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옥 야외전시장에 네온 불빛? 강원도 특색은 어디에 있나?
[기자의 눈] 한옥 야외전시장에 네온 불빛? 강원도 특색은 어디에 있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5.04 0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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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봄놀이 산 꽃 밥' 정체성 없는 전시 할 필요가 없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예술활동을 통한 홍보가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닥 열기가 있어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난 국정농단 사태와 '장미대선'이라는 그럴싸한 핑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노력 부족'을 감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여러 기획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활발하게 추진 중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동계올림픽이 그저 그런 행사로 지나간 채 끝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섣부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 오징어순대, 가자미식해, 감자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한 미디어 테이블

지난 4월 15일부터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봄놀이 산 꽃 밥>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공동 주관하는 한식문화특별전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강원도 산간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전시하는 '산', 민속유물과 회화, 공예품을 선보이는 '꽃', 강원도의 고유 음식을 선보이는 '밥'이 이 전시의 중심이다.

하지만 막상 전시장을 둘러본 소감은 단 하나였다. '뭐가 없잖아'. 그랬다. 이 전시는 그야말로 '갖다붙이기'로 만들어진 전시였다. 갖다붙여서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한다. 그 편의주의적 발상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 이번 전시다.

전시장은 사실 작다. 하지만 전시장이 작은 것이 단점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산' 부분은 그림 몇 개 벽에 건 것이 전부였으며 그것도 강원도의 겨울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강원도라면 겨울을 연상한다고 하지만 '봄놀이'에 겨울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을 줄 만하다. 

강원도 음식 소개도 미니어처로 만든 음식 전시가 다다. 미디어 테이블을 통해 오징어순대, 가자미식해, 감자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는 하나 이 역시 재미를 주지 못했다. 나열식으로만 전시를 하다보니 정작 강원도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했다. 문제는 민속유물 전시다. 강원도 부엌의 살림살이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막상 보면 강원도만의 개성이 드러난 것이 아닌, 우리가 박물관에서 익히 봐왔던 물품들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둘러보면 전시장 관람이 끝이다. 무엇이 '강원도의 봄'을 의미하는지 도통 모르는 채로 말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야외전시장 오촌댁을 보면 배추가 쌓인 모습이 있다. 그냥 보면 '아, 배추를 쌓은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볼 수 있는데 소개판을 보니 최정화의 '배추'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판을 보면 배추가 아닌 '최정화'가 더 크게 표시되어 있다. 이것이 오히려 전시의 분위기를 망쳤다. 차라리 소개판이 없었으면 그냥 좋게 보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을 작가 이름을 크게 쓴 소개판을 붙여 오히려 전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 오촌댁에 놓여진 배추조형물. 이 자체만으로는 훌륭했다. 그러나...
▲ 작가의 이름을 강조한 소개판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친 셈이 됐다

주최 측은 "오촌댁에서 최정화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고 소개했지만 한옥의 분위기를 살린 오촌댁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을 설치하며 오히려 전시 분위기를 흐렸다.

전통 부엌에 맥주컵, 유리병 등이 전시된 '밥상탑'은 조화는 커녕 언밸런스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고 네온 불빛을 비추는‘Alchemy’(알캐미)라는 이름의 작품은 '생뚱맞음' 그 자체였다. 장소와 전혀 맞지 않는, 아니 오히려 장소의 분위기를 망치는 전시, 작가의 이름을 더 띄우는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봄놀이 산 꽃 밥>은 평창동계올림픽도, 강원도의 봄도, 심지어 산, 꽃, 밥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올림픽 기념 행사를 해야하기에 작품들을 갖다맞춘, 구색만 갖춘 전시로 보여줬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작가의 이름을 강조하고 봄과 관련없는 그림을 전시하는 모습 등은 대체 전시를 준비하는 이들조차 이 전시를 왜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 한옥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 작품이 전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던 한식문화 특별전 '여름나기-맛 멋 쉼'을 인상깊게 봤다. 당시 전시는 우리 고유의 여름음식상과 조형물을 비롯해 <각양별양> 등 음식과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고, 오촌댁에서 신발 벗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고 음식을 시식하고 만들어보는 '셰프 체험' 등 참여 행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여름나기를 체험케하는 소중한 시간을 준 바 있었다.

아마도 그 기억 때문에 이번 전시도 나름대로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오고 말았다. 참여 행사조차 준비된 것이 없다. 그럼 무슨 재미로 전시를 볼 수 있을까?

대체 이 전시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박물관 전시물 보여주기? 특정 작가 띄우기? 올림픽을 빙자한 돈놀이? 여러 불길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전시는 앞으로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그나마 국립민속박물관의 봄길을 걸으며 늦봄, 그리고 초여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나 할까? 정체불명의 전시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이럴 바엔 주제 없이 편하게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