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피해, 결국 문화예술계 전체와 국민이 입었다"
"블랙리스트 피해, 결국 문화예술계 전체와 국민이 입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7.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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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대토론회, 도종환 "다시는 연극인들 극장 뺏기는 일 없어야"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대토론회 '청산과 개혁'이 지난 3일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렸다.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가 주최 주관한 이번 토론회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의 필요성과 의미를 짚어보면서 중요하게 지목해야할 부분과 진상조사위원회의 쟁점을 살펴보고, '공정성'과 '공공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다.

특히 이 자리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참석해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에 참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 인사말을 하는 도종환 장관

도종환 장관은 인사말에서 "우리 역사에 더 이상 (문화예술인에 대한) 재정적 배제, 사회적 배제가 있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그대로 인정받아야하고 평가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다시는 연극인들이 극장을 뺏기는 일이 없어야한다. 예술의 자유권, 창작권을 존중하고 그를 지키는 것에 앞장서겠다. 이것이 지켜져야 국민의 문화향유권이 지켜진다"고 말했다.

그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하고 필요하면 관련 법도 만들고 제도도 개선하겠다. 다시 해야할 사업이 있다면 개선책도 만들 생각이다. 문예진흥기금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예술인 복지에도 힘쓰겠다. 오늘 (토론회) 내용을 세밀히 파악하고 정책 만들겠다"고 말했다.

검열백서위원회 위원장인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2015년 창작산실 시범공연 당시 박근형 연출가에게 '취소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없어진다'면서 포기각서까지 강요한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부장 장모씨가 "(블랙리스트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린 사람을 직접 만나 왜 이것이 말이 안되는 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싶었다"는 말을 법정에서 하자 '영혼이 있는 공무원' 운운하며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진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가해자인 공무원들이 피해자로 둔갑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의 1차 피해자는 지원에서 배제된 예술가들이지만 그들의 피해는 결코 경제적인 피해만이 아니다"면서 "박근형 연출가가 후배들을 위해 지원 포기를 결정한 후 공연팀들이 공연 강행과 포기를 놓고 심하게 갈등했다. 검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쪽과 방관하는 쪽 사이에도 감정의 앙금을 남겼고 지원에 배제된 예술가들과 지원에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블랙리스트의 피해 범위는 결국 문화예술계 전체였고 결국 국민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 향유에 관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블랙리스트의 진실은 이제 겨우 그 윤곽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됐는지를 밝혀야한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공무원들과 문화예술계 내부인사들이 양심고백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검열백서위원회 조사위원인 이양구 극작가는 "진상규명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 분야 핵심 공약인 만큼 최소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체부 직속으로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문체부 지원배제 사건으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대상을 청와대와 국정원 등 전 국가기관으로 분명히 하고, 과거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처럼 강력한 조사권이 보장되어야하며, 후속 세대를 위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블랙리스트 방지법'을 제정하고 개정헌법에서 구체적 조항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1부 토론자 이양구 극작가,김미도 연극평론가, 김재엽 연극연출가

이 위원은 "단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대화의 과정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라면서 "블랙리스트 사태는 '보이지 않는 사건'이다. 피해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상상을 통해서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 단계에서 화해나 치유라는 말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정성, 그리고 공공성'을 주제로 한 2부 토론에서 노이정 연극평론가는 "문화예술위원회가 책임있는 협의 기구로 재정립되려면 '공공기관 운영법'이나 기획재정부의 정책 예산 심의 허가에서 벗어나 지원 정책의 결정권을 갖고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가 되야한다. 정책과 사업에 대한 평가도 정량적 수치가 아니라 장단기적으로 어떤 예술이 발전하는가. 시민들이 어떤 문화를 어떤 조건에서 향유할 수 있는가를 근거로 삼아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극장은 공연 예술 정책이 실현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라면서 "연극 지원제도의 종착지는 공공극장 활성화다. 그 곳을 예술가들이 사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공공극장들이 예술가가 감독을 맡는 형식으로 독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고연옥 극작가는 "서울연극제 대관탈락, 창작산실 검열사태 등으로 전업극작가들은 막대한 상금이 주어지는 창작산실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우수한 창작극을 개발한다는 취지는 무색해지고 신작을 발표하는 극작가들이 거의 사라졌다"면서 "국립극단마저 창작극이 아니라 극작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현실과 거리가 먼 작품들을 선택했고 이는 연극의 생명인 현장성, 동시대성의 가치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문체부 관리감독을 받는 산하기관으로서 국공립제작극장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와 레퍼토리 구성과 조직 운영에 이르기까지 거의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제왕적 예술감독시스템에서 오는 문제"라면서 "작가들의 집필 과정부터 국공립제작극장만이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와 작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2부 토론자 고연옥 극작가, 노이정 연극평론가, 이진아 연극평론가

참석자들은 블랙리스트 사태가 단순히 지원 배제, 예술인 억압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예술 향유권까지 앗아간 범죄라는 것에 뜻을 같이 하고, 이런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공공성과 공정성을 앞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것에도 동조했다.

한편 플로어 토론에서 이은영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편집국장은 "블랙리스트 사태의 범위를 조윤선 전 장관 구속이 아닌 도종환 장관 취임 때까지로 넓혀야한다. 그 이유는 지난 2월 기금 심의에서도 여전히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했다"며 "특히나 지금도 그 당시 지원 배제와 예술인 탄압에 암묵적 동조와 방조를 일삼았던 이들 중  '단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현실"이라면서 "이들 스스로의 자성과 더불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이들이 혹여나 '완장을 차고 행세하는' 일도 경계해야하는 부분이다"라고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