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 미술작품의 꽃이 핀다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 미술작품의 꽃이 핀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9.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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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 다양한 작가들이 펼치는 '덕수궁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연결'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덕수궁.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근대국가로 거듭나려던 덕수궁의 모습과 그 주변에 설치된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이제 미술작품의 꽃이 피고 있다. 바로 지난 1일부터 열린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함께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2년 덕수궁에서 열린 <덕수궁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궁궐 프로젝트로 참여 작가들이 덕수궁 내 공간 곳곳을 탐구하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작을 구상, 제작, 설치하는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 전시로 특히 올해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 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 접근을 시도했다.

▲ 양방언x장민승 <온돌야화>

대한문으로 입장한 관객들은 중화전 앞 행각에서 양방언-장민승의 <온돌야화>를 만나게 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은 양방언과 미술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이면서 황신혜밴드 멤버이기도 한 장민승이 함께 한 이 작품은 기록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근대 시기의 건물 및 생활상들을 재발굴해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으로 풀어낸다.

마치 근대시절 삼각대를 세우고 천 안에 들어가서야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들어서게 되면 양방언의 음악과 더불어 장민승이 풀어놓은 근대 당시의 사진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거닐었던 그 길이 100여년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료사진이 양방언의 음악과 함께 소개되면서 잠시 100여년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착각을 하게 한다.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과 복도에는 김진희와 정연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석조전 계단에 수놓아진 것은 전자기기 속에 들어있는 부속품들이다.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재가공하는 김진희의 <딥 다운-부용>은 해체된 전자기기 속에 들어었던 부속품들과 그것들을 다시 조립해야 나올 수 있는 라디오 속 국악(혹은 클래식)을 함께 선보인다. 바람소리를 잡아내고 그 소리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가 석조전과 또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복도에는 정연주의 <프리즘 효과>가 있다. 사진 4점이 있다. 네 개의 시선으로 보는 고종황제와 어린 덕혜옹주의 모습이다. 네 장의 사진은 각각 다른 시선으로 찍혀있다. 고종이 딸을 지키려는 시선, 침략자들이 고종황제를 바라보는 시선, 그 모습이 담긴 작품을 큐레이터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시선 등 한 피사체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 눈길을 끈다.

석조전을 지나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이층 건물 석어당에서는 권민호의 <시작점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참, 이 프로젝트 전시 기간 중에는 전시작품이 있는 곳의 내부 입장이 가능하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덕수궁 건물의 내부 모습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미술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곳과 전시 작품이 어우러진다. 이 어우러짐을 느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포인트다. 미리 알려둔다.

▲ 권민호 <시작점의 풍경>

권민호는 대형 드로잉을 선보인다. 얼핏 덕수궁 대한문을 그린듯하지만 이 속을 보면 서울역, 적산가옥, 최초 증기기관차인 모갈1호, KTX, 골목 풍경 등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게다가 그림 뒤에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낮에 봐도 좋지만 밤에 가면 더 운치가 있는 전시다. 드로잉 작품 하나에 백년의 역사,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역사가 다 들어있다. 자세히 봐야, 저녁에 봐야 느낌을 알 수 있다.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사용되던 덕흥전에는 강애란과 임수식의 작품이 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역시 덕흥전 내부의 모습에 먼저 취한 상태에서 이들의 작품을 본다. 

조선왕조실록, 고종황제가 즐겨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근대에 들어온 외국 소설 및 한국 문학 작품들이 놓인 황제의 서고를 라이트 북 작업으로 상상을 보태 재현한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현존하는 인사들의 책가도를 병풍 형식으로 표현한 임수식의 <책가도389>가 있다. 근대의 공간에서 만난 황제의 서고와 현대 인사들의 서고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 강애란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

이제 마지막으로 고종황제의 침전이자 승하한 장소이기도 한 함녕전으로 들어선다. 이 곳에는 구한말 일제의 강압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렸던 고종의 심경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한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불면증 & 불꽃놀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았던 함녕전 행각으로 향한다. 

이 곳에는 오재우의 VR 작품 <몽중몽>이 있다. 관객들은 행각 내부에 앉거나 누워서 덕수궁의 이미지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고 VR 안경을 쓰고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에서 옛날 벼슬아치들처럼 앉거나 누워서 작품을 감상하는 현대적 풍류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은 미술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덕수궁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청 앞을 지나가면서 흘낏 보고 말았던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안에 들어가도 막상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 없어 그저 겉모습만 바라보고 사진찍고 지나가는 것을 떠나 건물 내부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낮에 보는 모습과 밤에 보는 모습이 다르다. 시간이 난다면 저녁 시간을 이용해 관람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 오재우 <몽중몽>

덧붙여, 비단 미술작품 관람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건물 내부를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어떻게든 우리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대한제국의 꿈이 덕수궁에 묻어있다고 보여지기에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면 내부를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가 단순히 특정 기간의 전시를 떠나 고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