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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진작가 한정식 “서툴러도 자기 것을 찾는 것이 예술가의 길”
“현실 대상을 통해 현실 아닌 세계 보여주는 것이 추상 사진, ‘고요’ 이은 작품 남기고파”
2017년 06월 07일 (수) 10:09:05 임동현 기자/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사진작가 한정식. 우리는 그를 ‘한국 추상사진의 선구자’로 부른다. 그리고 그의 국내 첫 회고전이 지난 4월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나무’, ‘발’, ‘풍경론’ 그리고 ‘고요’ 시리즈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사진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50년의 차이를 딛고 한정식이라는 ‘사진의 거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거쳐 국어교사로, 시인으로 활동하던 한정식은 어느 날 카메라를 장만한다. 그런데 카메라를 장만한 그 순간이 그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자신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사진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사진을 위해 일본 유학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최고의 사진작가로 남아있다.

이런 대가와의 만남은 긴장을 가져오지만 직접 만난 사진작가 한정식은 달변과 유머를 겸비한, 친절한 예술가였다. 창의성을 이야기하면서 ‘K팝스타6’와 ‘보이프렌드, 박진영, 유희열’을 이야기하는 센스, 사진의 보편화를 오히려 반기면서 ‘그래야 목표가 생긴다’라고 말하는 아량이 대가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만들었다. 또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한정식 사진작가의 ‘젊은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 사진작가 한정식 (사진=정영신 사진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소감을 듣고 싶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 작품을 전시한다고 하니 그저 고맙다. 우리 큰아들은 '매일매일 보는 작품인데'라고 핀잔을 주기는 하지만(웃음).

남들은 아니라고 자꾸 말하는데 사실 이제 사진 활동을 한 지 50년이 지났고 나이가 있지 않나. 사진을 더 찍고 싶은데 점점 내 건강이 어떨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건강에 주의하고 있는데 어쨌든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에 이렇게 사진 인생을 매듭지을 수 있게 해준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사진의 매력'을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모르겠다'의 의미는?

내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이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내면의 '끌림'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그걸 어떻게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겠나. 내가 사진을 만난 것도 정말 우연히 만났고 사진으로 방향을 튼 것도 어떻게 보면 우연하게 이뤄졌는데 과거에 시를 쓸 때는 시 쓰고 싶어 시를 쓰는 게 있었지만 사진은 글쎄... 따로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사진이라는 것이 현실의 대상을 통해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걸 추상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도갑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전등도 있고 책상도 있고 방도 있지만 대체 뭘 찍었는지 알 수가 없게 보인단 말이지(웃음).  절간의 방을 소개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더라.

그게 재미있다. 현실을 찍었는데도 현실로 보이지 않는 것. 이런 게 아닐까? 굳이 사진의 매력이 뭐냐는 답을 들어야한다면(웃음). 

   
▲ 전라남도 영광 월출산 도갑사, 1986(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을 찍으면서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면

영감을 느껴서 찍는 경우와 찾아서 찍는 경우 두 가지가 있는게 찾아서 찍는 사진은 잘 안찍히고 영감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찍은 사진은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상을 볼 때 처음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찍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르지 않나. 느껴지는 순간 바로 찍을 때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볏짚을 '민중'으로 표현한 모습의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그것도 순간적인 느낌으로 찍은 것이다. 볏짚이 논에 서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민중, 농민, 서민이 서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공간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농촌이고. 여기에 우리 민초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생각으로 찍은 것이다.

발 사진도 사실 우연히 찍은 거다. 집에서 책상에 발 올려놓고 책을 읽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마치 나무의 모습과 비슷하게 나오더라. 그 때 한창 나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발 사진도 찍었던 것이다. 발 그대로 나오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내가 쓰던 콜드크림 바르고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나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무를 찍을 때 에로티시즘을 생각했다. 나무는 인체, 특히 여체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여기에는 성(性)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여성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를 '모음', 남자를 '자음'에 비유하는데 자음은 혼자서 소리를 낼 수 없지만 모음은 모음 자체만으로도 소리를 낼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야 비로소 소리가 나오는데 바로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 모음, 즉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근본은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인 것이다. 

원래는 나무, 발, 누드 이렇게 3부작으로 시작을 하려했는데 어떤 이가 '네 사진에는 에로틱한 느낌이 전혀 없다'고 지적을 하더라. 그 이유가 뭔가 했더니 내가 닫혀 있었다.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다보니 에로티시즘을 하겠다고 하면서 말과 행동이 잘 안나왔던 것이다. 누드를 찍기는 했지만 건전하고 아름다울 뿐이지 성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은 거야(웃음).

   
▲ 발, 1980년대(2017)

'고요'라는 개념, 그리고 어떤 식으로 사진에서 '고요'를 추구하고 있는지?

사실 처음부터 '고요'를 찍은 것이 아니다. 사물을 찍은 사진들을 찍고 있는데 다 찍고보니 제목이 생각나지 않더라. 내 이름 중에 고요 정(靜)자가 있는데 그 이름을 붙이니까 어울리는 것 같더라(웃음). 사전에 나오는 '고요'와는 다른 거지.

고요하다는 것 보다 사물의 본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고 불교에서도 보면 '적정, 적멸'이라는 것이 있거든. 그걸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좀 더 가고픈 생각이 있다.

