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종상 화백] 고구려 벽화 앞에 부끄럽다
[특별기고-이종상 화백] 고구려 벽화 앞에 부끄럽다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승인 2017.04.20 1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랑 이종상 화백/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철학박사 / 서울대학교 초대 미술관장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의 기치 아래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음흉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 무관심 속에 우리의 역사를 방치하고 있는 동안 동에서는 일본이 독도를 넘보고, 북에서는 중국이 역사를 노린다. 
  
지난해가 국내성 천도 2천주년이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그곳은 한국미술사에 중요한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중요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몇 년 전, 벽화 연구차 평양에 갔을 때 이 문화재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인 것을 알았다.

귀국 즉시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고구려특별전'과 '해동성국 발해전'을 기획하면서 북한의 문화재 등록을 돕자고 귀국강연회를 여러 번 가졌으나 별로 반응이 없었다. 이 계획은 결국, 지난해 7월에 중국의 방해로 보류되었고 그제야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영토는 정치가나 군인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듯 역사 수호 또한 사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는 문헌고증에 앞서 실증적 사실이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가 총체적인 책임을 떠안아야 마땅하다. 반세기 넘게 분단의 고통 속에서 고구려벽화를 잊어왔고 사상적인 오해를 꺼려 기피하기까지 하던 때도 있었다. 
  
둔황(敦煌)벽화를 모르고 중국미술을 이해하기 어렵듯이 고구려벽화를 모르고 한국미술을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고구려벽화의 재료기법 안에는 회화의 모든 원리와 한국미술의 자생적 요체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가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우리의 역사임을 구명함에 있어 문화의 내면을 구축하고 있는 현존하는 실체가 중요하다. 즉 재료기법사를 통해 동일문화권 안에서의 문화적 변별성을 분명히 밝혀낼 수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은 외연(外延)의 형식논리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에서 비롯된 질료와 그에 따른 기법적 연구가 양식사와 더불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벽화발굴작업에 일본의 화가를 참여시킬 정도로 재료기법에 관심을 쏟아 온 데 비해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는 강서대묘 답사 중에 오랜 의문점을 관리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대묘 보수 때부터 근무했다며 봉분에서 석회암괴가 황토층과 함께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해주었다. 조벽지(粗壁地)의 보존을 위해 오랫동안 석회층 피막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했다면 이것은 놀라운 보존과학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수 만년의 세월을 습기 속에서 견뎌 온 알타미라 벽화의 석회피막 형성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벽화마다 누수의 물매가 고르게 잡혀져 있었던 의문의 단서가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 화가들은 중국의 벽화와 달리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석회동굴의 피막형성 과정을 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 필자가 현지에서 확인한 4세기 초 차오양(朝陽)의 원대자묘(元大子墓)에서는 사신도의 위치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 이처럼 중국의 벽화와 고구려의 벽화는 양식과 재료기법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벽화는 모든 회화기법의 시원이며 벽화가들은 과학과 철학, 건축 환경 등을 종합한 뮤럴리스트(Muralist)들이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해본다. 인간의 수명은 날로 길어만 가는데 예술지상주의를 내걸고 달음질치는 현대미술은 재료기법의 무지로 작품의 수명이 짧아만 가니 하는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그토록 많은 미술교육기관들이 널브러져 있건만 어디 단 한 곳에라도 벽화전공학과가 개설되어있는지를…. 벽화공부는 보존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첨단 예술과학분야다. 벽화전공의 제자를 중국, 인도, 유럽 등지로 보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고구려벽화가 우리 조상의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럽다.

그러니 진즉 중국과 고구려 미술이 확연히 구분되어지는 동류이속(同類異屬)의 문화본질을 재료기법적으로 분류하고 연구하였더라면 정치사에 못지 않는 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방화시대에 걸맞은 특화문화를 창조할 때다. 중앙에서 놓쳐버린 특수학문분야를 오히려 지방의 교육기관에서 개설하는 것도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칼럼은 지난 2004년 이종상 화백께서 한 매체에 기고한 내용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왜곡된 우리의 역사와, 그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 책무가 있는 우리들이기에 다시 한번 본지에 게재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환기를 시키고자 합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