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모호한 경계를 횡단하는 황혜정작가의 ‘Ambiguous Lines’전
[전시리뷰]모호한 경계를 횡단하는 황혜정작가의 ‘Ambiguous Lines’전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8.19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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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까지 이태원 경리단길 ‘카라스갤러리’에서 열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촉각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 횡단하는 황혜정작가의 첫 전시가 이태원 경리단길 갤러리‘카라스’에서 열리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얼굴 없는 몸이 서로 뒤엉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숨어 있는 욕망을 꺼내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자기만의 놀이에 빠진다. 이불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쓰고 빛을 차단시켜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놓이지만, 곧바로 이어져오는 공포를 경험한다. 어렸을 적 기억이 촉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그녀는 무의식에 버려져 있던 파편들이 의식으로 돌아와 색채적인 시각으로 말을 걸어오면 작업을 한다고 한다.

▲  Ambiguous lines, pencil on paper, 212.8x100cm,2017 (사진제공 : 하형우)

그녀는 이상한 것과 아름다운 것의 경계를 주제로 이번전시를 풀어내 드로잉과 양모털과 솜등을 이용해 시각적인 촉감을 활용해 관객과 공감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그녀의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Ambiguous Lines, Solace, Absence, Things of the unconscious, An escape, Rebellions child등 모든 작품을 선보인다. 그녀는 홍익대에서 섬유미술과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런던왕립예술대학에서는 텍스타일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베토벤의 음악이 카멜레온처럼 다양하듯 그녀의 작품도 드로잉부터 설치물까지 다양하다. 양모 털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드로잉에서 베토벤의 섬세한 자유로운 소나타의 리듬이 털의 촉감을 하나하나 메 만지듯, 관람객이 그림 속 얼굴이 되는 모호함에 빠진다. 그녀가 의도한 관람객과의 소통이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Ambiguous Lines’전의 황혜정작가 Ⓒ정영신

그녀는 ‘경계선상 위 자아들’을 부제로 무의식적으로 숨겨왔던 그녀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선을 그어왔던 경계를 그림 속에서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녀는 “날 것 그대로인 순수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내 그림이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내 감정 또한 달라져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해 스토리를 만들어 그림언어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작가노트에 그녀는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들을 모조리 내 바깥으로 밀어버린다. 그러다 발 하나, 손 하나가 나에게로 넘어오는데 문득 이들이 진짜 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이들을 따라 그들이 왔던 곳으로 들어가 본다. 어둡고 꽉 막힌 그곳은 아늑하고 편안하다가도 금세 답답하고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 든다. 나는 다시 처음의 나로 돌아간다. 경계선들이 군데군데 희미해졌다.” 고 쓰고 있다.

▲ ambiguous lines,820x680(mm),mixed media,2017 (사진제공 : 하형우)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 그치지 말고 상상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 안에 투영시키면서 그림과 놀이에 빠져야 한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까실까실한 눈썹의 결을 만지면서 자기만의 공상세계에 들어가 여기(내면)있는 나와 저기(현실)에 있는 나와의 경계에서 “어, 이게 뭐지?” 하는 질문을 수없이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섬유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촉감으로 연결한다. 콜라쥬와 드로잉과 양모텍스츄어를 결합해 그녀만의 형상언어를 사용해 그림을 완성한다. 어렸을적부터 본능적으로 촉감에 애착이 있었다는 그녀는 혼자 영국유학생활을 하면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눈썹을 만지는 버릇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눈썹이 주는 촉각적 자극이 정서적 위안을 주는 경험을 직접 체험하면서 까실까실한 눈썹을 쓸어올리면서 쾌감을 느끼고, 작업을 통해서도 눈썹을 만질 때와 같은 감흥을 느낀다고 한다.

▲ 전시된 작품 (사진제공 : 하형우)

“어느 날 눈썹을 만지는 나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파랑색을 왜 좋아하는지, 왜 이상한 포즈를 좋아하는지, 그 미묘한 경계는 내안에 들어있는 외로움과 반항심이었다”는 것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내가 지금도 충돌하고 있는 경계의 느낌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눈썹만지는 것도 버리고 싶은 행위중 하나지만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눈썹을 만진다며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는 엄마의 자궁 같다고 했다.

▲ Things od the unconscious, mixed media, 110x70cm,2016 (사진제공 : 하형우)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의 세계가 자신의 그림과 맞아 지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는 애매모호함과 경계상에 위치한다는 특성으로 더럽고 비천한 속성들을 드러내고, 반미학적인 추라고 여겨졌던 비참한 것, 꼴불견, 진부하고 우연적인 것, 임의적인 것, 엄청나게 큰 것들과 다양한 불쾌한 현상들로 볼품없는 것, 소름 끼치는 것등이 지배하는 세계로, 우리가 늘 보고 듣고 행할 수도 있는 세계지만 덮어서 감추려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녀는 “내안에 부글거리는 열정을 나만의 색체언어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다. 내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과감하고 독특한 경계를 통해 시대적인 사회이슈나 개인적인 문제를 나만의 시각으로 표현해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다”고 했다.

▲ rebellious child,1450x680(mm),mixed media,2017 (사진제공 : 하형우)

그녀는 육체를 통해 경계에 있는 존재들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 없는 나체로 형상화함으로써 시각을 통한 정신적 체험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작품 속 군상들은 비현실적이지만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흑백 톤으로 보여줘 몽환적이다. 서로 뒤엉켜있는 나체는 얼굴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기괴함으로 드러나 애매모호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지도 이상하지도 않아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자기성찰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뮤즈가 되는 도전적이고 참신한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멘토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갤러리‘카라스’ 관장인 배카라씨는 “황혜정작가는 부끄러움을 시각화할 줄 아는 모험을 즐긴다. 순수하고, 담백하고, 자기색깔이 뚜렷하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황혜정작가의 가능성은 지금부터 시작이다“고 소개하면서 갤러리‘카라스’ 전속작가 1호가 그녀라고 자랑했다.

▲ 황혜정작가와 갤러리‘카라스'관장 배카라씨 Ⓒ정영신

황혜정작가는 오는 2018년 11월부터 상해에 있는 윤아르떼 갤러리에서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있다. 대작부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황혜정작가의 ‘Ambiguous Lines’전은 이태원 경리단길 ‘카라스갤러리’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전시문의 : 카라스갤러리 02-6349-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