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붉은 자화상' "한지(漢紙)로 만든 무대에 작가의 고뇌와 예술 담았죠"
[인터뷰] 오페라 '붉은 자화상' "한지(漢紙)로 만든 무대에 작가의 고뇌와 예술 담았죠"
  • 탁계석 평론가
  • 승인 2017.04.21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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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자화상은 오늘 우리 시대 자화상" , 5월 6~7일 국립국장 해오름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창작오페라 '붉은 자화상'이 5월 공연(6일, 7일, 국립극장)을 앞두고 남산드라마센터에서 한창 연습에 열중이다. 살짝 봄비가 내리는 오후 남산 둘레길을 올라간 연습장은 구슬땀을 흘리며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살다간 천재 화가 윤두서를 재현하기 위해 바빴다. 탁계석 음악평론가가 이들의 현장을 스케치했다 <편집부>

▲ <붉은 자화상> 연습에 한창인 출연진들

창작오페라 윤두서가 인문학에 밝은 분들은 모두 알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페라는 창작인 만큼 미리 포인터를 짚어본다면 관객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수동 예술감독(이하 장): 그렇지요, 이번 작품은 무대가 한지(漢紙)로 제작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살려 서구 오페라 무대와 전혀 다른 한국미를 추구한 것입니다. 전체 무대를 흐르는 색감도 흰색,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의 3가지 색조(色調)가 기조를 이루는 단순하면서도 상징성이 높은 무대를 구성해보려고 합니다.

작품이 잘 나온다면 분명 독창성있는 작품이 될 것 같은데요. 한지를 사용하면서 무대의 기술적 문제는 없습니까?

: 마치 두 겹의 생일 케익이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는 회전무대 형식입니다. 장치적인 무대 전환이 없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무대 전환에 걸리는 시간 대신 작품에 집중력을 높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자화상인 만큼 윤두서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겠군요.

: 그렇죠. 윤두서가 일본에서 건너온 백동경 거울을 계속보면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 필치가 이토록 세밀하니 놀랍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빈센트 고흐, 고야, 렘브란트도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당시 전경산수(眞景山水)를 그리던 시대의 화풍에서 인물, 그것도 자화상을 그린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고 센세이션한 미술사의 혁명이죠. 녹우당에서 그린 전체 8개의 작품이 나타나면서 작가의 일생을 반추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낚시, 돌 깨는 사람 등의 인물이 그림의 소재입니다.

이번 스텝들의 수고가 알려진 서양 오페라의 몇 배가 될 것 같은데요.

: 뭐든지 세상에 없던 것을 하나 만들어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탄탄한 팀웍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연극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극작가 김민정이 대본을, 제가 연출을, 차세대 마에스트로인 구모영이 지휘를 맡고요. 오윤균 무대미술가와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고희선이 조명을 잡았습니다. 또한 파격적인 춤사위의 김평호 안무가가 안무를 맡고 가장 많은 오페라를 한 프라임필하모닉, 마에스타 오페라합창단으로 진용을 꾸렸으니 많은 분들이 오셔서 관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연습이 아닌 팀 전체의 캐스팅은요?

: 바리톤 장철과 장성일이 윤두서 역, 그의 딸 영래 역은 소프라노 이효진과 박하나. 영창 역은 테너 엄성화, 김주완, 현대화가 윤현 역은 테너 이대형과 최재도의 더블 캐스팅입니다. 이밖에도 메조소프라노 최정숙, 이미란, 소프라노 이종은, 테너 위정민, 베이스 장철유, 베이스 구교현 등 여러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이 합류해 극에 활력을 더할 것입니다.

▲ <붉은 자화상>은 과거가 아닌 오늘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벨칸토(bel canto)발성이 아닌 우리 칼라, 딕션, 가락의 새김세를 넣는 등 성악적인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바리톤 장성일: 네, 이태리 발성으로 윤두서의 고뇌와 내면을 표현하긴 어렵죠. 이 작품엔 현대적 요소도 있고 윤두서의 강직함,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 작가로서의 열정, 줄이은 가족사의 비애를 겪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남인, 서인의 역모(逆謀) 등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세상보다 어쩌면 더 가혹한 시대운명을 겪고 있으니 참으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합니다.

