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생각은 자유' 김재엽 연출가 “연극은 화두, 극장은 토론장, 생각은 자유”
<인터뷰> 연극 '생각은 자유' 김재엽 연출가 “연극은 화두, 극장은 토론장, 생각은 자유”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6.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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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관객에게 하고픈 이야기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 해, 배우와 관객이 함께 연극 이야기하는 모습 꿈꾼다”

올해 초, 광화문 블랙텐트. 그 곳에서 <검열언어의 정치학:두 개의 국민>(이하 <검열언어>)이라는 제목의 연극이 상연되고 있었다. ‘검열 문제’가 대두된 2015년 국정감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웃음과 함께 한숨까지 나오게 한 순간, 배우들은 갑자기 연극이 아닌 ‘검열’에 대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니까 오히려 극이 맥이 빠지잖아’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기자는 블랙텐트를 나서야했다.

그리고 지난 5월, 바로 그 작품의 연출가가 신작 <생각은 자유>를 무대에 선보였다. 역시 초중반은 여러 유머러스한 상황이 재미를 줬다. 하지만 다시 <검열언어>의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또’라는 생각이 들려던 순간, 기자는 이 연극에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공공극장’과 ‘자유연극’이 추구했던 이상, 그리고 ‘생각은 자유’를 이야기하는 배우들의 행복감이 느껴지자 전작과 이번 작품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기자는 ‘생각의 자유’를 이해하게됐다.

그 두 작품을 만들었던 김재엽 연출가를 만났다. 그리고 두 작품을 본 소감을 전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 스타일이 가식없이 정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그의 말은 그간 기자가 가진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독일에서 그가 본, ‘연극이 화두가 되고, 극장이 토론장이 되는 모습’을 한국에서 보고싶어하던 사람, 연출자와 배우, 관객이 한데 어우러지며 연극을 이야기하는 그 모습을 꿈꾸는 사람. 그렇게 연극의 ‘공공성’을 생각하고 있는 김재엽 연출가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밝았다. ‘생각은 자유’가 이제 현실이 되어가는 6월 어느날 오후였다. 

▲ 연극 <생각은 자유>를 연출한 김재엽 연출가

<생각은 자유>가 인기 속에 공연됐다. 관객 반응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호불호가 나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다보니(웃음). 이 연극의 주제에 공감하면서 극을 보시는 분들은 정말 이 연극을 좋아하는데 드라마틱하고 뭔가 결말이 정해진 것을 좋아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코드가 안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호불호의 반응을 직접 느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다. 왜 혹평이 나오는데도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 직접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의 연극을 만드는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일부밖에 없는데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불필요한 대사나 여러가지를 만들어야한다. 드라마라는 것이 인위적인 것을 인위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런 '드라마적 글쓰기' 보다는 정말 관객에게 하고픈, 보다 필요한 이야기를 더 정확하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의 관객은 편안한 상태에서 남의 인생을 엿보는 존재이지 않나.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관객은 연극이 제시하는 문제를 같이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교감의 대상이다. 정서적 감동보다는 이성적인 감성을 추구한다. 물론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모습을 '계몽적'이라고 생각하지만(웃음), 아마 다음은 좀 더 정서적인 쪽으로 전개될 것 같다.

연극 <여기, 사람이 있다> 공연 후 독일로 떠났다. 극중에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독일로 가게 된 배경이 있다면?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앞으로 누구나 쫓겨날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미래가 절망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년 후를 배경으로 초현실적으로 접근하려한 것이 이 작품이다. 헌데 극을 진행하면서 현실보다는 드라마로 가는 느낌이 들었고 연극을 만드는 의미가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서울연극제 희곡상도 받고 했는데 그 공연에 용산참사를 겪은 분들이 관람을 하러 오셨다. 공연이 끝나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동시대의 문제를 내 머릿속에서 임의로 다루고 있고 그분들의 삶을 멋대로 상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용산참사가 난 지 불과 1년 정도밖에 안되던 때였는데 객관적인 세계에서 사건 사고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정확한가라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음에 만든 <알리바이 연대기>의 경우 온전히 저와 저의 아버지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극에서 처음으로 저 자신인 '재엽'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후에 독일을 갔고 <생각은 자유>에서 봤던 바로 그 일들이 일어났던 거다.

▲ 김재엽 연출 <생각은 자유>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독일 공공극장들의 '극장은 토론장'이라는 생각이 연극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연극이 끝나면 관객과 배우들이 연극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끝나면 바로 관객들이 일어나고 바로 극장 문을 나가고 그러면서 다 잊어버리고... 극장 한 공간에 있으려해도 수위들이 문닫아야한다고 내보내잖나(웃음).

근데 독일은 관객들과 배우들이 대화를 하고 극장 주변 까페나 식당이 새벽까지 문을 연다. 거기서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연극 이야기를 하는거다. 이들에게 연극은 하나의 화두고 극장은 토론장이 되는 거다.

독일 극장을 보면 우리처럼 한두달을 하지 않는다. 잘해야 2~3일 정도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있다가 새롭게 내놓는다. 관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다시 선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처럼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기보다는 열린 결말을 내고 그 결말을 관객들의 생각에 맡기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다시 작품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드라마에 대한 고민을 푼다.

