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발레페스티벌코리아 기획공연, ‘동행’,‘죽음과 여인’
[이근수의 무용평론] 발레페스티벌코리아 기획공연, ‘동행’,‘죽음과 여인’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7.07.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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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뇌파를 연상시키는 파동이 둥그런 틀 안에서 이어진다. 원을 떠받들듯 넓게 펼쳐진 수면에 하얀 포말을 만들며 밀려오는 파도와 겹쳐지는 모습이다.

조주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여인은 바다를 닮은 넓은 치마폭으로 상징화된다. 그 아래서 수많은 생명들이 탄생한다. 올해로 7회를 맞는 대한민국발레축제(6.8~6.25)에 기획공연으로 초청된 ‘동행’의 첫 장면이다.

‘동행’(6.19~20, CJ토월극장)은 한 여인의 일생을 그려낸 서사시다.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고 태어나 한 남자의 여인이 되고 대가족의 어머니와 할머니로 살아온 여인이 임종 직전에 남긴 장시조 한편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 여인의 삶과 죽음을 보편적인 인간의 명제로 일반화시키는 것이 조주현의 안무의도일 것이다. 무대 뒤편 중간 쯤 높이에 마련된 제단 위에 한 여인이 서 있다.

좌우로  넓게 펼쳐진 하얀 옷감을 여며 가운데로 모으니 폭 넓은 치마가 된다. 안무의도와 매치된 송보화의 의상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김유미의 솔로에 이동탁이 가세한 2인무가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어머니, 할머니 혹은 모든 여성성에 대한 오마주(homage)라 할까.

그들이 찾는 것은 그리움이다. 조명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조명이 암전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음악은 양악에서 국악으로, 서정적인 춤사위는 활기찬 무브먼트로 변하고 시는 산문이 된다.

소리꾼 김율희가 굿거리장단에 맞춰 남도민요조로 낭송하는 시에는 한 집안의 가족사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인간세상 만사 중에/이 기쁨에 더할 손가/각 곳에서 일가친척/다 모이니 화기 또한 애애하고/봄기운이 완연한데/인생행로 무상하다.” 생일잔치를 축하하는 경쾌한 노래와 춤 다음에 다시 조명이 암전하면 장례식 풍경이다.

여인을 떠나보내는 자손들이 상여꾼이 되어 긴 행렬을 이룬다. 어깨 위에 시신을 얹고 무대의 전후좌우를 반복적으로 도는 장의행렬은 지루하다. 45분의 공연시간에 비춰 긴 시간이 할애된 후반부가  고조되었던 앞부분 무대의 긴장감을 떨어뜨린 느낌이다.

20년 전 작고한 외증조모가 남긴 여러 편의 시 들이 조주현의 전작인 ‘가는 세월 오는 세월’(2014)과 이 작품 ‘동행’의 텍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사가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가족이 남긴 시편들이 텍스트로 쓰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공연이 관객의 공감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기록에 대한 단순한 서술을 넘어 보편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창의적인 전달방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인의 완성된 삶과 축복받은 죽음을 현대와 전통을 뒤섞는 방식으로 보여준 작품의 진지함을 발견하면서도 25분을 분기점으로 공연의 전 후반을 단절시킨 드라마트루기의 부자연스러움이 아쉽게 느껴졌던 공연이었다.

다음 작품으로 공연된 ‘죽음과 여인’(Death song)은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수석 무용수인 발레리나 김세연의 안무 데뷔작이다. 공교롭게도 죽음과 여인을 다룬 주제가 앞 작품과 동일하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임혜경이 타이틀 롤을 추고 그녀의 파트너로서 엄재용, 김성민이 출연했다.

이들과 함께 스페인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인 에스테반 벨랑가, 안토니 피나, 취리히발레단 출신 발레리노인 이케르 무릴로와 비탈리 샤프론킨이 출연하고 분홍색 로맨틱 튀튀를 차려 입은 8명 무희들이 군무진에 가세했다. 이들은 성신여대  재학생들이다.

상반신을 벗은 근육질의 남성4인무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강렬하다. 남녀 군무진이 함께 어울리며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추는 앞부분은 삶의 환희를 보여주는 듯하다. 경쾌한 춤은 곧 죽음의 무도로 이어진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 김해송의 ‘청춘계급’이 육성으로 들려오고 여인의 죽음이 암시된다. 김세연의 작품은 삶과 죽음을 평면적으로 묘사했을 뿐 40분 공연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모호하다.

예술가로서의 자유로운 삶과 죽음을 화려한 볼거리 중심으로 가볍게 터치했다는 것이 ‘죽음과 여인’을 보고난 후의 느낌이었다. 외면적인 표현 형식에 앞서 내면의 깊이가 소중함을 강조해주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