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철 사진전' 사람이 떠난 빈자리, 그곳엔 하얀 누액(淚液)이 흐른다
'박노철 사진전' 사람이 떠난 빈자리, 그곳엔 하얀 누액(淚液)이 흐른다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7.0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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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일태백문화예술회, 서울이어 태백서 열리는 “흔적에 길을 묻다”전

어머니 품 같은 산이 태백산이다. 오랫동안 그 땅의 광업소에서 나온 검정황금은 한국경제성장의 상징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신정일이 <새로 쓴 택리지>에 “1960년대 들어서면서 이곳 태백은 숯 검댕으로 변해, 크고 작은 광산이 마흔 다섯 개가 있었고, 황지와 장성을 합해 시로 만든 1981년 태백 인구가 13만 명이었고, 유흥업소가 500곳이 넘었을 정도로 흥청거려 지나가는 강아지도 만원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했던 태백. 하지만 그 명성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 사진가 박노철 Ⓒ정영신

탄광개발이 지나간 산자락은 폐석더미들이 나뒹굴고, 우유 같은 물줄기가 땅속에서 흘러내리는 백화현상이 생기는가 하면 골짜기의 개울물이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황분이 함유된 갱내폐수가 흘러내린다.

▲ 오십천 절골계곡 (사진제공 - 박노철)

광부들의 땀이자, 그들의 눈물이었던 갱내폐수가 밖으로 뿜어져 나온 그 터에, 나무와 풀, 꽃을 키우며 묵묵히 일을 해온 것은 자연이다. 지나간 시절이 남긴 생채기거나 아직도 흘러내리는 누액(淚液)을 태백에 사는 사진가 박노철이 5년동안 기록해 전시를 하면서 책으로 엮었다.

▲ 오십천 절골계곡 (사진제공 - 박노철)

땅을 파헤쳐 물질을 체득했으면 자연이 잃은 것을 깨끗하게 돌려놓아야 하는데,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관이 없어 옛 폐광의 흔적이 땅속 곳곳에서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작업노트를 읽어보자.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것은 인류생존을 위한 의무다. 자연은 한번 잘못 건드려 놓으면 완전 복원되는 데 100년 이상이 걸린다. 자연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 것,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 지금 이 백화현상과 황변현상의 폐광 수는 다음 세대엔 새 생명으로 흐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폐광의 흔적을 찾는 사진 작업은 완성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 소도천 소롯골 계곡 (사진제공 - 박노철)

그의 사진을 느린 산책자가 되어 감상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사진가 박노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면서, 사회 고발이나 예술 지향의 어느 한 곳에 편향하지 않았다.

자연의 색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창백한 푸른 물이 돌을 감싸듯 자연스럽게 산과 숲 사이를 흘러내린다. 또한 호박넝쿨 사이의 붉은 물이 풍경을 가로질러, 자연은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물질과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적, 문화적 자원을 주는 생명의 근원으로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 옥동천 구례천 줄기계곡 (사진제공 - 박노철)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서문을 쓴 사진가 최광호는 “사진은 대상을 찍는 것이다. 사진의 힘이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며, 스스로의 삶도 아름답게 가꾸어 가며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제는 폐광지의 자연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며 세상이 정화되고 있다. 현장에서 자연이 인간에 의하여 병들어가는 지금 자신도 그것으로부터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며 곧 자신의 몸이 병들어 가듯 그 아픔을 철저하게 느끼며 폐광지의 불편한 현실을 사진으로 직시한다.

폐광지역으로부터 시작되는 서울의 젖줄인 한강의 발원지가, 부산의 젖줄인 낙동강의 발원지가 점점 청정해져 가고 있는 것도 다 사진의 힘이요! 사진하는 박노철이란 한 사람의 사진가가 노력해 얻은 결과다.“고 말하고 있다.

▲ 오십천 절골계곡 (사진제공 - 박노철)

박노철 사진가의 `흔적에 길을 묻다'전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렸으며,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는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또한 ‘눈빛출판사’에서 오늘의 다큐5집’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집도 펴냈다.

▲ ‘오늘의 다큐’ 박노철 사진집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표지

‘오늘의 다큐’는 풍경과 사람, 시대와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영역으로 구성된 책이다. 사진가 박노철 사진집에는 검은 버짐이 피거나 떼다가 만 상처의 딱지 같은 흔적이 곳곳이 묻어있고, 돌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우유 빛의 순수는 아름다운 슬픔이 베여있다.

“캄캄한 막장 광부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는 사진가 박노철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황변현상과 백화현상의 산과 계곡은 우리가 보듬고 가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