이런 극장들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아침에는 청소년이, 오후에는 아마추어 극단이, 저녁에는 전문극단이 공연을 하는 식으로 계속 이루어져 있다. 물론 한국보다 시설이 깨끗지는 못하지만(웃음), 동네 조그만 극장도 정부가 지원한다는 표시가 붙어있다. 엄연한 공공극장이다. 

그 공공극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연극을 한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에서 자신들을 지원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 곳에서 하는 연극이나 심포지엄을 통해 나오는 내용을 정부는 정책에 반영한다.  

그렇게 독일에 있었는데 2015년에 한국에서 '검열 문제'가 불거졌다고 하니... 독일에서 몇 번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는데 지난해 '권리장전 페스티벌' 개막작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을 받고 <검열언어의 정치학:두 개의 국민>을 만들었다.

'무대 정면'만을 활용하는 흔한 방식이 아닌 '측면'을 활용한 것이 인상깊었다

극장을 '광장' 느낌이 나는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나의 광장이면서, 하나의 갤러리라는 느낌으로. 그래서 극을 보면 측면에서 극이 이루어지고 배우들이 관객들 뒤로 퇴장하고, 무대 측면에는 극중 등장하는 그림이나 책을 전시하고 있다.

로비 또한 연극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극중 나오는 칼 막스의 명언과 '구멍뚫린 책'들로 계단을 꾸몄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광장의 분위기를 느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난민'이라는 화두가 <생각의 자유>를 이끈다

시리아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도망을 갔지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헤매야하는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세월호 희생자들, 위안부 할머님들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소속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이들은 배제됐다. 국가가 지키지 않고 있다.

이들이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체의 의무를 계속 지킨 사람들인데 공동체가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로 '난민'이 아닐까? 어찌보면 지금 우리 자신들도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난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난민들의 외침이 바로 '이게 나라냐' ?  정확한 말이다.

극을 보면 한 작품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인터뷰 장면 역시 극이라기보다는 다큐의 느낌이 더 강한데

사실 <생각은 자유>는 엽서같은 느낌으로 만들려 했다. 일상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마치 한 장 한 장 씩 하루하루를 넘기는 이야기 형태로 말이다. 스케치만 해도 관객들이 잘 알 것이고 지금의 우리가 점점 생동감을 찾아가지만 피로감도 남아있지 않나. 순화를 시키려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를 담을 때는 인터뷰를 그대로 극에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분들이 그렇게 사셨고 그 이야기를 직접 관객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일종의 ‘관객에게 말걸기’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이를 보고 역시 계몽적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웃음).

배우들의 1인 다역 연기가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체의 앙상블을 구현한다. 한 배우가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 배역들을 다 열심히 잘해주셔서 배우들에게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선배 중견 배우들의 경우 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을 만큼의 자리에 있으신 분들인데 우리 연극에 출연해주시고 기꺼이 1인 다역을 맡으시며 무대에서 ‘놀아주시니’ 참 감사하다.

우리 연극에는 극적인 연기가 없는데 그래서 배우들이 연기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해가 잘 안 갈수도 있는데 울거나 웃거나 하는 극적인 연기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관객의 반응이 그때그때 나오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풀면서 할 수 있는데 우리 연극은 그런 극적인 부분이 없고 관객의 반응이 바로바로 나오는 연극이 아니니 어려운거지. 그건 정말 노련해야 가능한 부분인데 정말 배우들이 잘해주신다.

이미 전부터 정해졌던 공연 날짜지만 공교롭게도 <생각은 자유>가 공연될 무렵 ‘뭔가’가 바뀌었다(웃음)

극본 쓸 때 탄핵 결정나고, 한창 배우 구할 때 파면선고 나오고, 공연하려니까 그렇게 됐는데(웃음), 2015년의 이야기가 2017년 5월에 어떤 의미기 있을지를 줄곧 고민하며 이 작품을 만든 것 같다. 비록 시간은 2015년의 이야기지만 지금의 관객들에게 미래를 지향하도록 하는, 그런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 그 이야기를 보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과거의 흥분, 분노, 위로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케케묵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 '공공성'. 김재엽 연출가가 연극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 동안 연극계가 참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 우리가 ‘검열백서’를 만들어 문화계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검열을 주도한 사람은 물론 감옥에 있지만 그 외에도 주도한 이들이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검열백서를 공론화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과를 받고 또 우리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저는 박근혜 정권이 공사 구분을 못해서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을 국가라고 생각했고 ‘공공성’이라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갖추지 않았다. 바로 그 ‘공공성’이 저의 가장 큰 화두다. 연극이 화두가 되고 그 화두를 관객과 이야기하고, 그것이 반영되는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김재엽의 연극’은 어떻게 진행될까?

‘독일 3부작’이 나올 것이다. 일단 3부작의 개론 격이 <생각의 자유>였고 11월에 예술의전당에서 <병동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를 선보일 예정이다. ‘병동 소녀’를 독일어로 쓰면 ‘간호사’인데 바로 <생각은 자유>에 나왔던, 독일에 지금도 살고 있는 우리 간호사와 광부들의 이야기를 이번엔 더 심도있게 그리려한다.

아마도 ‘재엽’이 나오는 연극은 독일 2부에서 끝날 것 같다. 3부는 칼 막스의 <자본론>을 바탕으로 만들 생각인데 그 연극에는 아마 ‘재엽’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참 어렵다. 저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그것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식의 극을 만들어내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그렇게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