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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제전악-장미의 잔상’
2017년 08월 24일 (목) 20:45:42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창립 7년 만에 세 번 째 예술감독을 맞은 국립현대무용단이 2017년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 창단감독이었던 홍승엽의 ‘수상한 파라다이스’(2011)이후 지난 6년간 불란서 샤오니 극장과의 합작품인 ‘나티보스(Nativos)'외에는 의미 있는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던 국립현대무용단이기에 안성수 신임감독의 창작공연에 거는 기대는 컸다. ‘제전악-장미의 잔상’(7.28~30, CJ토월극장)이 기록한 3일간의 전석매진은 이러한 기대의 산물일 것이다.

‘장미의 잔상’이란 매력적인 곡명 앞에 ‘제전악’(music for rites)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다. 제전악은 제사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제목에서 자연스럽게 ‘봄의 제전(Rites of Spring)’이 연상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작곡가(라예송)가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시각화한 안성수의 안무작품인 ‘장미’(2009)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 음악을 안성수가 다시 춤으로 풀어낸 것이다.

춤이 먼저인가 음악이 먼저인가 혹은 이 공연은 춤이 위주인가 음악이 위주인가, 내게는 흥미로운 첫 번 째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안성수는 융합(blending)을 강조한다. 전통 악기로 구성된 창작 춤곡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이고 이를 위해 전통 국악기와 현대춤사위의 융합,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서양춤과 전통춤사위의 융합을 콘셉트로 삼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작품엔 의미가 많다. ‘장미’로부터 시작되어 ‘단’(2013), ‘혼합’(2016)으로 이어지는 안성수의 ‘굿’ 시리즈 완결편이란 의미, 장미가 상징하는 여성성의 의미, 단군신화와 부족국가시대, 삼국시대를 거쳐 미래의 번영까지를 아우르는 역사성 등 여러 가지 상징과 의미들이 기획의도 속에 담겨있다. “60분 작품으로 과연 어떻게?” 이것이 세 번 째 의문이었다.

무대 뒤편에 마련된 2층 높이의 단 위에 다섯 명 악사가 나란히 앉아 있다. 가야금, 대금, 피리, 장구와 해금 연주자들이다. 오고무를 위한 북 11개가 그 아래 놓였다. 비워진 무대에 나직한 음악이 먼저 연주되고 산뜻한 검정색으로 의상을 통일한 남녀무용수들이 등장한다. 태평춤으로 제전이 시작된다.

부족국가시대 제사의식을 재현하는 전사들의 춤에서부터 3명 무용수의 현대화된 오고무를 거쳐 시대를 종단하는 시간여행이 계속된다. 춤이 많은 것이 이 공연의 특색이다. 2인무로부터 독무, 3인무, 4인무가 살짝 삽입되지만 군무 위주인 춤 배합이다.

이주희와 최수진이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양팔을 곧게 펴서 머리 위로 돌리고 한 쪽 발을 들고 가볍게 회전하는 빠른 템포의 춤이 반복된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똑같이 큰 키에 날씬한 신체조건, 작은 얼굴의 무용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춤사위는 기계적이다. 얼굴에 표정이 없으니 춤사위의 자유로움도 없을 것이다. 국악연주에 맞춰 현대춤을 한국적으로 변용한 시도가 후반부 2인무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60분 공연 중 극히 일부분에서일 뿐 장르적 춤사위의 융합이나 음악에 녹아든 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동양적 음악과 서양적 춤이 섞이지 않고 공존한다는 느낌이었다. 전통 국악기만을 사용하여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향기와 잔상을 음악에 담고자 했던 라예송의 고민은 작곡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음악을 다시 시각화하는 데는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평춤으로 시작되어 군무로 확장된 태평춤으로 끝나는 공연은 디베르티스망이 포함된 10개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의상의 변화나 무대미술의 도움 없이 빠른 템포의 춤이 반복되는 미니멀한 무대에서 오고무를 제외하고는 각 단락 간의 차이를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음악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한 최근의 국내작품으로 정영두의 ‘푸가’(2015)가 떠오른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7명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연주해준 70분 작품이다. 김지영, 엄재용, 윤전일 등 안무의 콘셉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최고의 무용수들이 출연했다는 점, 안무가가 바흐음악의 시각화라는 목적에 올인하고 다른 욕심을 섞지 않았다는 것이 ‘장미의 잔상’과의 차이점이다. 안성수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안성수 표 국립현대무용단의 첫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춤사위의 장르적 융합을 시도했고 음악과 춤의 혼합(mixing)이 아닌 융합(blending)을 진지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다. 컨템퍼러리개념을 실험하며 춤추기보다 관객을 세뇌시키는데 열중했던 과거와 확실히 선을 긋고 관객을 위한 좋은 춤을 만들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국립현대무용단 10년을 바라보며 우리 무용사에 남을 명작 한 편이 그에게서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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