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한국문화원‘아방가르드 선구자 김구림’ 끝끝내 ‘디스’
주영 한국문화원‘아방가르드 선구자 김구림’ 끝끝내 ‘디스’
  • 이은영 기자/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8.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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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렛 ‘눈가리고 아웅’ 수정으로 마무리, 용호성 원장 2차 질문, ‘모르쇠’

'특정 작가'를 띄우며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김구림 화백을 외면한 주영한국문화원.(본지 7월 12일자 1면) 그들은 전시가 끝나도록 끝내 문제를 외면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가 지난 7월 주영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아방가르드 리허설’ 전시의 문제를 지적한 후 후속 취재를 하는 가운데 주영한국문화원은 리플렛을 수정했다고 김 화백에게 보내 왔다.

수정된 리플렛의 편집도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 조차도 전시 마지막 날에서야 전시장에 비치했다. 그 내용 또한  여전히 김구림 화백을 푸대접한 채 특정 작가를 띄우는 기조를 이어갔으며 재 발간한 이후의 문제를 지적한 본지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던 사이 문제의 전시는 지난 19일 종료됐다.

▲ 2015년 영국 테이트모던에 초청받아 전시와 함께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한 김구림 화백

지난 6월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김구림 화백이 당시 전시의 편파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항의하고 이어 본지<서울문화투데이>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주영한국문화원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자, 문화원 측은 문제가 된 소책자를 전면 폐기 처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와 동시에 문화원은 소책자 폐기와 함께 새로이 책자를 발간하겠다고 김 화백에게 약속했다. 

당시 문화원은 소책자 두 권을 제작했는데 그 중 한 권에는 김구림이란 이름이 아예 빠져있고 나머지 한 권의 참여 작가 소개에는 나오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한국의 아방가르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기술되지 않았다.

대신 그 소책자는 국내 유명 화랑 소속 특정 작가 두 사람의 작품 소개가 표지 앞뒷면과 내지 앞 면 두 페이지에 걸쳐 나왔고 퍼포먼스 안내는 물론 큐레이터의 글 내용에도 그들 작가를 부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소책자에는 김구림의 작품 <1/24초의 의미>가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한 평론가의 글을 실었다. 전시장에는 김 화백의 작품이라고 소개가 됐지만 소책자에는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책자는 <1/24초의 의미>가 김구림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故 김미경 교수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 주영한국문화원은 김구림 화백에게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문화원은 이 문제를 책자의 최종편집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의 큐레이터 빅터 왕의 잘못으로 돌렸지만 빅터 왕은 지난 7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는 단지 도록과 전시가이드 내용에만 참여했고 김 작가와 접촉한 적도, 김 교수의 원고를 본 적도 없다. 책자를 만드는데도 많은 기여자와 편집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밀려난 김구림, 큐레이터 글 뺀 것으로 눈가림

이런 일들이 계속 드러나자 문화원은 소책자 폐기를 이야기했지만 막상 이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후속 취재 결과 리플렛을 새로 제작한다고 약속했던 문화원은 막상 전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새로운 리플렛을 발간했다. 그런데 '고쳤다'는 리플렛 역시 김구림 화백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여전히 특정 작가의 퍼포먼스만 부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페이지 수도 절반 이상으로 줄여지고 표지는 작가의 작품은 넣지 않고 블랙으로 처리했다. 결국 문화원의 '수정 약속'은 단순히 김 화백을 달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원의 전시팀장인 문지윤 큐레이터는 지난 7월14일 김 화백에게 보내온 메일을 통해 “매우 서두르고 있지만 디자이너와 사전에 약속된 작업이 아니어서 재촉하는데 한계가 있는 상황임을 이해 부탁드린다. 최선을 다해 재인쇄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18일)까지 시안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메일이 온 다음, 표지를 뺀 최종 시안도 거의 2주가 지난 26일에 보내왔고, 거듭된 김 화백의 요청에도 답이 없다가 8월 5일 경에 보내온 표지는 앞 전의 특정 작가 작품으로 앞뒷면을 채운 것과는 달리 블랙바탕에 전시 제목만 덩그라니 얹혀 있었다. 

▲ 지난 책자의 표지(위)와 수정된 책자의 표지, 특정 화가의 그림을 지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내용 또한 특정 작가에 대해서는 '전위예술의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의 활약이 거의 아방가르드의 중심'이라고 기술을 했다. 하지만 김구림 화백의 경우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라는 말은 역시 빠져 있고 유명 비엔날레 작업이나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작업했다는 부분만 기술했을 뿐 '소장 후 초청공연' 등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김 화백을 부각을 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또한 문화원의 주장대로 빅터 왕이 전체 총괄 큐레이터였다면 김구림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일부에서는 "문화원이 김 화백에 대한 글이나 내용을 못 넣게 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은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문화원이 새로 만들었다는 책자는 문제가 된 큐레이터의 글을 뺀 것으로 김구림 화백에 대한 오류를 수정했다고 하지만 문제는 글의 삭제만이 아니라 김 화백에 대한 제대로 된 언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구림 화백이 원한 것도 제대로 된 소개지 전체 큐레이터들의 글 삭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화원은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고 삭제를 하는 것으로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와함께 현재 전시장 내 작품 텍스트에 얼마전 작고한 고 정강자 화백과 김구림 화백이 ‘우리나라 최초로 바디페인팅 작가”라고 기술해 놨다. 이는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이에 대한 근거 또한 용원장에게 보내는 질문지에 포함시켰지만 이 또한 답변이 없는 상태다.

