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장애인 학생들의 행복한 몸짓, 이제 그들은 '예술인'이다
[현장에서]장애인 학생들의 행복한 몸짓, 이제 그들은 '예술인'이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6.21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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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원 '자연과 함께하는 청소년 몸짓 합창' 연습 중인 학생들을 보면서

"자, 한번 해볼까요, 와, 정말 잘한다"

폭염주의보 문자가 올해 처음 모든 국민들의 휴대폰에 찍혔던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도봉산에 위치한 도봉숲속마을에서는 학생들의 몸짓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그동안 문화 예술에서 소외되고 있었던 특수학급 학생과 장애어린이, 청소년들이다.

▲ '자연과 함께하는 청소년 몸짓 합창'

이들은 다음날 무대에 선다. 바로 (사)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 연 '자연과 함께하는 청소년 몸짓 합창'이라는 이름의 1박 2일 캠프의 하이라이트다.

지난 3개월간 '방과후아카데미'를 통해 각 학교에서 사전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이 이날 배운 몸짓은 중국의 춤이었다. 중국 대련 옹달샘 무용교사로 이번에 '캠프힐링몸짓강사'로 참여한 태정숙씨가 몸짓 하나하나를 보여준다.

학생들이 따라한다. 아직은 이 춤이 낯선 모양이다. 그래도 따라해본다.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학생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지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격려, 격려, 격려 뿐이었다.

"잘한다", "이번에는 앞으로 가는거야",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거야" 일일이 손을 잡아주고 안아도 주면서 힘을 북돋아주자 학생들의 기분이 풀리는 모습이다.

▲ 몸짓을 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휠체어를 탄 학생은 열심히 손 동작을 따라한다. 손 동작만으로도 멋진 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실내이자 에어콘을 틀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학생들의 얼굴은 점차 달아오르고 있었다.

두 학생은 아예 옆쪽으로 빠졌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선생님이 그 학생들에게 계속 할 것을 종용하고 데려와야했을 상황. 하지만 이들의 일탈(?)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 역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총지휘하는 윤덕경 예술감독의 발길도 빨라졌다. 연습 사이사이 줄 배치를 바꾸고 무대 활용을 어떻게 할 지를 제안한다. 다음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가장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이다. 그렇지만 그가 지시하는 것은 어떤 동작이나 지시가 아니라 학생들이 편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매년 공연을 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캠프를 하게 됐어요. 학생들이 춤과 타악을 배우고 다음날 공연에서 자기가 배운 것을 보여주는 거지요. 내일 학부형님들이 여기 오셔서 공연을 봐요. 보세요. 지금 아이들 행복해하는 모습을.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려고 이번에는 중국 춤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전하고픈 마음이었다

실제로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하 장문원)은 지난 2011년부터 매년 공연 무대를 가졌다. 우수작품으로 선정됐던 <하얀 선인장>, 광복 70주년 기념 제29회 한국무용제전 아리랑 아홉고개로 선보인 '싸이클-아리랑과 베사메무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융복합무대 '아리랑팩토리' 등이 장문원이 거쳐간 발자국이었다.

캠프에서, 각 학교에서 특수학급 아이들을 지도하는 강사들은 대부분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춤을 가르치고 있는 태정숙씨는 이번 캠프를 위해 중국에서 왔고 중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한다.

지난 12일 인사동에서 열린 '한국무용의 날' 기념공연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영등포여자고등학교 특수학급 학생들도 바로 장문원을 통해 '아리랑팩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던 학생들이다.

이철용 장문원 이사장은 장애인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다. 그는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고 조금씩 조금씩 사회복지만으로는 복지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사회복지는 결국은 돈이 드는 거잖아요. 예산도 들어야하고 또 '빵을 키워야한다'면서 경제가 잘 돌아가야 복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몰리고... 그런데 장애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문화 쪽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문화복지는 정말 돈이 안 들어요.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죠. 그렇게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하는 것이 장애인 문화복지입니다. 문화는 '더불어'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그 생각으로 그는 장애인 문화복지에 힘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장문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문원은 장애인문화예술을 다루는 최초의 법인 단체가 되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얻고 있다.

"이번 캠프에는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온 학생들이 있어요. 학교는 떠났지만 이런 자리에 오고 싶은 거에요. 춤을 배우니까, 무엇인가를 배운다니까 그게 좋은 거예요.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이 학생들이 다른 장애인 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쳐줄지도 몰라요. 이 학생들이 강사가 되는거죠. 그게 실제로 이뤄진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윤덕경 예술감독)

어느덧 연습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쯤되면 아무래도 지친 학생들이 나오는 게 당연. 배도 고프고 몸도 지치고 피곤을 호소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런데 비보(?)가 전해졌다. 식사 준비가 조금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기운을 북돋아줘야하는 순간이다.

"자, 딱 한 번만 하고 우리 이제 맛있게 밥먹으러 가요. 이번 연습하면 아마 밥이 더 맛있을 거예요. 근데 잘못하면... 또할지도 몰라요" 그러자 한쪽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뭐야, 협박 아냐?" '까르르' 소리가 연습장을 채우고 있었다. 

학생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움직였다. 협박(?)이 통한 것일까?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를 멋지게 장식했다. 그때 기자는 봤다. 학생들의 행복한 표정을.

▲ 학생들은 이제 '예술인'이 되고 있다

당초 이 행사를 취재하려한 이유는 '장애인문화예술진흥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그러나 토론회 날짜를 착각한 기자는 예정에 없던 연습 취재를 하게 됐다.

허나 바로 이 순간. 진실로 진실로 전해야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원론적인 이야기, 여러가지 제안들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전해야하는 것은 바로 연습에 임하는, 몸짓을 따라하는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과 행복한 얼굴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들도 당당한 '예술인'이라는 것을.

그래, 그 이상 무엇이 중요한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임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해야하지 않은가. 폭염 속에서도 캠프 일정을 소화해내는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경험을 캠프를 통해 남겼다.

'더불어' 한다는 것, 시혜가 아니라 정말 문화를 통해 '더불어' 사는 것을 배워가는 학생들. 이 학생들이 계속 예술활동을 해서 몇 년 뒤 캠프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멋진 강사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문화의 가장 올바른 발전의 길이라고 믿고 싶다.

끝으로 소개하고픈 글이 있다. '춤추는 알갱이'. 이철용 이사장이 원작을 쓰고 윤덕경무용단이 선보인 무용이다. "'춤추는 알갱이'가 무슨 뜻일까요? '껍데기는 가라'는 거죠". 장애인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옮겨본다.


춤추는 알갱이

춤추는 알갱이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춤추는 알갱이는 나만 행복하기를 거부하고,
나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하기를

춤추는 알갱이는 
온유한 평화의 춤꾼이다.
올곧은 정의의 춤꾼이다.
겸손한 사랑의 춤꾼이다.

춤추는 알갱이의 
더불어 몸짓과 사랑의 몸짓은 처처마다 기적을 일궈낸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을 찾아낸다.

몸짓으로 외치는 춤추는 알갱이
"너희들이 외치지 않으면 알갱이들이 외칠 것이다."

가자, 가자 저 희망세상으로...
슬픔을 넘어, 차별을 넘어,
장애를 넘어, 미래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