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 "충무아트센터, 세계적 이름 떨치는 문화공간 만들고파"
[인터뷰]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 "충무아트센터, 세계적 이름 떨치는 문화공간 만들고파"
  •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4.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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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있는 공간, 레퍼토리 찾는 노력 지속, 전시 공연 어우러진 'CAC 페스티벌' 꿈꿔"

충무아트센터, 충무아트홀. 아마 이 곳을 거론하면 반사적으로 '뮤지컬'을 떠올릴 이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뮤지컬 붐'에는 충무아트홀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 <몬테크리스토>, <잭 더 리처>, <맨 오브 라만차> 등 스테디셀러 뮤지컬들이 이 곳에서 상연됐고 내노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모두 이 무대를 밟았다. 그렇게 충무아트홀은 '뮤지컬의 메카'가 되고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지난해 뮤지컬인의 축제로 새롭게 변신한 예그린뮤지컬어워드도 충무아트센터의 손길이 미친 행사였다.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빛낸 이들을 알리는 '명예의 전당'도 이곳에 있다. 뮤지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곳에 있었다.

▲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

하지만 뮤지컬만으로 충무아트센터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양한 공연들이 열리고 있고 갤러리에서는 '서양미술사 아틀리에'를 마련해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에 시장 사람들도, 인근 주민들도 부담없이 공연을 즐기기를 바라는 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주민들이 있어야 이 곳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바로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이다.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주민과 함께하는, 서민과 어울리는 충무아트센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를 만나자마자 그가 보여준 것은 세계 각국에서 슬럼도시를 문화의 도시로 만들어낸 과정을 담은 자료들이었다.

그것은 곧 김승업 사장의 꿈이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문화공간이 되고 이를 통해 시장 골목으로 잘 알려진 중구 신당동을 문화도시로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꿈이 인터뷰 내내 반복되고 있었다.

예술을 전혀 몰랐던 화학도의 변신. 그 변신을 통해 만들어낸 충무아트센터의 이야기를 이제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말이다.

 

충무아트센터, 충무아트홀하면 자동적으로 '뮤지컬'이 떠오른다. 그 원동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술을 접할 기회를 가지려면 뭔가 계기가 있어야한다. 사실 지금 우리 삶이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지금 사는 사람들은 웬만한 지식은 다 가지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은 있다. 이 정도면 사실 잘사는 거다.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계기가 마련되면 시장 상인들도 이 곳 공연을 볼 수 있는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다.

2004년에 시작을 했는데 3개 극장 1,255석으로 늘렸다. 엄청난 결단이었다. 이 결단이 없었으면 구민회관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테스트를 하다가 뮤지컬을 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도 뮤지컬이 잘 된 것은 하늘이 도왔다. 어느 나라 음악을 들어도 리듬은 다 통한다. 그것이 뮤지컬과 잘 맞았고 드라마틱한 요소도 한 몫했다. <레미제라블>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 <미스 사이공> 같은 것 보면 뭔가 유식한 느낌도 들지 않나(웃음). 그렇게 뮤지컬이 공연되어 흥행하고 그것이 <프랑켄슈타인> 창작까지 이어졌다.

4,5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는 전부 외국 작품들이 공연됐기에 '우리는 왜 못 만드나'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때였다. 소재는 외국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극을 쓰고 음악을 만들었다. 우리 뮤지컬이 필요했던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 주요했다. 첫 공연이 흥행하고 상도 받았다. 1년도 채 넘지 않아 재공연됐고 지난해까지 250회 공연에 25만명의 유료 관객이 들었다. 이 공연을 평하자면 뮤지컬의 흥행도 있지만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뮤지컬이 이제 산업으로 올라가게 됐다. 아주 경이적인 일을 한 것이다.

지컬의 인기가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라이센스 독점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참 많아졌다. 무엇을 하던지 거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단 숨고르기를 하는 것 같고 당분간 이런 일이 계속될거다. 최근 들어 여러 문제들로 인해 관객 수가 많이 감소됐다. 세월호도 있고 메르스도 있고 국정농단 사태도 있었고... 관객들에게 받은 돈으로 재투자가 이뤄져야하는데 이런 사태가 계속되니 큰 돈을 가지고 제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독식은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고 공동 투자로 방향이 전환됐다. <프랑켄슈타인>의 성공도 5개 기업이 공동 투자를 했기에 가능했다. 서로 합의를 해야 돈이 나가기 때문에 회계 처리를 잘 풀어낸 게 효과를 봤다

'이코노믹 펀딩',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제작하는 방법을 논의해야하고 마케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입소문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이 단체 관람을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산업과 충무아트센터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프로듀싱시어터로 더욱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을 선사할 계획으로 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4월 공연되고 8월에 <벤허>를 공연한다. 메인 캐스팅은 다 끝났고 8월 공연이 확정됐다.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 신당동을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김승업 사장의 꿈이다.

