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감독들은 한국영화의 허리, “열정과 꿈은 여전해”
50대 감독들은 한국영화의 허리, “열정과 꿈은 여전해”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9.01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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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으로 또 다른 도약을 꿈꾸는 '편지'의 이정국 감독


1997년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물을 속 뺀 故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최루성 멜로영화 ‘편지’로 잘 알려진 이정국 감독(53). 최근 몇 년간 작품활동이 없던 그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였다. 바로 제3회 충무로국제영화제 속의 영화제, 대학생단편영화제에서 1984년 그의 감독데뷔작인 단편영화 ‘백일몽’을 상영하는 대학생 단편회고전에 참여하기 위한 외출이었다. 이번 대학생영화제의 심사위원이자, 현재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활동 중인 이 감독은 ‘편지’의 흥행이후, 계속 가지고 있던 다음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부담감을 털어내고 50대의 원로 감독이라는 대우도 벗어던지고 이정국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이름으로 색다른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올 그를 만나 영화 및 영화제, 그리고 한국영화에 대한 짦은 대화를 나눠봤다.


-1984년 단편영화 ‘백일몽’을 통해 주목받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25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는 기분이 어떤가.

옛날 감독생활 시작할 때 생각도 나고...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다.

3~4년에 한번 정도 영화제 같은 행사에서 초대 받아 몇 번을 다시 봤다. 볼 때마다 테크닉 등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

 그래도 해외에서도 상영됐고, 당시 사회에서 느낀 문제를 잘 반영해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직업 구하려고 이력서 써 다니지만 계속 실패하는 백수 이야기, 간접적으로 시대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악순환 되는 사회의 암담한 모습은 84년에 내가 느낀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그대로 디지털로 다시 찍어보고 싶다.

-지난해 제8회 광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번 충무로국제영화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영화제 특성을 명확하게 규정짓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영화를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음악과 영화를 접목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참신한 상상력에 기반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비주류와 디지털 영화 중심의 전주국제영화제...

이미 다른 영화제들이 많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를 만들기 전에 미리 확실하게 정하고 시작해야 했다. 일단 한국영화의 역사가 깃든 충무로에서 한다는 점을 잘 살려야 한다.

광주나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상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색없이 이것저것 하다보면 충무로국제영화제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자리잡지 못해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현 영화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넘어간데다 감독들도 30~40대가 대부분이다. 내가 53세인데 50대 감독들이 거의 드물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직 신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많고 한물간 원로 감독이라며 소외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한국 영화의 허리가 없다.

충무로 선배들을 만나보면 다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과 꿈은 여전하다.

디지털 기술들에 대해 요령만 알면 적은 돈으로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 50대 감독들이 그동안 갖춘 촬영기법 등의 노하우를 디지털 기술 등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작품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열정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나 정책적인 것이 필요하다.

50대 감독들도 충무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좀 더 개방된 생각을 가지고 영화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도 계시고, 이번 충무로국제영화제 프로그램의 하나인 ‘대학생영화제’ 심사위원도 맡았다. 요즘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평가한다면.

우리 때 비해서 굉장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수능을 목표로 학원, 과외 등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듣는 것에만 익숙해져 수업자세부터가 다르다. 팔짱끼고 듣는다. 관전하는 자세의 학생들을 보면 씁쓸하다. 적극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 단편은 3~4명 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스텝이 너무 많아졌다. 게다가 저예산의 개념을 못잡고 지나치게 자본에 휩쓸리고 있다. 자본을 많이 들여야 작품이 잘 나올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단편에도 지나치게 돈을 들인다. 나도 GV(감독과의 대화) 통해서 알게 됐는데, 이번 대학생 영화 상영작 중에는 DSLR 스틸 카메라로 찍은 작품도 있다. 무모한 투자는 지향해야 한다.

-편지, 산책, 블루 이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없는지.

이정국이 아닌 새로운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편지’라는 영화 하나로 생긴 관객들의 기대와 그에 따르는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출발해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다.

할리우드 방식으로 영상과 음악 등의 효과 넣은 동영상으로 PT를 했는데, 투자자들이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라며 계약하자고 했다. 지난해  PT에서 투자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이후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완전히 새롭게 선보였는데 먹혔다. 보다 확실한 작가주의로 찍을 계획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