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MODAFE 2017을 빛나게 한 세 작품
[이근수의 무용평론] MODAFE 2017을 빛나게 한 세 작품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7.06.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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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Hello, My Life?!’, 한국현대무용협회(김혜정)가 주최하는 올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모다페, 5.17~31, 아르코대극장 및 소극장)의 캐치프레이즈다. “삶을 즐기자, 춤을 통해~” 아마도 이런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개막공연에 초청된 영국 발렛보이즈의 ‘Life’(5.18~19, 대극장)와 무용계 원로인 이숙재, 최청자 및 전미숙의 작품을 재 안무한 3편(5.21, 대극장), 그리고 소극장 작품 4편(5월26일)과 대극장 작품 3편(5월27일)을 보았다.

‘(신)찬기파랑가’는 신라 승려 충담사가 화랑 기파랑을 찬양하여 지은 향가 ‘찬기파랑가’를 모티브로 이숙재(밀물무용단)가 2005년에 안무한 작품이다. 3부로 구성된 80분의 대작을 이해준이 35분 작품으로 재 안무했다. 화랑의 인품을 자연에 빗대어 노래한 옛 시의 서정성을 무대에 옮겨놓은 듯 서사적이기보다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무대였다.

25명 무용수들이 출연하며 무대를 풍성하게 누비는 가운데 초연 시 출연했던 유일한 무용수로서 최원준이 뜨거운 솔로를 보여주었고 류석훈∙박관정이 추는 감각적인 듀엣이 인상에 남았다.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 작품의 또 한 가지 장점이다. 깨끗한 이미지와 충성스러운 인품으로 대표되는 화랑의 고귀한 가치를 대립과 갈등으로 상처 입은 현실사회에 투영하여 건강하고 순수한 시대를 이뤄가고자 하는 안무자의 바람이 읽혀졌다.

선명한 주제와 춤 외에도 메시지전달을 위하여 사용한 공연의 구성요소들이 좋았다. 화랑과 원화가 입었음직한 신라시대 의상에서 다채로운 색깔만을 뽑아내어 간편한 현대의상으로 탈바꿈시킨 장주영의 의상은 탁월했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효과적인 조명, 주제의 진지성을 살려주면서 작품 보는 재미를 더하게 해준 안지홍과 유정연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김영미(김영미 댄스프로젝트)가 안무한 ‘앙리의 빨간 물고기’(5.27, 아르코대극장)는 무용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그림에서 소재를 찾았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며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앙리 마티스(1869~1954)의 그림을 현대무용으로 해석했다.

그림 속 모델처럼 테이블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던 여인들이 그림 밖으로 살아나오면서 춤이 시작된다. 빨강이 셋, 청색이 둘, 노란 색 하나로 조화를 이룬 원피스 의상의 화려한 색감만치 그들이 만드는 무대도 화사하고 경쾌하다. 홍경화, 유가원, 한신애, 이다겸, 이주하, 조인정으로 구성된 6명 무용수가 즉흥처럼 펼치는 다양한 군무와 듀엣, 솔로가 콜라주처럼 연결되면서 마티스가 즐겨 그렸던 댄서와 누드, 정물들의 이미지를 살려낸다.

박준영이 작곡한 산뜻한 무용음악이 무대에 생기를 불어넣고 시가 있는 정경이라 할까, 춤의 경쾌함과 음악의 서정성이 만나는 무대는 청순하고 깨끗했다. 마티스의 그림 4점을 영상으로 띄워 흘러가게 한 배준용의 마지막 영상디자인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같은 날 보여준 이동하(툇마루무용단)의 ‘Guernica Again’ 역시 그림이 소재를 제공한다. 스페인 작은 마을 케르니카에서 벌어졌던 1937년의 참상을 우울한 회색과 흑백 톤으로 그려낸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명작인 ‘Guernica’에 ‘Again’이란 제목을 덧붙였다.

이동하는 이 작품을 통해 80년 전에 벌어졌던 파괴와 학살이 현대에도 무수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공중폭격을 피해 바닥에 바짝 엎드린 사람들 위에 굉음이 덮치고 포격을 피해 일어난 사람들은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한다. 절망적 몸짓에서 시작된 14명 남녀무용수들의 춤은 분노로 변하면서 치열성을 더해간다.

이 격렬한 춤의 에너지가 30분 공연시간 끝까지 쉴 틈 없이 계속된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반라가 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극한적 삶을 상징한다. 고통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춤추는 그들에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음악 소리가 소생의 의지를 되살리며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한다.

김영미와 이동하의 춤은 마티스와 피카소의 차이만치 대조적이다. 자연그대로의 감성을 마술 같은 색채로 표현한 마티스의 정적인 그림세계를 김영미가 여성적 춤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면 이동하는 동적이고 열정적인 피카소의 예술혼을 충동적인 남성 춤의 에너지로 충실하게 무대에 재현했다.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분명한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36회 ‘MODAFE’를 풍성하게 만든 빛나는 작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