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는 동자동 빈민들의 행복한 어버이 날 잔치
사랑을 나누는 동자동 빈민들의 행복한 어버이 날 잔치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5.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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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사람들’ 빨래집게 사진 나눔전도 열려

서울역과 건너편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외딴섬처럼 둥지를 튼 동자동 쪽방촌은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코앞에 두고도 ‘동자동 쪽방촌’을 물어야 할 만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가려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지난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 다큐사진가 조문호씨의 '동자동사람들' 빨래줄 전시풍경

‘동자동 사랑방’(대표 김호태) 가족들의 힘으로 마련한 어버이날 잔치는 올해로 여덟 번째라고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 쪽방촌 빈민들에게 이날만큼은 한 가족이 되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약주를 곁들인 음식을 대접했다.

▲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동자동 쪽방주민들 외에도 노숙자들까지 모여 모처럼 정담을 나누는 즐거운 자리였다. 평소엔 공원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이날은 행사장에서 준비한 주류에 한해 마실 수 있도록 배려 해 잔치 분위기를 돋우었다.

▲ 어버이날 잔치마당이 펼쳐진 '새꿈 어린이공원'

이날 잔치는 관이나 민간단체에서 후원을 전혀 받지 않고, 동자동사람들의 조그만 성금으로 만든 소박한 자리였지만 300여명이 모여드는 성황을 이루었다. 김호태 회장은 “이날의 잔치비용으로 250만원이 들었는데, 한 푼 두 푼 229명이 낸 모금액이 공교롭게도 지출과 맞먹는 2,513,230원이었다”며 "욕심 없는 사람들의 행복한 잔치마당"이라고 말했다.

▲ 잔치가 끝난후 '동자동 사람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고 다함께 협력해 잔치를 진행했는데, 쪽방 주민들보다 더 어려운 노숙인들을 대접하게 되어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이날 어버이날 잔치의 색다른 이벤트로,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자동 사람들’ 빨래줄사진 나눔전이 함께 열렸다. 공원 주변 나무 사이로 쳐진 빨래 줄에는 A4 규격의 사진 135점이 만국기처럼 걸려 전시됐다.

쪽방사람들의 초상사진, 결혼사진, 시위나 단체사진, 살아가는 모습 등,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서로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 '동자동사람들'을 기록하기 위해 이주한 다큐사진가 조문호씨와 7년째 동자동을 기록해온 사진가 김원씨

이 사진은 지난해 10월, 동자동으로 이주한, 다큐멘터리사진가 조문호씨가 찍은 사진으로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마련한 전시라고 했다. 서로 보기 쉽게 빨래 줄에 걸어 전시를 하고, 잔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본인 사진은 스스로 가져가도록 진행했는데, 쪽방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 동자동사람들이 전시된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37년째 동자동에서 살고 있다는 이재화(81)어르신은 사진을 품에 안으면서 “내 영정사진으로 간직하고 있겠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에 조문호 사진가는 “경제적 여건으로 다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며, “빠진 분들은 오는 추석잔치에 다시 빨래줄 전시를 열어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 이재화(81세)어르신이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또한 ‘동자동사람들’을 7년째 기록하고 있는 사진가 김원(53)씨는 “이곳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는다. 일주일만 건너뛰면 기다리고 전화하는 이들 때문에 매주 오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회에서 나누어주는 물품이 아니라, 자기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따뜻한 온기”라고 말했다.

▲ 김만귀(48)씨가 자신의 합동결혼식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회장과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우건일 이사장, 남영동 동장 마필승씨가 나와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 어버이날 잔치마당을 열고 있는 동자동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