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의 음악칼럼]음악의 본질과 문화 2
[정현구의 음악칼럼]음악의 본질과 문화 2
  •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7.08.2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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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프랑스 음악의 역사적 발전도 역시 프랑스 역사의 여러 사건이나 문화상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가 음악사에 등장하기는 위대한 파리 악파가 출현하는 1200년 경인데 그 선두에 선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대가(大家) 레오니누스와 페로티누스였습니다.

미학적 경향으로서나 또는 전체적 조직에 있어서나 이 고예술(古藝術, Ars antiqua)의 시대는 스콜라 체제의 소산이며 그것은 그 당시 철학, 신학, 미술, 문학 등에 걸쳐서 절정에 이르렀고, 모든 것이 교회의 권위에 복종해 있었습니다. 옛 시대의 프랑스 음악에 있어서 제 2의 지파인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및 민스트렐의 노래는 십자군 시대의 노르망디, 부르군드, 남프로방스 지방의 기사도 문화의 산물이었습니다.

16세기의 앙리 4세 시대가 되어서는 프랑스 르네상스는 7시성(詩聖, La Pleiade)이라고 불리어지는 피에르 드 롱사르를 비롯하는 일군의 유명한 시인들과 손을 맞잡고 음악사에 특색있는 표현을 이룩합니다. 앙리 에스페르는 세르통, 그로뎅 드 세르미지, 쟝 쿠르토아, 쟌느캥 등에 의한 이 시대의 매력적인 샹송을 모아서 값진 책을 만들었습니다.

17세기의 프랑스 음악은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의 정치적 상승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베르사이유와 파리의 궁정은 학문,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프랑스 문화의 중심이 되고 프랑스 오페라는 바로 왕실의 오페라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 최초의 대가인 뢸리는 서사작가인 퀴노를 비롯해서 몰리에르, 코르네이유, 라시느와 같은 위재한 극작가들과 밀접하게 손잡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교회음악과 악기의 발전도 마찬가지로 궁정의 보호에 의한 것으로 클라브생 연주자인 쿠플랭은 궁정악사였습니다. 18세기의 프랑스 음악은 그 당시 시대사조와의 밀접한 관련에 바탕을 두어, 명백히 구분되는 세 개의 양식을 지닙니다. 쿠플랭, 라모, 다캥 등의 하프시코드 음악에 나타난 공상적이고 명랑한 로코코적인 상태는 이의 첫 단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1760년 경에 걸쳐서 이 양식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보르테르, 디도르, 마르몽텔 등의 프랑스 백과사전파 사람들의 새로운 합리정신, 그리고 루소의 ‘자연과 단순함으로 돌아가라’라는 외침은 이에 대신하여 나타난 약간 단순 솔직하고 간소한 음악, 특히 루소, 필리도르, 뤼니, 몬시니의 코믹크 오페레타 속에 명백히 나타나 있습니다.

글룩은 뛰어난 창조력에 의해서 자기보다 온건한 선각자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으며, 똰 그의 위대한 후기작품은 18세기의 프랑스의 제3양식에의 과도기를 나타내고, 장중한 표현과 평등•박애•인간성을 추구하는 열정적인 부르짖음으로써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예시하고 있지만 역시 이 그룹에 넣어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글룩 양식의 특징은 작품규모의 크기와 힘찬 클라이맥스, 마음을 흥분시키는 클레센도, 심원하고 정렬적인 표현 등입니다. 그리고 케르비니의 음악에도 이와 같은 경향이 보이는데 이것은 바로 혁병정신의 표현이며 후에 베토벤이 그의 작품에서 한층 더 완전하게 표현하게 됩니다.

19세기의 프랑스 음악에 있어서는 그 영식과 경향이 커다란 정치적 변화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명백히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황제 나폴레옹, 1830년 경의 왕정복고, 1848년의 혁명,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제2제국, 보불전쟁 이후의 프랑스 제국의 몰락, 신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모든 변화가 음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몇몇 음악가의 이름을 헤아려 보더라도 이러한 시대정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변천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케르비니, 오베르, 보옐디외, 마이어베어, 베를리오즈, 알레비, 아당, 구노, 리스트, 쇼팽, 오펜바하, 비제, 생상스, 마스네, 세자르 프랑크, 댕디, 드뷔시의 예를 들면 19세기 프랑스 음악의 여러 경향과 다채로운 양식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악파의 케르비니는 베를리오즈, 마이어베어, 리스트, 쇼팽 등에서 영도(領導)된 낭만파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오펜바하는 아리스토파네스를 축소시킨 것 같은 인물이며 1860년대의 파리 사교계의 경박함을 조소했습니다. 공화국의 성립과 더불어 새로운 것이 생기고 비제와 생상스가 나타났습니다. 관능적인 쾌감은 있지만 감상적인 마스네와 엄숙한 세자르 프랑크는 같은 시대 두 개의 대조적인 성격을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