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목소리가 주는 동질감, 눈이 아닌 귀를 열고 보라
각기 다른 목소리가 주는 동질감, 눈이 아닌 귀를 열고 보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7.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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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아시아 디바:진심을 그대에게', 대중문화 속 억눌렸던 이야기를 느낀다

우선 먼저 이야기할 사항.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디바:진심을 그대에게>(이하 <아시아 디바>)는 일반 미술관 전시 관람처럼 '눈'이 중심인 전시가 아니다. '눈'만으로는 이 전시의 의미를 알기가 사실 어렵다. 이 전시는 '귀'를 열어야 느낌이 온다. 보는 눈과 듣는 귀, 그리고 귀로 들리는 소리를 느끼는 '심장'이 필요한 전시다.

<아시아 디바>를 소개하는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김추자, 한대수 등 60-7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 아이콘과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대중문화를 소개하여 아시아를 관통하는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 젠더와 섹슈얼리티, 냉전과 독재라는 후기식민의 경험들을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제시하는 전시" 이 말 속에 이 전시의 키워드가 숨어 있다. '동남아시아', '여성', '대중문화' 그리고 '김추자'다.

▲ 김추자 아카이브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아시아 디바>는 우선 한국의 70년대 여성 가수를 대표하는 김추자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이미자와 패티김으로 대표되는 세대와 나미, 김완선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연결고리이면서 3선 개헌과 유신, 경제 성장과 월남전으로 점철된 70년대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장르의 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모았던, 그러나 <거짓말이야> 등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김추자라는 '디바'를 주목한다.

그리고 이 전시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월남전'이 나온다. '말썽많던 김총각'이 온 마을 사람이 맞아주는 '씩씩한 김상사'로 바뀌었다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울려퍼지고 '자랑스러운 남아'라고 대한뉴스는 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히피 문화'가 번지기 시작한다. 월남전에 종군한 천경자 화백이 현장을 그린 그림과 함께 당시의 자료화면을 거치면 이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갈 차레다.

인도네시아의 6,70년대 활동한 가수들과 함께 그들이 부른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거친다. 생소할 것 같지만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이질감이 없다.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나면 제인 진 카이젠의 <몽키하우스> 연작을 만나게 된다.

▲ 제인 진 카이젠 <몽키하우스-기묘한 만남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되어 덴마크 국적을 가진 설치 미술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제인 진 카이젠은 60-70년대 동두천 미군부대 근처에 있던 집창촌 '몽키하우스'를 배경으로 거리 여성들의 인권과 삶의 흔적들, 남한과 미국 정부의 협상으로 이중고를 겪었던 여성들의 삶을 반추한다. 이를 보면 불현듯 위안부 할머니들이 떠오를 수 있다. 위안부 할머니도, 미군을 상대한 여성들도 감싸안지 않았던 시대가 박정희 시대다. 

김소영의 <고려 아리랑>은 고려극장이 배출한 디바 방 티마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딘 큐레의 <어둠 속의 비전>은 베트남 작가 쪈 쯍 띤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정은영의 <틀린 색인:여성국극 아카이브>에는 글로 적혀있는 여성국극 배우들의 목소리를, 응녹 나우의 <그녀는 욕망을 위하여 춤춘다>는 공산당 체제하에서 오랜 기간 금지된 베트남의 전통 모신(Dao Mau)신상과 그 제의들을 표현한 디지털 퍼포먼스 영상과 리믹스 음악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요시코 시마다, 박찬경 등 다양한 작가들의 설치미술과 한묵, 김한, 변영원 등 60년대 후반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을 남긴 화가들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지만 이 전시는 어디까지나 영상으로, 소리로, 글로 전하는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다. 전시장을 찾게 되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영상을 쭉 보길 권하고 싶다. 헤드폰을 끼고 영상을 봐야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 '김추자 아카이브'다. 김추자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간, 팀 원피스와 DJ 소울스케이프, 차승우(더모노톤즈), 하세가와 요헤이(장기하와 얼굴들) 등이 참여한 한정판 LP 수록곡을 들을 수 있는 공간과 함께 하세가와 요헤이가 모은 옛날 우리 가수들의 레코드판을 볼 수 있다.

▲ 응녹 나우 <그녀는 욕망을 위하여 춤춘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김추자와 월남전, 인도네시아와 고려인, 몽키하우스의 여성들과 국극 배우들, 베트남 여성들은 얼핏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을 한데 모은 순간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여성성을 숨기고 살아야했고 가부장적 사회, 독재 정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은 평생 '식민지 국민'으로 살아야했다. 나라는 독립이 됐을 지 모르지만 이들만큼은 식민시대의 연속에 불과했다. 이 묘한 동질감이 목소리를 타고 전해진 것이 바로 <아시아 디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대중문화'의 힘을 느끼게 된다. 대중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바로 대중문화이고 그렇기에 대중문화에는 그 당시 대중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60년대 후반 다양한 상상력을 가진 그림들이 나왔지만 우리가 그 시대상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그림이 아닌 김추자의 노래였다. 김추자의 노래, 그리고 그 노래를 만든 신중현의 생각, 한대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억눌렸던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디바> 전시 기간 중에는 매주말마다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 등 다채로운 연계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귀를 열고 공연까지 즐긴다면 느낌은 배로 다가올 것이다. 귀를 열고 당시 대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시아 디바>는 목소리의 힘, 대중문화의 힘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