본지는 지난 8월 10일 용호성 문화원장에게 2차 질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어 재차 답변을 촉구했지만 용 원장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당시 구체적인 답변으로 해명하던 모습과는 달리 여론이 잠잠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고 전시가 끝난 상황에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라는 말이 반드시 첫 문장에 들어가고 그의 그림이 앞뒤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테이트모던에 두 점이나 소장된 김 화백의 작품은 테이트모던에 두 작품이 소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초대된 내용을 비롯해 여러 비엔날레에 초대, 작품의 소장처 등도 구체적으로 밝혔어야한다"고 전했다. 작가 리스트에 있어서도 김 화백의 이름은 중간 쯤 들어있다. 가나다 순도 아니고 ABC 순도 아닌, 나이순도 아닌...그렇게 배열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합리성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 책자의 이름 순서. 김구림의 이름이 뒤로 밀려났다

문화원은 지난 답변에서 김구림 화백의 홀대에 대해 "김 화백은 이미 영국의 미술관계자 및 전문가들에게 이미 소개가 된 분이다. 문화원은 같은 작가를 연이어 초청하기보다는 아직 런던 미술계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를 초청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김 작가의 작품을 게시하지 않고 특정 작가의 작품만으로 소개를 했어야하는 것이 옳았지만 문화원은 '아방가르드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도리어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를 홀대한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또 다른 맥락의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인지 강한 의문”

이에 대해 김찬동 전 백남준아트센터 본부장은 "한국현대미술사의 현장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젊은 큐레이터들이 부족한 연구 경험과 역량으로 한국미술의 실체를 왜곡해 김 화백은 물론 당시 활동한 작가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고 말하면서 "더 큰 문제는 특정 작가를 의도적으로 격하시키려는 이번 전시가 단순한 무지의 소치가 아닌, 상업적 메카니즘과 결탁된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는 일반인들도 인지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학연과 무관하게 평생을 재야작가로 실험적 작업에 헌신해온 김구림이 또 다른 맥락의 블랙리스트 명단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한 전시기획자는 앞서 나온 책자를 보고  “주영한국문화원 리플렛은 교묘하게, 은밀하게 '김구림 약화시키기'를 통해서 한국 아방가르드를 미술사에 등재할 때 김구림 작가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 같다” 며 “문지윤 큐레이터의 글은 60-7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실천을 심각하게 편향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빅터 왕의 글이 앞서 언급한 특정 화랑의 전속작가인 두 작가 쪽으로 기울어져, 편향과 왜곡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청탁받을 때의 암묵적 지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음모론'이 개입할 충분한 심증, 내지는 방증이 있는 리플렛 내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김구림 화백이 분노할 근거와 이유가 충분하다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주영 한국문화원의 ‘김구림 홀대’ 사건은 문제가 된 소책자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고쳐 놓고 전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문화원의 입장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 버티면, 문제되는 부분은 그냥 지우고 살짝 고치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어물쩡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이미 전시가 끝났으니 더 이상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는 끝났지만 의혹은 끝나지 않았다. 문화원의 이러한 문제는 계속해서 전해지고 또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소치’라고 하기에는 그 상황상황 하나가 마치 하나의 각본처럼 짜여져있다. 게다가 ‘새로운 블랙리스트’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면 이 문제는 다시 화두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공공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편파적으로 특정 작가를 띄우기를 노골화 한 것에 대한 소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번 전시의 총책임자는 용호성 원장이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용 원장이 앞서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에 보내온 답변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답변이다. 

용호성 원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문화예술전문가다. 특히나 미술은 그의 관심이 더욱 높은 분야다. 그의 저서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뉴욕대와 미국미술품감정협회(AAA)에서 공동운영하는 미술품감정 Certificate 과정을 수료하고 미술품 감정사가 되기 위한 관문인 USPAP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더구나 용호성 원장은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목돼 지난 5월 ‘김기춘 ·조윤선 블랙리스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까지 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을 지내는 동안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목됐다.

 그 유명한 ‘박근형 연출의 국립국악원 공연배제’도 그가 주도했다고 알려졌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주영한국문화원장으로 발령받아 가자 정영두 안무가는 영국 런던의 주영한국문화원 앞에서 용 원장의 해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장기간 벌이기도 했다. 이후 문화예술단체는 그를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용 원장은 지난 5월 ‘김기춘 조윤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정부 비판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지원 배제 움직임을 견딜 수 없어 청와대에 더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뉴욕 주재 한국문화원장직에 지원했는데, 임명 5일을 앞두고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던 그다.

해외에서 한국의 아방가르드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특정 작가에 의해 선구자가 가려진 상황에서 그들은 한국의 아방가르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미술 관객들에게 문화원은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사건을 그저 ‘여기서 끝’이라고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