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아리랑’의 최명경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아리랑’의 최명경 배우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8.24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뮤지컬 ‘아리랑’(조정래 원작, 고선웅 극본 연출)을 보았습니다. 2년에 초연되었을 때보다, 한결 성숙한 작품이 되었더군요.

극본과 음악은 거의 그대로지만, 안무(안영준)와 조명디자인(류백희)이 달라지면서, 작품에서 매우 입체적인 역동성이 보였습니다. 무릇 ‘아리랑’을 내세운 작품이라면 단연 그래야겠지요.

당신은, 그 때도 이번도 지삼출 역할입니다. 당신은 적역입니다. 당신 안에는 농민과 의병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뮤지컬 ‘아리랑’ 무대에 당신이 북을 들고 등장을 했을 때 뭉클 했습니다. 당신은 참 북과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장구가 세련되었다면, 북은 투박하지요. 진솔하고 강력합니다.

무대에 등장한 당신을 보면서, 오윤(1946~1986)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목판화가 보였습니다. ‘북’이라는 목판화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의 작품과, 당신의 북을 치면서 무대를 활보하는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오윤의 목판화 속 얼굴은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도저히 분노를 감내하기 어려운 얼굴입니다.

본디 심성이 곧고 뜨겁기 때문입니다. 최명경, 당신이 딱 그런 사람이지요. ‘아리랑’에서 지삼출이 그런 사람이지요. 뮤지컬 ‘아리랑’에서 당신은 송수익(서범석, 안재욱) 옆에서 지삼출 역할을 참으로 잘 해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지삼출을 보면서, 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삼출 혹은 최명경은 ‘만적’과 같은 인물입니다. "장군과 재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우리만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일해야 하는가." ‘고려사’에 전하는 만적을 보면, 그가 훗날의 지삼출이요, 최명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뮤지컬 ‘아리랑’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주인공이죠. 지삼출(최명경)을 노래를 시작하려다가, 무대 앞으로 걸어나옵니다. “아~ ” “아~” 혼자 음정을 잡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나 첫음 쪼까 잡아 줄라요?"

관객들은 여기서 뭔가 ‘무장해제’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뮤지컬 ‘아리랑’을 보면서 뭔가 아쉽던 게, 풀려가는 느낌입니다. 당신의 이 말 한 마디와 당신이 첫 시작을 알리는 ‘진도아리랑’을 통해서 그렇습니다. 당신이 노래하는 이 장면은 뮤지컬 속의 ‘마당극’같다고나 할까요?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 ‘진도아리랑’의 원형의 가사로 추정되는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은 다 같이 제멋대로 노래하며 하나가 되고, 관객들도 이제 마음 편히 이 작품 속 마당에 동참하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최명경배우, 당신은 평소에서 욕을 아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어쩌면 그렇게 ‘차지게’ 욕을 잘 하십니까? 그래요, 우리 보통 쓰는 말로 참으로 ‘찰지게’ 욕을 잘 하시더군요. 그 욕 한마디가, 연설보다 노래보다 더 큰 무게감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욕이라는 것이 신음을 대신하고, 고함을 대신한다는 걸, 당신은 새삼 확인해 주었습니다.

배우 ‘최명경’하면 많은 사람이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역으로 각인되어 있죠. 그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분명 북쪽에 저런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죠. 그 역할을 바로 영화에선 송강호였습니다. 모두 참 잘 하는 배우들인데, 당신은 그 배우만큼 ‘뜨지’ 못해서 아쉽게도 하지만, 당신은 별반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당신의 정서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습니다. 이런 당신을 “극(劇)에서 극(極)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 확언할 수 있는 건, 당신이 작품과 무대에서 ‘나쁜 놈’이나 ‘이상한 놈’을 연기한다해도, 그 사람을 결국  ‘좋은 놈’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흔치않은 배우’라는 점입니다.

당신을 보면서, 과거 ‘주먹’이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립니다. 박노식(1930~1995)이란 배우를 떠올립니다. 큰 형님으로 모시기엔 뭔가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본성과 유머를 갖춘 그에게서 늘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거죠. 당신이 지향하는 배우가 큰 형님과 같은 장동휘(1920~2005)일질 몰라도, 나는 당신이 박노식을 닮아주길 더 바랍니다. 늘 욕설과 유머를 통해서 관객에게 ‘사이다’가 되어줄 수 있는 배우말입니다. 

최명경이라는 배우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반영한 ‘남성상’이 잘 그려지길 바랍니다. 조광화가 그려낸 작품 속의 ‘남성’과는 또 다른. 역사에도 존재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남성! 거칠고 까칠하지만, 실제론 섬세하고 속 깊은 남성! 최명경이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최명경배우가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 뮤지컬 ‘아리랑’, 2017. 7. 25 ~ 9. 3.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