 
작품의 제목을 ‘스모크’라고 한 것 같습니다. 

재밌는 건 시작과 끝이 좀 다르게, 연출이 재밌는 트릭(?)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죠. 관객들이 이 세 사람 중에서 현실 속 이상이 ‘초’인 것 같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가장 실제 이상에 근접한 인물이 ‘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초(超)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異常)한 인물로 치부하지만 내면에선 늘 이상(理想)을 추구했던 당신입니다. 해는. 바다(海)로 가고픈 아이(孩)죠. 

홍은 누구일까요? 이상이 한 때 사랑했던 기생이 금홍이라고 하는데, 그라고 짐작도 하게 되지만, 작품 속에서는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인물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세 사람이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전개하는 ‘스모크’는 정말 ‘이상’하게 매력적이더군요. 짧은 생을 살았던 당신의 행적이 결코 미친 사람과 같은 발광(發狂)이 아니라, 당신만의 개성으로 빚어낸 발광(發光)이었음을 얘기해주려 합니다. 

뮤지컬 ‘스모크’ 음악은 좀 아쉽습니다. 어떤 넘버의 도입부에선, 쓰릴미의 그것과 분위기가 비슷하더군요. 리듬과 코드는 비슷하고, 여기에 좀 선율을 달리했다고 할까요? 분위기는 일단 좋은데, 음악이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더군요.

이걸 뭐 ‘표절’이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다른 분도 오해는 마십시오. 영리하게 벗어나 있으니까요. 이 작품의 음악은 쓰릴미가 포함된 한국뮤지컬음악의 ‘익숙한 완성’이라고 치켜세울 순 있으나, 앞으로 한국뮤지컬음악의 새로운 향방을 제시하는 ‘신선한 시작’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뮤지컬 ‘스모크’를 볼 때, ‘거울’과 관련된 이미지에 더 집중해서 보세요. 그럼 더욱 재밌을 겁니다. 작품의 ‘내용적 완성’ 혹은 ‘시각적 가치’는 ‘거울’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의 거울이란 무대에 보이는 거울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초’와 ‘해’의 대사와 동작에서, 이 작품의 매력을 깊이 느낄 겁니다. 그리고 이상의 ‘거울’의 마지막 연을 떠올릴 겁니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또꽤닮았소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의 시에선 이렇게 ‘근심’하면서 ‘진찰’할 수 없다고 하지만, 추정화는 다릅니다. 이 작품은 ‘거울’을 매개로 해서, 이상이란 인물에 대해서 ‘표피적인 근심’과 ‘심층적인 진찰’을 참으로 잘 넘나드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 곧 당신을 위한 작품입니다. 당신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당신의 심리상태를 잘 그려냅니다. 당신은 이 시대에 호출해서, 이 시대의 감성을 전제로 매우 보편타당한 언어로 풀어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잘 건드리면서, 당신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한다고나할까요?

뮤지컬 ‘영웅’을 통해서 ‘안중근’을 우리 시대 사람들이 잘 인식하듯이, 이제 앞으로 당신은 뮤지컬 ‘스모크’를 통해서 인식하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장기 공연할 수 있는 특장(特長)이 많더군요. 
 
뮤지컬 ‘스모크’는 세 배우만 출연하고, 트리플 캐스트입니다. 모두들 다 잘 하지만, 내 취향대로 꼽는다면, ‘초’는 김경수, ‘해’는 정원영, ‘홍’은 정연 배우가 가장 좋았어요. 특히 김경수배우와 정연배우는, 뮤지컬 넘버의 소화력이 좋더군요. 두 배우 모두 피아노를 잘 아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의 시가 그렇듯이, 이 작품 속에도 재밌게 해석할 수 있는 암호(개념)가 숨겨져 있죠. 그렇게 보는 게 작가 ‘이상’을 알아가는 방법이고, 뮤지컬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상’적 방법일 겁니다. 보고 또 봐도 참 좋은 작품입니다. 

뮤지컬 ‘스모크’. (2017. 03. 18 ~ 2017. 05. 28.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