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 “블랙텐트, '연극인 예술인 뭉칠 수 있다’자신감 줬다”
[인터뷰]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 “블랙텐트, '연극인 예술인 뭉칠 수 있다’자신감 줬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3.31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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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살얼음판이어도 관객과 뜨거운 소통에 힘얻어, 인생의 터닝포인트 될 것”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에 떠오르자 예술인들은 광화문광장에 텐트촌을 만드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1월 그 예술인들의 마음을 담은 대형 천막이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예술인들의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공연을 보고 후원금을 내며 이들과 연계했다.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은 남들이 힘들 것이라고 반대했던 블랙텐트를 광화문광장의 명소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끌었던 극장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기쁘게(?) 해체를 하게 됐다. 하지만 그간 쏟았던 노력, 그리고 관객들과의 뜨거운 소통을 생각하면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는 게 이해성 극장장의 심정이었다.

▲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

광화문을 떠나 극단 고래의 대표로 다시 돌아오는 이해성 극장장. 그는 이번 블랙텐트 운영과 텐트촌 생활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지만 관객과 뜨겁게 소통했던 블랙텐트의 기억과 함께 연극인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목격했던 그의 목소리를 이제 들어볼 차레다.

‘블랙텐트’가 해체된다. 지금의 기분을 먼저 듣고 싶다

일단은 감사하고 기쁘다. 하지만 인용 발표가 나기 전부터 이상하게 쓸쓸하고 허전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용이 확정된 날도 참 기뻤지만 뭔가 쓸쓸했는데 해체를 결정하고 난 후에 극장을 혼자 둘러보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게 쓸쓸함을 느꼈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인터뷰 직전에도 물품들을 빼는데 극장이 텅 빌수록 마음도 비는 느낌이었다. 이제 곧 캠핑촌도 철거하는데 텅 빈 광장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당분한 허전할 것 같다.

텐트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됐나?

지난해 12월 7일에 광화문 캠핑촌에 왔다. 앞서 계셨던 분이 나오고 제가 들어갔는데 송경동 시인과 천막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연극이나 공연계가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했으면 하는데 광장에 들어올 만한 컨텐츠가 별로 없었다. 천막극장이라도 있다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사실 농담삼아 말한건데(웃음) 송 시인이 누군가가 천막을 주신다고 해서 ‘그래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천막을 주신 분이 바로 장소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소장이다.

사람들을 섭외해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극장을 지을 준비, 프로그램 준비 등을 정말 많이 했다. 1월달에 텐트를 가져왔는데 경찰에 정보가 들어가면 반드시 막을테니 비밀리에 하기로 하고 새벽부터 짓기 시작했다. 한 70명 정도가 모여서 그 텐트를 쳤다. 칠 때도 장관이었는데 해체되는 모습도 장관이 될 듯하다.  

블랙텐트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100% 반대였다(웃음). 그때가 한창 연극인들의 텐트를 걷자는 이야기가 나오던 때였다. 원래는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아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는데 후임자가 없어 그냥 버티자는 생각으로 제가 계속 텐트촌에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힘든 일이다’, '관객이 온다는 보장이 있느냐‘,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거냐‘, ’공연이 힘들다‘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

송경동 시인과 제가 ’할 수 있으니 가자‘고 그들을 설득했다. ’광장에 천막극장이 들어선다면 이슈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고 언론에서도 주목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식으로 천막극장 설치를 현실에 옮겼다. 

첫 공연 때 느낌이 궁금하다

1월 16일에 제 작품 <빨간시>가 개막작으로 공연됐다. 시기가 너무 짧아서 들어올 작품이 없어 바로 한 달 전에 끝낸 공연을 다시 올렸다. 텐트 치고 거의 일주일 후에 작품을 선보이니 시간이 없었다. 무대도 만들고 객석도 들어와야하고 음향도, 조명도 들어와야하고 어마어마하게 일이 많았다. 작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표도 배우도 작품보다는 극장 만드는 데 많은 노동력을 들여야했다. 정신없이 했다.

공연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일반 극장보다 관객과 더 뜨겁게 만났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배우와 관객이 그 환경을 극복하고 일반인들이 극장에 와서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면서 극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 반응에 더 놀라서 더 뜨겁게 준비하고... 매번 그랬던 것 같다.

▲ 블랙텐트를 제공한 장소익 나무닭 움직임연구소 소장(왼쪽)과 이해성 극장장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을 것 같다

엄청 많지. 추운 날씨에 공연하는데 분장실이 완전 얼음골이었다. 배우들이 핫팩을 의상 안에 여러 개를 붙여도 추위를 느끼고 추워서 대사를 할 때마다 입에서 입김이 나오니 관객들도 안쓰러워할 정도였다.

관객석도 열려있는 공간이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공연 내내 동전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분은 공연보다가 막 좋아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박사모’ 같은 이들은 욕도 하고 전단지를 나눠주면 ‘이런 걸 왜 나한테 주냐’며 집어던지기도 했다.

토요일 공연 같은 경우는 관객 규제를 안했는데 관객이 엄청 많아 앞의 사람이 꽉 차다보니 뒤에 오는 이들이 우리 물품을 밟고 가기도 하고 한 번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책상을 밟아 부러져 내려앉았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어 안도했다.

