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변화 없다면 법도 휴지조각에 불과"
"문화적 변화 없다면 법도 휴지조각에 불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7.0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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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 전하는 울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다른 곳으로 확산시키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공공장소라는 곳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모티브다. 공공장소의 진정성은 문화프로젝트에 있다".

지난 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가 전시를 앞두며 전한 말이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의 주요 담론을 선도했던 보디츠코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주요 작품 80여점이 국내 관객들을 맞이한다.

▲ 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 2009, 작가 소장

그는 세계 각지의 도시에서 바라본 여러 사회 문제들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던지고 상처받고 억압된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공공 프로젝션과 디자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전쟁의 비극과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난민, 노숙자, 가정폭력 희생자 등을 그냥 바라보지 않는 그다. "미술관을 공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여러 사람을 모은 장소가 아닌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가져와 함께 공유하는 토론의 장소다".

그의 작품에는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작품들이 있다. 가정폭력 생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티후아나 프로젝션>, 원폭 피해 여성, 특히 재일 조선인의 목소리가 담긴 <히로시마 프로젝션>, 감옥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전쟁의 상처를 전하는 메시지가 마치 비명소리처럼 들리며 울컥하게 만드는 <여기에서 나가, 참전군인 프로젝션> 등이 그것이다.

1988년 뉴욕에 한파가 몰려왔다. 노숙자들은 그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폐타이어를 태우며 몸을 녹이고 있다. 그런데 같은 곳에는 부동산 광풍으로 세입자를 기다리는, 비어있는 빌딩들이 있었다.

이 말도 안되는 대비를 본 보디츠코는 노숙자들이 빈 캔을 모으는 쇼핑 카트를 개조해 그 안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세수도 할 수 있고, 깡통도 보관할 수 있는 복합기능의 수레를 만든다. <노숙자 수레>가 그것이다.

▲ 한 노숙인이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 1988, 홍콩 개인소장

당연히 이 수레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만든 것은 노숙자들에게 수레를 배급하자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이 수레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이런 수레를 만들어야 할 만큼 노숙자들이 편한 삶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우경화되고 이방인을 배타하는 태도가 나올 때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된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 보디츠코는 <외국인 지팡이>와 <대변인(마우스피스)>를 만든다.

이민자들을 위한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소통 기구로 중간 부분에 이민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낸 <외국인 지팡이>, 커다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리게 하는, 역설적인 제목의 <대변인(마우스피스)>는 9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브렉시트와 트럼프 시대를 맞은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한국에 왔다. 탈북자를 소재로 프로젝트를 하려했던 그는 한국의 위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기념관의 김구 선생 동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큰 감동을 받는다.

"그 글에는 통일된 한국을 향한 그의 비전이 담겨있다. 그가 생각한 국가는 강국이나 제국이 아닌 국민들의 건강, 아름다움,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기쁨의 국가, 생각을 자유롭게 교류하는 국가를 꿈꾸고 있다".

▲ 나의 소원, 2017, 작가 소장

이번에 최초로 선보이는 <나의 소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때마침 그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공공장소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와 시위의 무대가 되는 것을 본다. 그 곳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김구 선생의 동상을 모티브로 한 조각에 자신이 인터뷰한 여러 인물들의 영상을 겹쳐놓는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해고노동자, 탈북예술가, 동성애 인권 운동가, 평범한 20대 청년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구 선생이 꿈꾼 '이상적인 나라'를 형상화한 작품은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문화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며 특히 아티스트는 그 문화의 변화를 이끌 사람들이다. 진정한 민주사회를 위한 비전을 찾아야한다"며 문화 발전을 가장 최우선으로 삼았던 보디츠크가 추구하는 '공공성', 그리고 '공공장소'의 의미를 돌아보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평화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를 묻는 그의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가 전한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다.

"사회는 정치적인 변화에만 의존하면 안된다. 문화적인 변화, 문화적 활동이 있어야한다. 그것이 없다면 법이든 조례든 모두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시위나 집회를 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유토피아적인 사고로 전환한다면 시위를 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