계속 대본을 읽고 노래를 음미해 캐릭터를 소리에 녹이려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서양발성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우리 소리의 미묘한 질감, 창에서처럼 꺾고 떨리는 소리, 제주의 민요 장단 등 작품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에 이제 눈을 뜬 기분입니다.

스승의 작품에 매료된 제자가 스승의 딸과 사랑을 나누고 미쳐가는 스승의 고뇌와 아픔을 대신 겪지만 이 둘의 사랑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환영(幻影)으로 교감을 하는 것이군요,

소프라노 이효진: 저는 딸 영래로 이루지 못하고 떠나버린 사랑하는 님을 늘 안타깝게 그리워하는 배역입니다. 꿈속에서도 늘 그 환영이 그려지죠. 몽유병처럼...그래서 제 노래엔 ‘광란의 아리아’ 같은 것이 들어 있답니다. ‘사랑을 말해~’, 해남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겨울바다에 흰 눈이 내리고.. 장면적으로도 멋지지 않습니까(웃음) 검은 물이 덮치고 이는 죽음을 상징하죠.

영창 역을 맡으셨군요.

테너 엄성화: 제가 스승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죠. 스승의 딸인 영래를 사랑하지만 이뤄지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마는 슬픈 비극적 운명이죠. 이처럼 작가란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특히 시대에 앞서가면서 사회나 대중으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는 바로 오늘의 우리 자화상이 아니겠습니까.

윤현은 제자이군요.

테너 이대형: 그렇습니다. 제자인 제가 스승님의 그림을 보다가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극의 시작입니다, 좌절과 분노, 역모를 겪는 선생의 처절한 아픔과 고뇌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 분노를 저 역시 체험합니다.

윤두서처럼 고뇌했을 작가의 마음

연습 과정을 보면서 신예작곡가가 오페라를 쓴다는 것은 이전에는 거의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오페라아카데미를 통해 창작에 교육과정이 생기면서 물꼬가 터졌다, 대학에서 조차 이런 과정이 없었던 것인 만큼 창작사관학교 역할을 한 것이다. 이번 작곡가 고태암의 ‘붉은 자화상’ 이 그 첫 결실의 대작이다. 그러니까 2016년 오페라창작지원사업의 일환인 것.

이번 창작 한번으로 단번에 명작(名作)의 탄생을 기대할 순 없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에베르트 산을 첫 등정하는 듯한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날의 밤을 악보와 싸우면서 고뇌했을 것이다. 자신이 음악으로 만든 ‘붉은 자화상’은 윤두서가 목숨을 던지고 혼을 불사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불편하고 가혹하기까지 한 오늘의 현실에서 예술로서 밥먹고 살려는 많은 예술가의 처지와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붉은 자화상은 과거가 아닌 오늘의 자화상인 셈이다.

오페라로 보는 화가의 생애는 관객의 즐거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버티어야 하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나? 모두가 혼돈이고 방황인 상황에서, 이 작품은 오늘의 시민관객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고전의 매력이다. 제목도, 내용도 익숙하지 않은 서양오페라에 비하면 스토리의 이해가 쉽고 따라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고 한류로 우리 작품들이 세계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때에 조선의 천재화가 윤두서, 국보 제240호. 그의 초상화가 유럽 무대에 선 보일 수 있다면.... 미리 예측해 보는 오페라의 꿈이지만 관객 박수 갈채가, 우리 오페라에 애정이 쌓이면 그 꿈은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시대와의 불화에 정면으로 맞섰던 조선의 천재 화가 윤두서의 회화 세계를 오페라로 보는 것은 인생을 멋지게, 삶의 가치를 높이는 여유의 몫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