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상현 명창 “난 소리 잘하는 사람 아닌 소리를 단련한 사람”
[인터뷰] 조상현 명창 “난 소리 잘하는 사람 아닌 소리를 단련한 사람”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3.3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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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최소한 30년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 우리 문화의 뿌리 반드시 알아야”

조상현 명창. 국악계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예술계에서 그의 위치는 여전히 굳건하다. 국악이 한창 방송을 타고 알려지고 있을 무렵 그는 시원시원한 판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마치 막힌 곳을 뻥 뚫어주는 그런 소리라고 할까? 그렇게 그는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국악계의 대표 명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전라남도는 ‘판소리의 고장’이 됐고 전라남도 국악단, 광주시립국극단 등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광주에서, 서울에서 강의를 하며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80이 다 된 연세에도 조상현 명창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판소리의 멋을 전하고 있다.

▲ 조상현 명창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주말 오후 그가 강연을 하고 있는 서울 남영동 크라운해태 빌딩을 찾았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제안으로 강연을 하게 된 그는 강연 준비로 바쁜 가운데에도 인터뷰에 응했다.

원래대로라면 일문일답의 진행이 이뤄져야하지만 그는 그 형식을 싫어했다. ‘어차피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생각을 특유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들려줬고 이는 곧 하나의 강의가 됐다. “문화를 하겠다는 사람이 우리 문화를 알아야지!” 그의 일성이었다.

최소한 30년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이 판소리지만 지금은 그런 노력이 없이 인기만 추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음악과 춤이 무너지니 결국 정치가 엉망이 되고 있다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문화를 다루는 기자에게도 가슴에 꽂였다.

이번 인터뷰는 짧지만 강렬했던 조상현 명창이 가르쳐준 여러 말씀을 중심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인터뷰라기보다는 ‘강의록’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 배움의 시간을 이렇게 재현해본다.

1. 酒逢知己千鍾少 話不投機一句多(주봉지기천종소 화불투기일구다)
-술은 나를 잘 아는 친구와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뜻이 맞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

판소리가 이전에는 ‘조선성악’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성악이라고 하면 외국 곡만 생각하는데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성악이 있었다.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가 지금 정동극장 자리에 있었는데 6.25 전쟁 이후로 많이 없어졌다. 엄연히 판소리가 우리나라 성악인데 이를 우리가 안 쓰니 조선성악이 없어지고 쓴 사람이 없어지고 뿌리가 없어졌다.

보성소리의 특징이니 매력이니 다른 소리와 무엇이 다르니를 많이 물어보는데 원래 각자 나름대로의 소리가 있다. 이를 ‘유파’라고 하는데 어느 유파마다 다 장점이 있다. 물론 조금조금씩 갑, 을, 병, 정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남의 유파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자마다 다 장점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춘향가’를 한다고 하면 딱 5시간이면 끝나야하는데 어떤 이는 이것저것 박자 갖다 붙이고 섞어서 8시간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8시간하는 사람이 5시간하는 사람보다 소리를 더 잘하는 건가? 그건 아니잖아. 백번을 하던 천번을 하던 아닌 것은 아닌 거다. 이런 부분이 잘 정리정돈 된 것이 보성소리다. 그게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그렇지만 다른 소리와 비교를 하는 식의 이야기는 아닌 것같다. 말이란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고 했다. 똑같은 질문하고 똑같은 답변하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말들 다 들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언중불리(言中不理)면 불여불언(不如不言)이라고 했다. 말이 이치에 닿지 않으면 말을 안하니만 못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후회가 든다. 나도 이치에 맞는 말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말을 안하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니까. 그냥 주고받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소리는 다 장점이 있다. 옳게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인 거다. 사람이 똑같다고 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인중인(人中人). 사람 사이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형태만 있지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다. 소리한다고 다 소리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내 답변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일문일답’보다는 ‘백문일답’이다(웃음).

▲ "문화를 하겠다는 사람이 우리 문화를 알아야지!" 조상현 명창의 일침이다

2. 聞樂知政 觀舞知德(문악지정 관무지덕)
-그 나라의 음악을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그 나라의 춤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덕을 알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춤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덕을 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정말 개판이다. 그러니 정치도 엉망이 되고 있는 거다.

지금 보면 소리한 지 1년도 안 된 이들이 20년 소리한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이다. 소리를 하려고 줄기차게 노력한 모습이 안 보이고 박자도 장단도 무시하고 그저 입만 벙긋거리면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박수 치고 노래 잘한다고 좋아한다. TV에 나와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TV에 나온다고 무조건 소리 잘하는 사람인가?

사람들이 판소리를 들을 줄 모르니 이들이 노래를 잘하고 소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노래나 소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목이 좋은 거다. 소리는 단전에서 나오는 것인데 단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목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니 그 소리가 좋은 소리인가? 그 차이를 사람들이 모르니 이들에게 속는 것이다.

