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검은 도시의 여자광부, 박병문의 ‘선탄부’를 보라
시간이 멈춘 검은 도시의 여자광부, 박병문의 ‘선탄부’를 보라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5.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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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부터 충무로 갤러리브레송 전시, 선탄부 어머니들의 슬픔 애환 담아

사회의 얼굴을 역사 속에 기록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사진은 개인적, 사회적 기억과 순간의 경험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과거의 기억을 통해 그 경험을 구체화 한다.

사진가 박병문씨는 평생을 광부로 일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지하 막장과 탄광촌지역을 10여년 넘게 촬영해 왔다. 그 다섯 번째 ‘선탄부’사진전이 오는 19일부터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전시를 갖는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이번 전시는 그의 광부 프로젝트 중 네 번째 주제인 ‘선탄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물질을 골라내는 곳이 선탄부라는데,  채용이 남다르다고 한다. 무너진 막장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이나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위해 특채로 채용되어 여자광부로 일한다는 것이다.

▲ '선탄부'-여자광부(사진제공-박병문)

막장에서 채굴된 탄은 여자광부인 선탄부의 손에 의해 잡석과 갱목, 철사, 경석 등, 각종 이물질들이 선별되고 30개의 컨베어 벨트를 거친 후 완성된 연탄으로 재탄생된다. 혹독한 분진과 소음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선탄부 어머니들의 슬픔과 애환이 그의 사진 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물도, 땅도, 아이들 얼굴도... 하늘만 빼놓곤 온통 까만 동네에 눈이 오면, 하얀 이불이 덮인 냥 마냥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밤샘작업을 끝내고 아침이 밝아오는 집을 향해 질퍽한 눈 위를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삶의 숭고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은 시대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예술보다 더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의 사진은 평범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풍경보다 삶의 내용을 읽어내라고 주문한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아버지의 검은 땀방울은 숭고했다고 한다. 숱한 세월이 흘렀건만, 검은 땀으로 범벅된 막장에서 시작하여 차곡차곡 쌓여진 거대한 선탄장까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 기록의 여정은 자신의 숙명이었으며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선탄부 여인들이 겪는 고난의 여정과 힘겨운 삶을 컬러가 아닌 흑백의 묘미로 보여주려 했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그는 석공 뺏지를 달고 다니던 아버지를 따라가면 어디서든 대우받았다는데, 식당주인이 얼굴이 말끔한 사람은 손님 취급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어른이 된 지금 아버지가 흘렸던 검은 땀방울의 숭고함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챙겨들고 탄광촌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가 한창이던 탄광촌에서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이끌었던 시대가 있었다. 가족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더 깊은 막장으로 들어가야 했던 광부들의 삶은 검은 시간 속에 그대로 멈췄다.

▲ '선탄부' - 여자광부 (사진제공-박병문)

이번 전시와 함께 펴낸 ‘선탄부’사진집에 실린 사진가 김문호씨의 해설을 읽어보자.

“그의 사진은 특이한 소재를 찾아 나선 ‘탐미적 호기심’의 결과물도 아니고,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만들어낸 ‘사회학적 보고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선언문도 아니다. 또한 그는 탄광과 광부라는 특이한 소재에 관한 ‘탐험’을 하고 있는 것도, 사진을 매개로한 낙낙한 예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지금 카메라를 들고 평생을 광부로 일해 온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내고, 거기서 자신의 현존의 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 나의 탯줄이 묻히고 나를 길러낸 검은 땅, 그리고 그 땅에서 아버지와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 '선탄부' - 여자광부의 작가 박병문씨

그의 사진은 큰소리로 과장된 외침이 아니고, 따뜻한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잔잔하게 말을 걸어온다. 현실 속에서 소멸되어가는 사회적 시선의 재발견으로,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원형의 이미지를 사진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광부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우리시대 모두의 아픔이다.

전시문의 (갤러리브레송 02-2269-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