뮤지컬 외에 연극, 발레 등 다른 공연도 진행 중인데

지금 뮤지컬 관객 층을 보면 20~40대가 거의 90%고 이 중 2,30대 여성 관객이 75% 이상이다. 그렇다면 2,30대 남성들과 50대 이상 관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빈 시간을 이용해 발레나 클래식도 하고 영화제도 그 일환으로 하고 있다. 

물론 뮤지컬도 관객층이 바뀔 수 있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소외된 이들을 다른 장르로 유도해 문화의 폭을 더 넓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래서 중극장은 연극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뮤지컬도 진행은 할 것이다. 뮤지컬 공연이 내년 말까지 차 있어 짬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10년 후를 내다보고 진행하려한다.

'시즌제'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사실 시즌제를 하려면 자체 제작 시스템이 있어야한다. 자체적으로 예술단을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다. 

지금은 레퍼토리를 찾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자체기획 사업으로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하려고 한다. 발레, 오페라, 어린이 미술전 등도 있고 ‘정동야행 고궁음악회’ 처럼 지역 특성과 충무아트센터의 역량을 결합한 행사로 마련하고 있다. 그렇게 ‘책임경영’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중이다.

충무갤러리가 '서양미술사 아틀리에'를 운영 중이다

갤러리의 약점이 있다. 아트뮤지움이 되려면 작품의 보관이 완벽해야하는데 우리는 면적이 좁아 정통 미술관이 되기는 어렵다. 고가의 그림이 걸리면 직원이 밤새 지켜야할 지도 모른다(웃음). 이 곳을 뮤지엄의 개념보다는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교육적인 장소로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장르와 어울리는 공간으로 갤러리를 만드는 데 주목하고 있다. 갤러리가 분위기가 있으면 공연장도 분위기가 있어보인다. 전시 공간이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다. 오후에 전시장에 앉아있는 이들을 보면 극장 분위기가 조성이 된다. 주간 활동을 중요하게 보고 사계절 운영 프로그램이 레퍼토리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지방에 있었을 때는 어른들이 참 많이 왔는데 여기는 아이들이 많이 온다. 기업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고가의 진품을 보는 곳이라기보다는 미술을 가깝게 받아들이는 교육의 장소다. 진품을 보고 싶으면 루브르박물관에 가고(웃음). 낮 동안 아트센터의 기능을 하고 아이들이 미술에 친숙해지도록 만들면 나중에는 엄마 아빠 없이도 혼자 갤러리를 찾고 공연장을 찾는다.

사람이 모이면 아트센터가 중심이 되고 공연과 전시가 한데 어우러지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게 'CAC 페스티벌'이다, CAC는 충무아트센터의 약자이면서 충무아트센터의 정통성이기도 하다. 창의적 도전(Creation), 능동적 공연(Action), 소통하는 문화 공간(Communication). 이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올해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2회째를 맞이한다

영화는 사실 서민사업이다. 돈 만 원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제작자가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리메이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공연과 다르다. 영화제라는 것이 새로운 걸 보여주기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뮤지컬영화라는 것 자체가 일단 새로운 장르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누구나 다 알지만 뮤지컬영화라는 장르는 여전히 생소하다. 그 점을 봤다.

게다가 올해 뮤지컬영화 <라라랜드>가 흥행에 성공하고 골든글로브,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이번 영화제는 ‘라라랜드’를 키워드로 이 영화는 물론 1967년 시대의 뮤지컬 영화를 상영하고 <겨울왕국>, <오페라의 유령> 등의 라이브 더빙쇼 등 40여편의 뮤지컬 영화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특히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는 20세기 대표 뮤지컬 안무가, <시카고>, <캬바레>를 만든 밥 포시를 조명한다.  
 
