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리뷰] 창작오페라 살린 고집불통 옹
[탁계석 리뷰] 창작오페라 살린 고집불통 옹
  • 탁계석 평론가
  • 승인 2017.05.29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희선 작곡가 오랜 내공의 결실

탄탄한 대본과 작곡의 일체가 성공 요인

‘재미와 감동’, 이건 두 마리 토끼가 아니다. 한 몸의 일체(一體)여야 한다. 우리의 오래된 고전(古典)을 오페라 판에 끌어들인 창작오페라 ‘고집불통 옹’은 가뭄 끝에 퍼붓는 한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이었다. 흙수저 작곡가 임희선의 오랜 내공(內工)의 결실이 아닐까 싶다. 이만하면 성공작이다.

원인을 분석해 보자. 놀랍게도 임희선 자신이 대본을 쓰고 작곡을 했다. 흔히 제기되는 대본과 작곡의 틈이 없이 작곡가의 음악적 언어와 대본이 일치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작품 군데군데에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대본화하는데 ‘옹’을 의성어로 활용해 소리 꼴을 만든다거나 하는 시도가 ‘코믹’ 요소에 효과적임을 보여줬다.

▲창작오페라 '고집불통 옹'

고전 스토리의 전체 흐름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낡은 텍스트라 할지모르지만 뒤집어 말하면 유치원 아이도 이해되는 소통의 묘약(妙藥)인 것이다. 뻔한 통속의 것을 각색하고 연출해서 예술로 승화하는 힘이 오늘의 작가의 임무요 역량이다.

한걸음 나아가 임희선의 오페라 요리는 탄탄한 국악밥상이다. 여기에 세련된 서양 오페라 기법들, 특히 아리아 등에서 양념을 넣어 감각의 균형을 맞추어갔다. 난해한 스토리에 이름도 성(性)씨도 모르는 서양 인물 오페라에 비하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자막까지 붙어주니 야근 작업을 하고 온 알바관객이라도 졸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 젊은 관객들인 것은 뮤지컬 관객이 오페라로 건너오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1막은 실컷 웃겨놓고, 2막은 정색을 하고 회개하는 옹과 윤효심 이쁜이의 러브스토리가 전개된다. 우선 선율이 파고들 만큼 매력이 있었다. 캐스팅된 이쁜이는 진짜 첫사랑에 눈떠 때 묻지 않은 처녀의 모습이다.

옹도, 가짜 옹도, 마님, 백학대사, 사또, 돌쇠도 열연했다. 모두가 첫 무대 캐스팅이어서 신선하고 열정이 뜨거웠다. 총감독 박종철에 (옹: 전병호 위정민, 윤효심: 홍지연, 홍은지 옹고집: 주영규, 안병길 허옹불통 민경환, 김병오, 마님: 신선영 사또, 학대사: 김세환 돌솨: 강응민).

국악, 양악 비빔밥 융해 기법이 창작 방향 제시

임 작곡가에게서 국악과 양악의 경계는 없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국악, 양악 각자의 장점들을 절묘하게 사용한 것이다. 강한 고집으로 살아온 유아독존 옹의 반성은 지각(知覺) 높은 관객에겐 오늘의 세태를 보는 듯했다. 정치권의 싸움질이나 양쪽으로 갈라서 자기주장만 옳다고 한 촛불, 태극기 민심의 세태처럼 우리가 이젠 자기만의 고집을 버리고 관용으로 끌어 안는 원숙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옹은 엄청난 재산으로 쥐락펴락하는 갑(甲)질의 원조(元祖)다. 그의 몰락은 시원통쾌했고, 그러나 진심으로 회개하며 모든 재산을 버려서라도 사랑만은 놓칠 수 없다는 대목에선 여느 서양오페라처럼 눈물샘을 자극한다.

‘해금’은 울지 않는 사람은 감성지수가 부족한 관객으로 ‘가야금’의 신명은 어께를 들썩이게 하는 우리 국악의 힘을 보여줬다. 우리 소재에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을 쓰는 것은 잔치상에 우리 음식을 내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창작오페라 '고집불통 옹'

성공의 또 하나의 요인은 감당할 수 없는 대극장이 아닌데 있었다. 숨소리까지 들리는 눈앞의 전개, 못하나 칠수 없는 무대, 오케스트라 박스도 없이 옆귀퉁이에서. 예산도 부족해 더는 쓸 수 없는 궁핍에 최이순 연출가는 영상을 통해 새 테크닉으로 변화를 끌어냈다. 궁하면 통하는 원리가 작용된 것이다.

서양오페라 한 막에 불과한 1시간 20분. 휴식 없는 공연이었지만 짧다고 항의하는 관객은 없었다. 좌석이 작지만 매진사례란 기록을 남긴 것은 주최측이나 보는 사람이나 지원한 입장에서도 신나는 일이다.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기금지원부터가 형식에 묶이지 말고 좋은 작품엔 확실하게 밀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우수 작품들을 끌어안는 오페라 전용 소극장이 필요하다.

창작 기금지원 정책 더 새롭게 다듬어야

오페라창작이 예전에 비하면 쉬워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겁없이 뛰어들면 작곡가에겐 오랜 고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금용 오페라라고 아무렇게나 올리면 나중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다는 점에서 창작은 적어도 수년간의 철저한 준비 끝에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평자는 몇 해 전 부터 임희선의 관현악 작품들을 눈여겨보면서 그가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었다. 2013년 상명대 공연에서의 결핍을 보완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완성도를 끌어 올린 것이다. 물론 그의 대본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립된 아리아, 중창의 완결성에 더 보탬이 필요할 것 같다.

고집불통 옹이 ‘지루하다’, ‘재미없다’, ‘표가 안 팔린다’등 온갖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창작을 살려낸 점에서 반갑고 희망적이다. 페스티벌에 공연된 또 다른 한 창작오페라는 청중들이 휴식 시간에 주차장으로 막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내년이면 한국오페라 70년이다.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해 서양오페라만 고집하는 서양오페라풍토에 고집불통 옹이 강하게 기세(氣勢)를 좀 꺾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집불통 옹은 그래서 이번엔  브라보! 대신 얼씨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