또 한 번은 딤머가 잘못 연결되서 그만 타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일이 손보느라 엄청 고생했다. 만약 조명 시설이 잘못되서 불이라도 나면 천막극장은 물론이고 텐트촌도 불타고 촛불집회도 바로 그날로 종료되는 거다. ‘결국 모였더니 사고났다’는 말 들어도 할 말 없어지게 된다. 정말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아슬아슬했다.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장 인상깊은 공연이 있다면,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공연이 있다면

가장 많은 관객이 왔고, 반응도 뜨거웠던 공연은 <빨간시>였다. 객관적으로(웃음). 블랙텐트공연 중 가장 큰 공연이었는데 80석이 만석인 곳이 160석까지 차서 매 공연마다 객석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이윤택 연출가의 <씻금>과 세월호 어머님들이 직접 출연한 <그와 그녀의 옷장>이다. 이 공간에서 어머님들이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뜻깊었다.

<씻금>은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에 씻김을 하는데 ‘누구 와라’ 하면서 죽은 사람을 부르다가 마지막에 ‘아이들이 오네’ 하는데 그게 9명, 세월호 미수습자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우신다. 그 한 장면만 봐도 운다. 공연을 하고 배우들과 관객들이 밖으로 나가 세월호 광장을 돌고 분향소에서 다함께 분향을 하는 데 가슴이 찡했다. 이것이 공연의 의미라 생각했다.

이렇게 관객과 ‘뜨겁게’ 소통하면서 사랑받고 있는데 굳이 없애야할까? 다른 곳에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해주셨던 말씀이다. 반응도 좋았고, 역사적으로 상징성있는 건물이라고 하면서. 물론 원래 텐트 소유자는 흔쾌히 내주시겠지만(웃음) 운영 자체가 정말 쉽지 않다. 소수의 위원들이 정말 자기 개인사 다 포기하고 매달렸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후원금으로 계속 운영해왔지만 결국 줄여야하는 것도 현실이고, 이래저래 계속 붙잡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 시스템처럼 극장 역할 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엄청 크다.

물론 블랙텐트의 취지나 정신은 어떻게든 계승해서 연극인들이 이어가야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해체 직전 열린 토론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일단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토론을 했다. 아직 결론은 안 났지만 언젠가 그 방안을 의논하려고 한다.

서울연극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문제, 검열 등으로 연극계가 참 많은 피해를 입었다. 연극인의 입장에서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느낀 생각은

2015년부터 투쟁을 해왔고 광장에 나서기 전부터 토론도 하고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행동하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연극인의 입장을 떠나서라도 검열은 민주적 근간을 흔드는,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없앤다는 황당하고 가소롭기도 했다. 

이는 연극인, 예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열 문제에 침묵하면 시민들에게 100% 그대로 돌아가갈 수 있다. 우리가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시민사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이해성 극장장과 장소익 소장이 '광장극장깃발'을 해체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파면됐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이 어떨지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시민들이 무엇인가를 해냈지만 결국 뒤집혀진 경우가 많았잖나. 좋지 않은 결과가 계속 나온 전례가 있다. 박근혜의 측근들이 아직 남아있고 또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잔머리가 뛰어나지 않나(웃음). 어떻게 또 뒤집을지 그것이 불안하다. 특히 검열에 참여한 이들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치권도 그렇고 언론 권력도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이제 막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이제 시작할 여건이 만들어진 것 같다. 지금까지 쌓은 적폐가 어마어마하고 계속 나오고 있는데 시민 사회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권을 압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블랙텐트 설치 전과 설치 후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블랙텐트를 포함해 텐트촌에서 농성하고 노숙했던 100여일 이후의 삶은 많은 것들이 변할 것 같다. 정말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일 것 같다.

연극계는 이번 일을 통해 연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신들의 작업에 바쁘다보니 큰 저항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데 블랙텐트가 구심점이 되어 모든 연극인들이 배우로, 후원자로, 관객으로 서로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주며 한마음으로 연극 공연에 집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연극’이 아닌 ‘남의 연극, 남의 공간’에 말이다.

이 결과가 박근혜 탄핵 인용으로 이어지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우리도 연대한다는 동료간의 믿음이 가장 큰 변화라고 본다.

이번 촛불집회와 박근혜 탄핵으로 ‘문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된다. ‘문화의 힘’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우리 사회에 약자와 소수자들이 많잖나. 그 운동에 문화예술인이 같이 가서 융합이 되는 것인데 문화에는 ‘확장성’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노동자들이나 약자들이 투쟁하는 모습만 보면 시민들이 선뜻 지지하거나 참여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 거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간극을 문화예술이 해소하면서 저항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폭력 없이 재밌고 아름다운, 이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아픔에 예술이 섞이면서 많은 이들이 즐기고 감흥받고 아름답게 승화되는 것이 예술이다. 이 사회에 환원할 힘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소수만 즐기는 미학적 가치는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극단 고래' 대표로 돌아간다. 극단 고래의 올해 계획은?

갑자기 아득하네(웃음). 그동안 극단 일을 못 챙겼는데 갑자기 극단 계획을 물어보니 좀 아득하다(웃음). 5월에 <불량청년>이라는 작품을 앵콜 공연하고 11월달 정도에 신작을 올릴 예정이다. 

블랙텐트가 앞으로 어떤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는지

‘기억됐으면 좋겠다’와 ‘기억될 것이다’는 결국 같은 말일 것이다. 사회가 여러 단위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고 문화도 장르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는데 교류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흐름으로 소통하고 교류한 적도, 각 단위들을 모두 궤뚫은 경우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블렉텐트만의 공은 아니다. 텐트촌도 있었고 다양한 예술인의 노력도 있었다. 그렇지만 블랙텐트가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극장을 통해 장르들이 갖는 벽들을 다 깨고 다같이 움직이도록, 소통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기억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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