지난해 예그린어워드를 준비하면서 무척 고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뮤지컬 상이 다 없어졌다. 예그린어워드가 마지막인데 이것까지 없어지게 생기니 걱정이 많이 됐다. 며칠동안 '명예의 전당'에 계속 앉아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명예의 전당' 때문에 타 장르 예술인들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공공기관이 특정 장르에 벽면을 할애하느냐'라는 것이다. 결론은 '이것마저 없어지면 끝이다. 나도 손 뗀다'였고 뮤지컬인들이 모두 모이는 공간을 이 곳으로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조직위를 만들자마자 뮤지컬인들을 다 만나 참여를 유도했다. 시상식도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중심이 되도록 했다. 제가 조직위원장이었지만 조직위원장 스피치도 없앴다. 수상자가 발언을 많이 하도록 했다. 그렇게 임영웅 선생부터 조승우, 유준상 등 배우들까지 다 모였다. 이들이 뒷풀이까지 모두 남았다. 지난해 참 힘들게 준비했기 때문에 올해는 비교적 쉬울 것 같기도 하다(웃음) 

문화나눔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소외계층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월요일N콘서트’,  ‘금난새의 클래식 판타지아’ , ‘찾아가는 문화사랑방ACT' 등을 운영하고 ’청소년 배우체험‘을 종합적인 극장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있다. 

▲ 슬럼도시를 문화의 도시로 바꾼 세계 각국의 자료를 보여주고 있는 김승업 사장

화학과를 나왔는데 문화계로 방향을 전환한 과정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만화 때문인 것 같은데(웃음) 특히 물을 좋아해서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수학, 물리학 같은 과목이 참 재미있었고 대학도 그 계통으로 갔는데 사업이 맞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무역업을 시작해 세일즈 엔지니어링을 하고 해외 기자재 입찰을 맡아서 하다가 '예술의전당을 짓는 데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있다가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3년만에 끝난다'는 말만 믿고 갔는데 속은거다(웃음).

건설 과정이 완전 엉망이었다. 설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3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하고 사업계획서를 거의 다시 썼다. 자문회의에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 줄 숫자를 6개(실제는 4개)라고 말한 거다. 기타 줄이 6개니까 현악기는 당연히 6개인줄 알았지. 이 정도로 문화 예술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었다.

그때부터 동대문 헌책방을 다니고 국립중앙도서관을 다니고 공연장, 전시회장 가며 계속 공부했다. 도록을 가져다가 습자지에 대고 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발로 뛰면서 지식을 얻었고 그러면서 바이올린 줄이 4개라는 걸 알게됐다(웃음).예술의전당 일을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뇌출혈로 한때 '사망선고'까지 받았다고 들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근무하면서 리노베이션을 한창 마무리하던 중에 2002년 뇌출혈이 터졌다. 의사가 '이제 준비를 하시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쩌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늘이 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렸는데 그간의 기억들이 다 지워진 게 안 좋았다. 지연, 학연, 혈연 없는 곳에서 새롭게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김해문화의전당으로 가고 부산영화의전당으로 갔다. 부산영화의전당 사장 때는 처음으로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웃음). 

다쳐봤다는 것이 제게 큰 힘을 줬다. 욕심을 버리게 됐다. 직원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난 욕심없다. 2019년이면 다 끝난다. 그걸 더 하려는 건 무한정한 욕심이다. 지금 월급받으며 일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이 마당을 꾸미는 건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마음껏 놀아라'.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 모토는 '그게 네 거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결국 빌려쓰는 것이다. 내 집, 내 자리, 내가 가진 것 모두 다 빌린 것이다. 낮을 저(低), 빌 허(虛). 나를 낮추고 욕심을 비우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그게 인생철학이다.

충무아트센터의 앞으로 계획은? 그리고 목표는?

지금까지 해 온 것을 계속 발전시키고 중구민을 위한 문화사업을 지속하고 DDP와 연계해 ‘CAC 문화벨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서울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물론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그리고 충무아트센터가 잘 되려면 주민들이 많이 도와주고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이 없으면 똑바로 갈 수 없다.  관객들의 반응은 거짓이 없다. 관객인 주민들과 함께 가야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좋은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주민과 함께하는, 주민과 같이 가는, 주민과 숨쉬는 아트센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색있는 프로그램으로 서울 문화의 한 축이 되도록 하겠다.

항상 아쉬운 것이 아트센터 앞에 광장이 없다는 것이다. 광장이 있다면 비형식적인 무대도 마련할 수 있다. 가령 노래 공연을 하면서 공연을 보는 이들이 따라부르고 자연스럽게 아트센터와 친해질 수 있다. 시장 사람들도 부담없이 공연을 즐기면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가 항상 이상적으로 보는 곳이 프랑스 퐁피두 센터인데 우리도 충분히 그곳에 못지 않게 세계적인 명소가 될 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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