'고요' 1,2,3을 냈는데 3에서 '고요'를 마감한다고 썼다. 4,5를 만들면 지루해할 것 같았다(웃음). 지금은 '고요'의 연장선상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중 '달'을 생각하고 있다. 달은 불교의 소재이기도 하고 점점 사그라든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 이야기한 '적정, 적멸'의 세계를 계속 추구하고 '고요'의 연장선상에서 대표작 한 편 쯤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선생님이 쓴 <사진예술개론>은 사진 전공자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교과서는 무슨... 안 읽은 사람도 많은데(웃음). '창의성'을 강조한다. 예술은 새로운 걸 보여줘야한다. 서툴러도 자기 것을 찾아야하는 이가 예술가다.

내가 얼마 전까지 즐겨봤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SBS에서 하는 'K팝스타6'. 보이프렌드 그 친구들 대단하던데(웃음). 거기서 박진영이 한 말이 정말 인상깊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부르는 사람을 뽑는다".

그게 예술의 기본이다. 흉내낼 필요가 없다. 그 프로에 나오는 친구들이 엉터리가 아니다. 물론 이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의 원곡은 잘 모르지만 다르게 부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는 신입생들에게 첫 시간에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서 본 듯하면 찍지 마라". 흉내내는 버릇에 길들여지면 불안해서 사진을 못 찍는다. 누구와 비슷하게 찍으면 안심을 하지만 만약 다르면 '내가 틀린건가?'라고 불안해한다. 그러면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다. 잘못해도, 서툴러도 자기 걸 만들어야지. 개성과 창의성, 그게 정말 중요하다.

   
▲ 나무, 1980년대(2017)

창의성 외에도 사진을 찍는 이들이 반드시 가져야할 것이 있다면?

일단 끼가 있어야한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못배기는 충동이 항상 마음 속에 끓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꾸준히 활동해야한다. 사진기를 다루는 기술, 매카니즘도 물론 갖춰야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있어야 더 나아갈 수 있다.

한정식만의 사진 철학이 있다면?

철학이라는 건 너무 거창한 말이고(웃음). 뭐 대단한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따로 철학이라는 걸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각자 자기 사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면 되지 않을까? 남의 작업이나 업적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저 찍으면 된다. 나머지는 후학들에게 맡기면 되지.

최근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연예인 등 비전문인들이 사진전을 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정말 좋은 현상이다. 작가라고 이런 현상을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글을 꼭 작가만 쓰고 발표하나. 누구나 다 쓰고 발표할 수 있잖나? 지하철에 보면 시민들이 쓴 시들이 있는데 사실 엉터리도 있기는 하지만 그걸 보고 욕하는 이가 누가 있는가? 발표한다고 화를 내지는 않잖나. 그렇게 즐기게 놔두면 되는 거다.

마찬가지로 요즘 보통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비전문인이 사진 발표하는 것도 그냥 그렇게 즐기도록 놔두면 된다. 프로는 프로의 길을 따로 가면 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즐기고 범위가 넓어져야 목표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난 비전문인들을 칭찬하고 싶다.

사진을 더 좋게 보이려고 '뽀샵'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사진은 연출이라는 것 아나? 예를 들어 꽃을 찍었는데 그 사진에 화창한 날씨, 옆에 있는 여인 등이 보이면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연출을 해야한다는 것은 가짜를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현실을 더 현실로 느끼게하는 것이다. 현실로 느끼게하는 연출을 위해 쓰는 것이라면 그건 괜찮다고 보고 있다.

가짜로 꾸미는 것은 나쁘지만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은 괜찮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뽀샵'으로 가짜를 만드는 게 문제긴 하지(웃음).

일기를 계속 쓰고 계시는데, 공개할 계획이 있는지

일기는 내가 죽은 뒤에 공개되길 바란다. 다만 내 사생활보다는 사진에 관계된 내용만 공개되면 좋겠다. 앙드레 지드나 에드워드 웨스턴처럼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이나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한국 사진 역사의 한 측면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일기를 쓰는 다른 분들의 일기도 공개되면 한국 사진사의 객관적이고 다양한 생각이나 느낌이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지난 4월 열린 회고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한정식 작가 (사진=정영신 사진가)

다큐 사진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 시대만큼 격동의 시대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요즘 좌우 대립이 심각한데 여러 사회 현상을 다각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를 보면 너무 자기 생각 쪽으로만 치우치고, 너무 비판만 하려고 하는데 사진 역시 그러한 것만 보는 것 같다. 한쪽으로 기울면 결국은 침몰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는 8월 6일까지 전시가 계속된다. 앞으로 전시를 보게 될 분들에게 한마디하자면

전시회에 많이 와서 봐 주시길 바란다. 이거면 됐지 않나?(웃음) 내가 맘에 들지 않는 작품을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도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은 어차피 내 손을 떠나면 관객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저 많이 와서 봐주기를 바라는 게 좋다. 

후세 사람들이 '사진작가 한정식'을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는지

'사진 좋았다', '열심히 했다' 그 말만 들으면 됐지. 그건 내가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좋은 사진가'로만 기억되면 그만이다. '훌륭한' 그런 말은 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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