지금 ‘한류’라고 세계에서 한국음악이 인기를 끈다는데 그게 정말 한국에서 나온 고유의 음악인가? 그들이 추는 춤도 우리 춤이 아니지 않은가?  여자들이 거의 벗은 상태에서 추는 춤이 우리 춤이라고? 음악이라는 것은 그렇게 소홀하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절대 예술이 아니다. 껍데기들이 방송을 타고 있다. 도둑놈이 오히려 득세하듯이 껍데기들이 오히려 예술을 한답시고 득세하고 있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최소한 30년의 수련을 겪어야한다. 수련이 뭔가? 갈고 닦는 것이잖나. 갈고 닦는 것만 30년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도 될까말까 하는 게 판소리다. 그 어려운 것을 1년, 몇 개 월 해서 소리라고 하는 모습은 정말 못 봐주겠다.

지금 예체능계 대학을 다닌다는 이들을 보면 잘하는 초등학생 6학년보다 못하다. 일주일에 전공 시간이 한 두 시간밖에 없고 그나마도 실력이 없는 이들에게 배운다. 예술을 모르고 판소리를 모르는 이들이 가르친다고 나서고 현대적인 용어를 들이대며 그걸 마치 고상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보면 환장할 정도다.  

내가 전남대에 11년 동안 있었는데 시간강사로 들어와 교수까지 됐다. 내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책임자가 그렇게 한 것이다. 실력있는 사람은 교칙을 바꿔서라도 부교수라도 시켜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된 것이다. 

뿌리도 없는 것을 배우고, 몇십 년을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고, 단시간에 유명해지려고만 하고, 사람들이 박수치고 좋아하니까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문화를 알려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알아야한다. 서양 문화만 알아서는 되지 않는다. 서양 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뿌리를 알아야 서양 문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 2009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준비하는 조상현 명창

3. 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하늘은 녹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이름없는 풀을 기르지 아니한다

하늘은 녹없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밥 못먹을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밥을 못 먹는다면 자기가 미련하고 게을러서 그런 거다. 도둑도 오히려 돈을 잘 벌 수 있다.

나는 남들이 10번을 연습했다면 만 번을 연습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간 연습을 한 후에야 아침을 먹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시립국극단에 있을 때는 단원들이 다 나간 밤 9시 반경부터 연습을 시작해 새벽 3시까지 하고 터미널 부근 식당에서 콩나물국밥 먹고 잠깐 눈 붙이고 출근하기도 했다. 이런 생활을 10년을 했다. 보성소리를 시작할 무렵에는 밥만 먹고 하루 15시간 연습했다. 자기 시간 15분도 안하는 지금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난 지금도 내가 소리를 잘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소리를 엄청난 시간 동안 갈고 닦았다 그랬지 소리를 잘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생각한 적도 없다. 가장 많은 시간을 소리질렀다고 할 수 있지 잘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76가지 소리를 연습했다. 나는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단련한 사람이다.  술담배 안하고 헛짓 안하고 집중해서 해도 될까말까 하는 게 판소리다. 

지금도 매주 월, 화요일에는 광주에서 목, 금,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강의를 한다. 건강해야 하니까 요즘은 러닝머신을 딱 61분, 1시간 1분을 한다. 1분이 왜 붙냐면 러닝머신이 속도가 붙는 시간을 포함한 거다. 정확히 한 시간을 뛰고 이전부터 배웠던 체조를 하고 나면 1시간 35분이 된다. 이 시간을 매일 운동에 쓰고 있다.

▲ 임권택 감독의 2000년도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가를 부르는 조상현 명창

4. 痴聾痼啞家豪富 智慧聰明却受貧(치롱고아가호부 지혜총명각수빈)
-어리석은 이나 귀가 들리지 않는 이, 지병이 있는 이도 부유할 수 있고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도 집안이 빈곤할 수 있다

소리하는 사람 최초로 공무원 연수원, 새마을 연수원 등 여러 연수원에서 강의를 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강연을 했다. 6,70년대로 기억난다. 각 도마다 지정된 문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는 기악, 경상남도는 무용, 충청도는 시조였고 지금은 인식이 바뀌었지만 판소리는 전라남도였고 전라북도는 농악이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지정됐음에도 남도에는 판소리 단체가 하나도 없었다. 

강연을 하는데 그 곳에서 당시 전남도지사를 만났다. 지사님에게 “지사님, 혹시 전남이 판소리가 지정된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왜 판소리가 전남에서 사라졌습니까? 이대로 놔두시겠습니까?”라고 했고 단체를 만들 것을 제안핬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전라남도 국악단이었고 국악단이 위치했던 곳이 목포시로 옮겨지게 되면서 시립국극단을 만들게 됐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판소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가 좋다고 잘 살고 머리가 나쁘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니다. 귀가 안 들리고 말 못하는 이들도 부자로 살 수 있고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도 가난을 면치 못할 수 있다. 어리석고 귀먹었다고 못사는 건 아니다. 

‘칼날이 비록 날카로워도 죄 없는 사람을 벨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죄가 없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헌데 가짜가 진짜로 행세하는 시절이다. 정치인도 국민을 팔아먹고 있다. 자손만대까지 잘 먹고 잘 살려는 이들이 과연 국민을 위하겠는가. 그들에게 한 번 내 강의를 들어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