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권번 꽃다이> 주제가 ‘화류춘몽’을 처음 부른 이화자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권번 꽃다이> 주제가 ‘화류춘몽’을 처음 부른 이화자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6.23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소리극 <권번 꽃다이>(6. 13.~16. 서울남산국악당)를 보았습니다. 아주 잘 만든 작품입니다. 기생(妓生)에 관한 얘기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평가 절하되었던 기생을 깊게 바라보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전라도 무진권번을 배경으로 해서, 기생들의 순탄치 않았던 삶을 얘기합니다. 작품제목에 등장하는 ‘꽃다이’는 그 시절의 말이자, 또 전라도의 말이죠. ‘꽃답게’ ‘꽃처럼’을 뜻하며, 기생의 품행과 예도를 대변해줍니다.

이 작품은 전라도에 뿌리를 둔 작가, 연출, 배우, 소리꾼들이 참여해서 만들었습니다. ‘흥타령’을 비롯해서 남도의 정서를 아주 잘 그려냅니다. 극작(지정남)과 연출(박강의)의 궁합이 참 좋더군요.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근현대사의 변화와 함께, 전통예술 혹은 전통예인이 각 시대마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그 시절 권번의 소리선생으로 윤진철명창이 특별출연해서 소리를 가르치는 장면이 참 좋습니다. 소리꾼에게는 가장 소중한 ‘부채’를 매개로 한 스토리도 좋습니다.

당시 소리와 춤을 배우는 기생들은, 어려운 판소리보다 유성기음반에서 나오는 신민요(가요)에 더 관심을 갖게 되죠. 무진권번 기생들이 어려운 판소리에 지쳤을 때 부르는 노래가 뭔지 아시나요? 당신이 처음 부른 <가거라 초립동(草笠童)>(1941년, 조명암 작사, 김영파 작곡)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저는 계속 한 사람이 더욱 그리웠습니다. 당신입니다. 이화자(李花子), 나는 당신을 알지만, 또 당신을 모릅니다. 유성기음반 속의 당신의 노래만을 그저 알뿐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확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당신이 안타깝게도 비참히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얘길 합니다. 거기엔 아편이 등장하기도 하죠. 누군 그걸 아주 본 듯 기정사실로 얘기합니다.

소리극 <권번 꽃다이>를 본 모든 사람들은 ‘화류춘몽(花柳春夢)’(1940년,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을 궁금해 하더군요. 당신은, 일제의 군국가요 ‘결사대의 아내’(1943년)도 불렀습니다. 누구는 이로 인해 당신을 ‘친일’이라는 명목으로 단죄하려 들겠지만요.

우리가 당신을 제대로 알려면, ‘신민요’의 흐름 속에서 이화자를 봐야합니다. 당신은 ‘민요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을만 합니다. 당신의 신민요(가요)는 곡마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당신의 노래에 대해, 당대엔 이렇게 평가를 했죠. "이화자(李花子)의 신민요는 선우일선(鮮于一扇)에 비하여 선이 굵다. 그 대신 깊은 맛이 있다. 이 점에 이화자가 새로 개척할 길이 있지나 않을까 한다"

지금 내 곁에 당신이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강원도아리랑(1941년, 오케레코드)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것도 당신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강원도아리랑’은 바로 당신의 노랩니다.
당신의 대표적인 노래를 잘 활용한 소리극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제작자들도 ‘이화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해봤습니다.

진정 당신의 노래만을 연결해서도 변화무쌍한 주크박스뮤지컬이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의 한 많은 인생을 보상해줄 작품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작품에선 단지 당신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예인들의 얘기가 담기길 바랍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국악이건 가요이건, 이런 구분이 참 무의미해지죠. 당신의 노래를 통해서, 우리 근현대음악사가 추측이나 왜곡 없이, 온전하고 복원되길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