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아메리칸 뮤지컬 ‘해밀턴’을 보고, 힙합뮤지션 양동근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아메리칸 뮤지컬 ‘해밀턴’을 보고, 힙합뮤지션 양동근 배우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7.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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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을 보았습니다. 극본, 작사, 작곡이 모두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입니다. 2015년 2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그간 다듬고 다듬어서 현재 뮤지컬계 최고의 흥행작입니다. 미국 건국의 주역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AN AMERICAN MUSICAL'이란 타이틀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힙합이 밑바탕에 깔린 이 뮤지컬을 보면서, 배우이자 랩퍼인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번안이 되어 공연이 된다면, 해밀턴을 연기할 양동근배우를 떠올려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가 공연되었었죠. 당신이 거기에 출연을 했구요. 역시 린 마누엘 미란다 음악과 가사로 된 뮤지컬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뉴욕의 워싱턴하이츠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었죠. 힙합을 사용한 뮤지컬입니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있는 뮤지컬이었습니다. 

<인 더 하이츠>의 스토리는 아주 흥미롭진 않지만, <해밀턴>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토리가 무척 재밌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다루었지만, 내용이나 음악이나 연기에 있어서 모두가 ‘고리타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모든 배역의 연기와 노래와 춤 등이 ‘생기발랄’해서 이상할 정도입니다. 

만약 ‘해밀턴’의 내용을 기존의 뮤지컬넘버와 같은 느낌이라면, 이렇게 히트하지는 않았을 거라 단언합니다. 젊은 감각의 힙합과 랩이 작품을 톡톡 튀게 살려냅니다. 내가 본 미국 시카고 공연에선 10대와 20대들이 와서, 뮤지컬에 익숙한 부모세대보다도 오히려 더 재밌게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자리에 앉아서 어깨를 움직이면서 춤을 추듯 보는 관객도 보였습니다. 더불어서 세대를 초월해서 많은 남성관객을 보았습니다. 

뮤지컬 ‘해밀턴’을 통해서, 새롭게 경험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남성화장실에 들어가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남성관객이 많았다는 얘깁니다. 그간 여성들의 애로를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뮤지컬공연장에서 남성화장실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남성화장실을 여성화장실로 바꾸고, 외진 곳에 한 개 정도만 남겨두지 않았까? 그만큼 대한민국 뮤지컬에 남성관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밀턴’과 같은 작품을 공연한다면,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얼추 맞춰질 것 같습니다. 

이번 뮤지컬을 보면서, 힙합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힙합’으로 전하는 것들이 감정 이상으로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설득할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한 것이죠. 뮤지컬배우가 자신을 드러내는 한 곡을 부르는데 있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을 주관(1인칭)과 객관(3인칭)을 넘나들면서 바라본다는 점도, 기존의 노래와 차별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기존의 다른 장르의 노래가 갖지 못하는 특장(特長)이 힙합에는 존재합니다.  

앞으로 많은 뮤지컬 넘버가, 더 이상 주인공의 ‘감정’에만 치중해서 만들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뮤지컬의 청중들도 이런 노래를 들으며, 거기에 이입되어서 박수를 치지 않길 바랍니다. 뮤지컬도 이제는 보다 더 ‘사유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뮤지컬 ‘해밀턴’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뮤지컬 넘버가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뮤지컬처럼, 모두 것이 궁극적으로 주인공에게로 향하는 뮤지컬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해밀턴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그의 라이벌 토머스 제퍼슨(1743∼1826)도 잘 그려냅니다. 성숙된 라이벌 구도가 극적 긴장감을 더욱 유지해 나갑니다.

뮤지컬도 궁극적으로 사람과 상황에 대한 이해라면, 우리에게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는 뮤지컬이 더욱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란 말이 있죠. 뮤지컬 ‘해밀턴’을 통해서, 이 말을 뮤지컬을 통해서 생생하게 확인할지는 몰랐습니다. 이 뮤지컬은 나름의 시각으로 역사를 제대로 보려하고 있지만, 결코 ‘과거로’ 돌아가서 이 시대를 재현하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그 어떤 뮤지컬보다도 ‘현재적’으로 다가옵니다. 이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뮤지컬이 ‘합합’이라는 장르 혹은 정서를 기본으로 해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한국은 뮤지컬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뮤지컬의 소재와 음악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뮤지컬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의 개발이라거나, 뮤지컬배우의 인프라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타 장르의 뮤지션들이 뮤지컬에 적극 등장을 하고, 더불어서 뮤지컬의 음악도 지금보다 훨씬 외연을 넓히길 희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뮤지컬 ‘서편제’가 공연되는 것이라거나, 국립창극단의 이소연이 새롭게 뮤지컬 스타로 부각되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겠죠. 

뮤지컬 <해밀턴>이 한국에서 공연될 수 있을까요? 투자와 흥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뮤지컬은 결코 매력적이지도 못하고, 위험부담을 갖게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분명 랩, 디제잉, 스트릿댄스를 한국의 공연문화에서 잘 수용했을 때,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장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거죠. 

뮤지컬 ‘해밀턴’이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하게 되고, 거기서 양동근씨를 비롯해서, 또 다른 능력자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쇼미더머니’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이것이 확대되어서 ‘고등래퍼’라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걸 보면, 앞으로 이 장르가 차지할 비중은 더 넓어질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실력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고 보면, 랩이 기본이 된 뮤지컬의 가능성도 무척 크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해밀턴>이 미국뮤지컬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듯이, 한국에서도 그런 작품이 꼭 나와주길 바랍니다. 그런 작품에서 양동근 배우가 더 큰 활약을 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