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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3 볼레로> 중의 <볼레로>
2017년 06월 23일 (금) 11:01:13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정통파투수란 빠른 직구를 정확하게 던지는 투수를 말한다. 한국 야구사에선 최동원과 선동렬이 전설적인 정통파투수로 손꼽힌다. ‘3 볼레로’(6.2~4, CJ토월극장)는 안성수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후 처음 갖는 기획공연이다.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이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음악을 사용한 작품을 경쟁적으로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전 좌석이 매진될 만큼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세 작품 중 정통파는 김용걸의 ‘볼레로’가 유일했다.

살짝 들린 장막 뒤에서 무용수들이 발레의 기본동작을 보여준다. 포지션 1에서 4까지 발 동작만이다. 무대 앞 에이프런에서 수많은 손 들이 올라오며 손바닥과 손가락만으로 추는 프롤로그가 현란하다. 막이 조금 더 올라간 무대 위에선 누워 있는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하체만의 움직임...관객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한 화려함이다.

막이 전부 오르면 무대 중앙에 선 김용걸을 중심으로 좌우로 6줄을 이루며 36명 무용수들이 도열해 있다. 검은 슈트에 검은 안경을 낀 김용걸은 매트릭스영화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 무대 뒤에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악기만을 반짝인 채 숨겨져 있다. 볼레로의 첫 소절 연주와 함께 37명 군무가 시작된다. 검정색 안경과 슈트로 통일된 군무진이 열을 짓거나 ㄷ자 모양, 혹은 원형을 이루며 일사불란한 춤을 보여준다.

상의를 벗은 어깨와 손이 조명을 받으며 하얀 색으로 빛난다. 군무진이 무대 한 가운데로 수렴하여 원통을 이루고 그 안에서 활짝 양 팔을 들어올린다. 시루 속에 빽빽이 들어찬 콩나물을 연상케 하는 인상적인 피날레다. 정확히 15분의 볼레로타임이 흘렀다. 관객들의 환호가 끊일 줄 모르게 계속된다.

볼레로가 본래 스페인의 전통춤을 의미했던 것처럼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음악 역시 춤과 어울려야만 살아난다. 팸플릿에 나타난 정주영(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자)의 시에서처럼 볼레로음악은 “빗방울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시냇물이 흘러 강이 되고/강이 모여 바다로 가는/그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기나긴 기다림으로 태어나/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행진의/마지막을 맞이해야만 하는/세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 스토리의 종말은/우리 인간의 삶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를 보면서 언젠가 자신이 가진 춤의 색깔을 들어낼 수 있는 볼레로를 창작해보고 싶었다는 김용걸이다. 대 편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볼레로 원곡음악에 맞춰 역동적이고 감동적인 무대를 창조해낼 수 있는 김용걸의 마술 같은 매력을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철저하게 처절하게’란 제목이 붙은 김보람의 볼레로는 음악의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볼레로 음악 그대로를 안무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고 리듬과 멜로디, 곡의 구조를 분해하여 몸의 움직임에 맞추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대 편성 대신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트럼펫 등 7개 악기로 소편성하고 피아노를 추가했다. 김보람을 포함한 9명 남성무용수들이 백색 정장으로 통일하고 탭댄스와 로봇 풍의 춤을 춘다. 산뜻한 백색 의상과 감각적인 조명에 불구하고 안무에서는 창의성을 느낄 수 없었고 25분의 무대는 도식적이고 지루했다.

‘볼레로 만들기’(김설진)의 무대는 볼레로 최초의 공연인 브로나슬라바 니진스키의 1928년 무대세팅을 떠올려 주었다. 힙합동작이 위주가 되어 즉흥 식으로 짜인 안무는 진지성 대신 장난 끼가 엿보였고 음악적으로는 볼레로가 무시된 채 안무가의 실험적 콘셉트만 강조된 것이 아쉬웠다.

세 개의 볼레로를 보면서 ‘귀신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던 안성수의 ‘볼레로 2006’이 떠올랐다. 볼레로 원곡에 맞춰 9명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렵하게 돌아갈 때 기계적이고 강렬한 리듬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사위와 조화되면서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볼레로음악이 안무가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다양한 춤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3 볼레로’에 대한 관객의 기대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의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안성수의 볼레로가 김설진에 대체되어 ‘3 볼레로’를 구성한다면 기획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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