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이탈리아판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농(Manon)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이탈리아판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농(Manon)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
  • 승인 2017.06.23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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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프레보가 쓴 18세기 소설을 기초로 이탈리아 여인의 향기를 머금은 오페라 <마농>은 쥴 마스네 작곡으로 1881년 발표되었다. 이를 들은 푸치니는 마스네 작곡과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마농역-모니크 루디에르

특히 여주인공 마농 레스코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어 마농의 가사 마디마다 오케스트라의 리듬, 속도, 악상의 지속적인 변화를 준 걸작 <마농 레스코(1893)>를 만들어내 베르디의 뒤를 이을 작곡가라는 칭송을 받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흔히 이탈리아판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불리는 <마농 레스코>는 연인의 불같은 사랑, 고통, 죽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7년 6월 9일-11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진 글로리아 오페라단(단장 양수화, 연출 알도 타라벨라 Aldo Tarabella)의 푸치니 작곡, 전 4막 <마농 레스코>의 안무를 맡게 되었다.

반주를 한 뉴서울필하모닉의 지휘를 맡았던 이탈리아의 마르코 발데리(marco Balderi)에 의하면 <마농 레스코>는 오케스트라와 가수에게 엄청난 난이도의 기량과 주의를 요구하기에 자주 상연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7년 만에 오페라공연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성신윈드발레단원 8명과 저녁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연습하며 안무를 한 후에 오케스트라와 맞추고 노래까지 더해지니 낭만적 스타일의 멜로디와 바그너 풍 웅장한 음악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었다.

노래 가사 한 마디 한마디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 오페라가 이토록 아름답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는 작업하는 내내 사랑에 빠진 사람마냥 마음이 설레었다.

당시 오페라 연습장면을 보면서 1978년 세종문화회관의 로열발레단 내한 공연 <마농>이 떠올랐다. 제니퍼 페니와 안소니 도웰이 주인공이었다. 요정처럼 가볍고 매력적인 페니의 마농 역을 보며 탄식을 내뱉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2011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내한공연 당시 데 그뤼 역을 춤추었던 안소니 도웰이 심사위원장이었고 그 공연을 본 관객이었던 나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94년에는 일본 세계발레 갈라공연에서 실비 귀엠과 조나단 쿠페의 <마농 2인무>를 보면서는 할 말을 잃었다. 발레 작품을 보며 이렇듯 격한 감정을 가지는 일은 결코 흔치 않다.

▲마농역-모니크 루디에르,데 그뤼역- 마누엘 르그리의 2인무

<마농>을 안무한 케네스 맥밀란은 문학작품을 발레화 하는데 재능이 탁월했다. <마농>을 비롯해 <로미오와 쥴리엣>, <메이얼링>, <시골에서의 한달> 등의 드라마발레는 탄탄한 대본과 극적으로 안무가 구성되어 하나같이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준다. 문학작품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오페라와 발레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인간을 그려내며 관객의 사랑을 받게 된다.

발레 <마농>은 쥴 마스네의 음악을 편곡하여 1974년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초연을 했다. 첫 장면에서 마농은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으로 보내진다. 만일 마농이 데 그뤼와 사랑에 빠져 도피하지 않고 수도원에서 일생을 마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운명의 여신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발레 <마농>은 처절하게 보여준다.

미국 루이지애나 사막에서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마농과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선 데 그뤼의 인상적인 2인무는 발레의 표현력이 과연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명장면이다. 탁월한 기량은 기본이고 마농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표현하는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작품 <마농>은 빛을 잃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는 정통 발레작품으로 승부하기보다 몇몇 대중성을 획득한 스타의 유명세에 기댄 얄팍한 기획공연 등이 난무했고, 1, 2분 안에 승패를 가르는 콩쿠르가 예술이라는 허울을 쓰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병역특혜가 있는 국내외 국제콩쿠르에 대한 남자무용수들의 과도한 집착과 집중현상은 도를 넘은지 오래다.

스마트폰을 보며 익힌 솔로작품이 전막 발레의 어느 맥락에 위치하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로 돌고 뛰는 기이한 현상을 보며, 사막에서 길을 잃고 떠도는 마농과 데 그뤼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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