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5월의 정동을 추억하며 -해적(Le Cosaire)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5월의 정동을 추억하며 -해적(Le Cosaire)
  •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 승인 2017.05.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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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한국 최초의 예술중학교인 예원학교는 지금도 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다닐 때의 교장은 지휘자 임원식 선생님이었다. 오월이면 교정에는 붉은 장미가 만발하고, 풀밭 위에서는 음악과 학생들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어우러졌다.

그 음악에 맞춰 무용과 학생들은 임성남 안무의 발레를 선보이곤 했다. 교실 창 밖 가까운 언덕 위로는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의 일부였던 아름다운 자태의 하얀 탑이 보였다. 탑은 아련하게 나를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쪽을 바라보는 것이 꺼려지는 때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태생 사바틴이 설계한 이국적인 하얀 탑은 그 시절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30년이 흐른 후, 러시아유학에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그 곳에 올라가 보게 되었다. 을미 사변이 있은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피신해 1년간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아관파천의 슬픈 역사적 현장이었다. 해방 후 소련 영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그 곳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탑과 지하 2층만 남아 있던 것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그 때가 바로 내가 예원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73년이었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사바틴(1860-1921)이 설계한 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은 비록 일부만이 남아있지만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공사관들에 비해 건물규모와 대지면적에 있어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냈음을 자료와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원학교 근처에는 영국문화원이 있었다. 귀한 발레필름 상영을 가끔 했는데, 구 소련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 출신으로 서방에 망명한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의 모습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세기의 커플이라 불리던 누레예프와 마고트 폰테인이 출연하는 <해적> 중 2인무였다.

고양이와도 같이 사뿐거리며 밟아나가는 누레예프 특유의 걸음걸이는 그 자체로 매혹이자 전율이었다. 또한 누레예프의 그랑 쥬테(큰 점프 동작)는 포물선을 그리며 순간 공중에 머무르곤 했다. 공중에서 안정성을 지닌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용수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19세기 초반 카를로 블라시스는 강조했다. 공중에 매달아놓는 조각도 아닌 살아있는 신체가, 그것도 춤추는 몸이 가능한 목표일까 늘 의문이 들었는데 누레예프를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스 해안을 배경으로 한 발레 <해적>의 2인무에서 보게 된, 절묘하게 양성적 매력을 다 지닌 타타르계 발레리노 누레예프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은 그렇게 어린 시절 한 편의 기억을 지배했다.

▲ 해적2인무(1962)-루돌프 누레예프와 마고트 폰테인

<해적>을 보며 묘했던 것은 남녀주인공인 메도라와 콘라드가 2인무를 추지 않고 메도라와 알리가 함께 춘다는 것이다. (메도라, 콘라드, 알리의 3인무로 추는 경우도 있음) 메도라는 그리스 여인, 콘라드는 터키에 대항하는 해적 수령, 알리는 콘라드의 충실한 하인역이다.

누례예프나 젤렌스키, 루지마토프 등 최고의 남성무용수들이 콘라드가 아닌 알리 역을 맡아 메도라와 춤을 추는데 정작 알리는 원작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원작에서의 메도라는 출정한 콘라드를 기다리다 그가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목숨을 끊으며 메도라가 죽은 걸 안 콘라드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결말이다.

발레작품의 제목이 <해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색달랐던 그 작품은 이후 전막발레를 보거나 직접 출연을 하면서도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립발레단을 사직하고 청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김혜식) <해적(1994 국내초연)> 공연에 객원 솔리스트로 출연을 했다. 노예시장에 팔려온 알제리 여인 역이었다.

항상 비슷한 고전발레의 주역에서 벗어나 새롭고 개성 넘치는 역할을 춤춘다는 설렘과 기쁨이 있었다.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발레단의 스베틀라나 최가 메도라 역을 맡았고 그의 남편 바딤 테제예프는 발레 마스터로 오게 되었다. 그것도 인연인지 몇 년 후 우리는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 극장에서 재회하였고 그들과 함께 같은 클라스에서 연습을 하곤 했다.  

발레<해적>은 36세에 드라마틱한 짧은 생애를 마친 영국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를 대본으로 한다. 영국을 떠나 그리스의 독립의용군을 돕기도 한 바이런은 위선적인 사회에 증오를 드러냈는데 <해적>을 위시한 많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적>의 무대가 되는 에게 해의 해적 섬. 그 곳의 해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법자 해적이 아닌 독립을 원하는 게릴라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맞다.

터키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그리스에서 독립을 원하는 해적들의 무용담을 담은 발레작품은 유쾌한 소동극을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밝고 아름다운 춤과 장면으로 그득하다. 너무 활기차서 한편으로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노예로 팔려가는 여인들을 통해서만 겨우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