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피아’를 꿈꾸는 가출한 화가 정복수
‘복수피아’를 꿈꾸는 가출한 화가 정복수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7.23 0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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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하문로 예술공간 ‘사루비아다방’에서 오는 8월4일까지)

"그림을 죽여야 한다.

그림에서 도망친 것들이 미술이라고 설친다.

그림에 애걸하는 그림이 그림이라고 난리다.“

전시장 계단을 내려가 입구에 도착하면 그의 글이 흔들리듯 굴러 눈앞에 다가선 순간부터 보물찾기를 시작하는 낯선 그림보기에 초대된다.

▲ 가출한 화가 정복수

신발을 벗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박제되지 않는 미술,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벽에도 걸려있고, 바닥에도 깔려있고,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나뒹굴어 일상에서 느끼는 그림을 향유할 수 있다.

45년 전 17세 소년이었던 정복수는 화구를 리어카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을 실현하지 못해 마음의 부채를 안고 살아왔다. 그 꿈을 되살리듯 ‘가출한 화가’ 정복수 프로젝트로 서울 자하문로 사루비아다방(미술인 회원들의 순수기부로 운영되는 비영리 예술공간(전문예술법인.공인법인)으로 가출해 전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색적인 전시를 하고 있다.

▲ 미완성 작품을 보여주는 화가 정복수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닥에 깔려있는 그림을 밟고 다녀야 한다. 인간의 심리지도를 닮은 그의 그림은 몸에 대한 추억이나, 몸에 대한 생리적 실존에 대한 명상들이 조형적으로 드러나 생존을 위한 인간의 번뇌와 육체의 허망함에서 경계를 횡단한다. 마치 외줄타기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림을 죽여야 그림이 살아나듯, 그림 안에서 인간의 완전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출한 화가의 의미를 점점 찾아가고 있다며 “천국, 극락, 낙원 같은 종교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을 동시에 느끼면서 ‘복수피아’로 모든 것을 녹여내고 싶다”는 신자연주의 삶을 내비쳤다.

▲ '번식에 대한 초상'은 전시기간에 완성된다.

신자연주의 삶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산다는 것이 예술이고, 모든 생명이 살아있는 한 끊임없는 예술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생산한다’는 생명성의 본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예술은 몸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예술작품이 내는 모든 소리와 언어, 조형언어도 몸에서 나온다고 한다. 작가의 영혼과 몸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바로 기존 철학을 넘어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학으로 건너가는 실천적인 몸의 철학이 그가 지향하는 그림인 셈이다.

▲ 정복수 작품1 '바다를 먹는 남자'

그는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무슨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해 밤낮으로 쏘다니며 풍경을 중심으로 인물과 동물, 정물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고 한다. 이십대 중반까지 고독과 외로움에서 미술정보와 영향 받은 예술가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 전시중인 정복수의 작품

그는 40여년을 인체를 소재로 작업해오면서 인간의 욕망과 본질에 대해 사유하면서 성찰해오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은 그의 평생 화두로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표현을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작업을 통해 끄집어내고 있다.

인간의 몸을 통해 현대인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현대사회에 대한 고발의식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그는 "작품에 시대정신을 담지 못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특히 그는 “그림이라는 것은 살아 움직이고, 없는 길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춤도 추고, 고함도 지르고, 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증오도 하고, 술도 마시고, 미워도 하고, 사람이 살아가듯 살아 있어야 그림이다.”고 말했다.

▲ 전시중인 작품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과 야수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불편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1976년부터 바닥화를 구상하면서 인체를 통해 꾸준히 인간실존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지금 전시장바닥에 그려놓은 ‘번식하는 초상’에 녹아있다.  그의 바닥화는 미술과 삶의 유기적인관계를 온몸으로 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 전시중인 작품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실험적 시도의 언어를 보여주듯 인생과 얽힌 이야기들이 그림 속에서 움직여 신선한 생명력을 읽게 한다. 그의 그림은 시가 아닌 소설처럼 삶의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듯 그리움과 슬픔, 절망과 고독, 꿈과 희망, 향수, 환희가 그림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 몸을 통해 근본적인 인간 본능과 욕망, 감각의 의미를 해석하는 눈, 코, 입, 귀, 생식기, 신체기관은 암호로 남아 숨은그림을 찾게 하는 것이다.

▲ '번식에 대한 초상'을 그리는 정복수 화가

그래서 그의 그림은 시보다 소설에 가깝다. 소설가가 언어로 말하듯 그는 색과 선으로 기묘한 인간의 몸을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다한다. 욕구와 욕망을 냉소적으로 보여주지만 그의 마음은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몸을 그리면 그릴수록 그려낼 것이 더 많아진다는 그는 “아직도 인간을 반에 반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가출한 화가 정복수’전은 사루비아 전시장에서 관람자가 보는 앞에서 직접 작업하는 과정을 전시로 보여준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완성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작가 정복수는 그림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다. 지금껏 싸움한번 못해본 그야말로 쑥맥이다. 상대가 코앞에 앉아있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순정한 그림쟁이다.

▲ 전시중인 작품

그가 세상 밖으로 가출한 까닭이 늘 꿈꾸는 ‘복수피아’의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자연의 언어를 그림으로 번역해 자연의 몸을 그리는 메시아인지 끝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정복수 개인전 - ‘가출한화가’는 오는 8월4일까지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다.

전시문의 : 02-733-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