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1900년 고종황제 칙서에 이미 '우리땅' 증명했다"
"독도, 1900년 고종황제 칙서에 이미 '우리땅' 증명했다"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7.09.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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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심포지엄 '독섬, 石島, 獨島 고흥의 증언' "울릉도 주민들 '돌섬', 독도 일컬은 말 '조선어사전'에 나와"

"울릉도 주민들이 '돌섬'이란 뜻의 '독섬'으로 이 섬을 불렀고 관리들은 그 뜻을 살려 '석도(石島)'로 표기했다.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표기된 석도가 바로 '독도'다".

지난달 2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는 학술심포지엄 '독섬, 石島, 獨島 고흥의 증언'이 열렸다. 전라남도 고흥군과 우리문화가꾸기회가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서는 1900년 고종황제 칙령을 통해 독도가 이미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이 명시가 됐으며 이를 일컬었던 말들의 역사를 통해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진행한 이동식 우리문화가꾸기회 이사

심포지엄을 주최한 박병종 고흥군수는 인사말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문헌적으로나 엄연한 대한민국 땅이며, 고흥인의 혼이 서린 땅이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왜곡 교육 의무화를 앞당기고 10년 넘게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담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박 군수는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분쟁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실효적 지배보다는 영유권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독도는 영원한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며, 앞으로 대대손손 후대에게 물려준 우리땅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동식 우리문화가꾸기회 이사는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편입고시를 근거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발표한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편입하고 죽도와 석도가 그 부속도서'라는 고시가 있다"면서 이미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이 먼저 천명됐다고 밝혔다.

이 이사는 "그동안 석도가 독도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를 입증할 문헌이나 기록을 내놓지 못했는데 1938년 조선어사전에서 이를 밝혀놨기에 이제 당당하게 석도가 독도라고 국제적으로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한 뒤 "이 조선어사전이 일본 측에서 기록한 것이 있고 그것도 당대 최고의 일본인 학자인 오구라 신페이가 발표한 것이 있다고 하면 일본도 더 이상 '독도무주론'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가 소개한 오구라 신페이는 <향가 및 이두의 연구>를 통해 당시 우리 손으로 해독도 하지 못하고 방치된 향가를 해독하고 전국 각지의 방언을 연구한 <조선 방언의 연구>를 남긴 학자다.

오구라 신페이는 <조선 방언의 연구>에서 '石(석)'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발음에 대해 지역에 따라 '돌[tol], 독[tok], 둑[tuk]'으로 다르게 발음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 이사는 "울릉도 재개척 정책에 의해 이주한 전라도, 경상도의 남해안 출신 어민들이 '돌섬'이란 뜻의 지역말인 '독섬'으로 불렀고 관리들이 그 뜻을 살려 한자어인 '석도'로 표기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로 인해 석도가 독도임이 증명됐고 '주인없는 땅'이 아니라 우리 영토로 고시된 곳이라고 밝혔다.

이종훈 춘천교대 윤리과 교수는 문세영 선생의 <조선어사전>에서 '독'이 뜻으로 보면 돌의 사투리 '石'이고 아울러 '독'을 한자로 쓰면 '毒', '獨'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면서 "이는 독섬과 石島, 獨島가 동일한 섬으로 밝힐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 대한 평가는 물론 인식조차 희미해진 이유는 이희승이 '사전 자료를 다른 학자가 작성한 원고의 태반을 빼돌려 도용했고 물질적 사례는 커녕 공저로 표기하거나 감사의 말조차 없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라면서 "더 이상 숭배에 의한 논증, 심지어 위력에 의한 논증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문세영 <조선어사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독도를 '독섬', '석도'로 병행해 부르기 운동을 실시하고 모든 지도 등에 명기해 제도화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해야한다"고 제안했으며 문세영과 <조선어사전>에 대한 전면 재평가 작업과 더불어 '고종황제 칙령과 그 관보', '조선어사전(초판)' 등 독도관련 중요문헌을 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훈석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는 안용복과 뇌현 스님, 그리고 9명의 용사들 등 동해 항로를 개척한 사람들과 '18세기 울릉도는 조선의 산업기지'라고 밝힌 라페루즈, 시볼트가 남긴 조선에 관한 기록물 등 역사들과 함께 전남 고흥에 남아있는 '독섬'의 모습과 '흥양전선소(조선소)'를 시찰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그리고 고흥 노인들의 증언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와 자료들을 소개했다.

이 대표는 "해마다 어선과 연안선(보재기배)이 일본에 표류했다는 시볼트의 기록대로라면 울릉도와 독도에 선박건조와 미역 전복 등 해조류 채취가 매년 계속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 증명된다"면서 "돌섬을 독섬이라고 부르던 전라도 고흥 사람들이 명명한 '독섬'이 자연스럽게 200년 가까이 불리게 됐고, 이 이름이 황제의 칙령에는 '석도'로 쓰였고 울도군수의 보고서에 '독도'라고 쓰이게 된 연원이 그리 짧은 세월에 축적된 것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광범위한 역사의 그물을 쳐, 역사의 작은 편린들이라도 낱낱이 모아 독도가 왜 한국 영토인지 명확하게 밝혀야할 것"이라면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독도 방어는 다음 세대에 더 큰 짐을 지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에서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은 울릉도를 발견한 라페루즈의 <세계일주 항해기>의 번역 오류를 지적하면서 "라페루즈는 울릉도 전체가 아닌 울릉도 주변의 해안 일부를 관찰했다고 썼다. 2016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펴낸 <라페루즈의 세계일주 항해기 1>에도 번역 오류가 발견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번역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부회장은 "울릉도에서 배를 만들던 사람들이 전라도 고흥 사람들이라는 것을 현지조사로 알아내고, 그 후손의 증언을 청취한 것은 학술적으로 중요한 성과"라면서 "앞으로 이를 확대해 고흥 사람들이 어떠한 경로로 고흥과 울릉도를 왕래했으며, 울릉도 어느 것에서 기거하며 배를 건조했는지 학술적 조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충진 경상북도 독도홍보사무관은 "'돌섬=석도=독도'와 관련해 폭넓은 언어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함께 독도와 거문도와의 관계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전 사무관은 "오는 10월 18일 울릉도 독도 조업의 내용이 담긴 '거문도 뱃노래'를 울릉도에서 공연하고 '거문도 어민 독도 조업 학술보고회'를 열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독도와 고흥반도'의 연구가 본격화되고, 보다 다양한 조사 자료들이 발굴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