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그대를 사랑합니다” 배우 윤소정의 기억
[기자의 눈] “그대를 사랑합니다” 배우 윤소정의 기억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6.22 2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년 전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동안 언급되지 않던 원로 예술인이나 연예인이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면 놀란 가슴으로 검색을 하게 된다고. 행여나 별세 소식이 아닌가해서 저절로 클릭을 하게 된다는 '웃픈' 이야기. 

얼마 전에도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한 연극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때는 놀라지 않았다. '무슨 방송에 나오고 계시나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클릭을 했다가 마치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은 상황을 본 것처럼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부고였다. 배우 윤소정의 이야기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윤소정 선생의 별세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는 점도 있지만 불과 엊그제 SBS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서 분명히 그를 봤었고, 남편인 배우 오현경씨의 건강이 회복되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직은 건강하신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 상황에서 전해진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던 배우 윤소정 (사진제공=NEW)

어떤 이는 그를 <잘자요, 엄마>, <신의 아그네스>, <따라지의 향연>, <어머니> 등 연극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팔색조의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이는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꿈에라도 볼까 무섭다'고 생각하는 영화 <올가미>의 시어머니로 기억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노년에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송이뿐'이라는 예쁜 이름까지 얻게 되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고운 할머니로 기억할 것이고, 어떤 이는 <폭풍의 여자>, <다 잘될 거야>, 그리고 유작이 된 <엽기적인 그녀>에 출연한 탤런트로 기억할 것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또는 한 가지 모습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인물의 모습을 소화했다는 뜻이고 그 인물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장난같기도 하고 모순같기도 하지만 지금 윤소정이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데 모으면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다. 다양한 인물, 그 인물을 하나하나 강렬하게 소화해냈던 배우였기에 지금의 윤소정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필자는 지금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언론시사회에서 보여준 윤소정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윤소정의 목소리에는 묘한 감동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멋진 작품을 만난 것 같다는 느낌. 자신이 출연한 영화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라는 그의 진심이 목소리에 숨어져 있었다.

소녀같았던, 영화 속 송이뿐같았던 그가 항상 대답 끝마다 한 말이 있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것은 홍보 멘트가 아니었다.

따뜻한 어머니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여인, 아들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와 순수한 할머니. 대사 하나하나에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마력의 소유자. 하지만 가정에서는 요리를 좋아하고 손재주를 보여주는 자상한 아내이자 어머니. 그렇게 여러 역할을 수행했던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게 됐다.

그가 연극에서 했던 역할은 다른 누군가가 다시 하게 될 것이고 그가 연구한 새로운 캐릭터로 선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 모습이 어색할 것 같다. '그래도 이 역할은 윤소정이 최고였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어쩌면 계속 그의 흔적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그가 보여준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잊지 못하기에. 그의 죽음에 많은 연극인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대한민국 연극인들이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그를 전송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엽기적인 그녀>의 윤소정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연극인들에게, 관객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혹은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연극, 영화, 드라마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배우에 대한 기억을 머릿 속에 다시 담아두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