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순항은 할 것이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순항은 할 것이다. 그러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9.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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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강조한 김동호 강수연 ‘무엇을 책임지는지’ 말 없어, 여전히 ‘안갯속’인 영화제

"무슨 이유건 어떤 상황이건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한다. 제가 없었을 때 일어난 일도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된다면 지금의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11일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회견 내내 '책임'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들은 모두 이번 영화제가 끝나는대로 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갈등을 빚은 것을 시작으로 정관 개정을 둘러싼 영화인들과의 갈등과 보이콧, 그리고 최근 강수연 위원장의 '소통 부재'를 비판한 사무국 직원들의 성명까지 등장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부산국제영화제였기에 이들의 사퇴 선언은 분명 관심의 대상이었고 개폐막작이나 프로그램보다는 이들의 거취가 기자회견의 중심이 됐다.

▲ 11일 기자회견을 가진 강수연 집행위원장(왼쪽)과 김동호 이사장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현재의 정관, 김동호 복귀 돌파구 될 가능성 보여

이날 김동호 이사장은 "지난해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민간에게 넘기겠다고 발표한 직후 후임 조직위원장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부산은 원래 저는 안된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영화제가 개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계를 정상화시켜달라는 많은 요청으로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다"면서 "민주적이고 자율적, 독립적인 정관으로 개정하고 지난해 영화제를 치른 것으로 1차적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관 개정 문제는 영화인들의 큰 불만사항이기도 하다. 정관은 이사장이나 집행위원장이 다 부재시 이사회에서 이들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사회를 이끄는 18명의 이사진 중 9명이 부산시 관계자, 나머지 9명은 이사장,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영화인이라는 점이었다.

영화인들은 이 정관 내용만으로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김 이사장은 "동수가 나올 경우 영화인들의 의견을 우선으로 하도록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영화제로 바꾼 결과임을 주장했지만 영화인들의 불만은 바로 서병수 시장의 사과 없이 결국 부산시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김 이사장은 이날 회견에서 "부산시 관계자 중 부산시 대표는 행정부시장 한 명이고 그분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이사다. 나머지는 교육감, 상공회의소 회장, 부산 후원회 회장, 대학 총장 등 이런 분들이고 개인 자격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전혀 부산시나 부산 이익단체를 대표하는 의사가 수용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가 물러난다해도 지역분들이 부산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서울의 영화인들이 영화제 상황을 너무 잘 알기에 이사회와 총회에서 현명하게 선임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장 이들이 물러난 후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집행위원장도 모두 물러난 상황이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중심을 잡을 이가 마땅치 않다. 결국 동수의 이사진이라해도 부산시에 모든 부분을 내주는 셈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 정관의 내용이 결국 김 이사장이 다시 영화제로 돌아오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시의 이사진들이 '그래도 김동호'라는 주장을 펼 수 있고 위원장들이 모두 떠난 영화인들이 수적으로 밀리게 되면 김 이사장이 다시 영화제를 맡게 될 가능성이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김동호 이사장의 경우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도 요직을 맡고 있다. 김 이사장은 사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옮기는 것 뿐이다. 여전히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책임지고 물러난다. 영화제 무조건 해야한다” 반복의 연속

앞에서 두 사람은 '책임을 진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책임지는 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지금의 책임자니까 물러난다'는 말의 연속이었다.

▲ (왼쪽부터) 강수연 집행위원장, 개막작 <유리정원>의 신수원 감독과 문근영 배우, 김동호 이사장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위원장은 "어떤 이유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화제를 해야한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처음 시작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3년 내내 매일매일이 위기였다. 개최에 대한 불신을 갖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도와달라. 영화제를 무사히 치러야 향후 자랑스로운 부산영화제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며 영화제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부탁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의 사퇴를 야기했던 '사무국과의 소통 부재'에 대한 사과나 해명은 이날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 없이 그저 '지금 영화제를 이끄는 사람이기에 책임지고 물러난다'와 '무슨 일이라도 영화제를 치러야했다' 이 두 마디만 한 셈이었다. 두 사람 모두 '무엇에'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2012년 회계상의 착오나 잘못된 판단 등에 대한 문제가 지금 불거졌는데 그 문제는 우리 둘 다 없었던 때지만 지금의 책임자로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전임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문제로 나가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고 "소통이 안된다는 이유로 강 위원장이 왜 그만두어야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며 사무국 직원들을 에둘러 비판하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그래도 영화제는 움직인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비었다...

▲ 개막작 <유리정원>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그래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움직인다. 올해 개막작은 <명왕성>, <마돈나> 등으로 각종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신수원 감독의 신작 <유리정원>이다. '동물적 욕망과 질서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식물로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가슴아픈 복수극'으로 소개되는 이 작품은 병으로 한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던 배우 문근영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폐막작은 대만의 감독 겸 배우인 실비아 창의 <상애상친>이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은유적으로 관통하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개막작과 폐막작이 모두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75개국 298편의 초청작,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29편이 이번 영화제에 소개되고 정재은 감독의 <나비잠>,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마더!>, 유키시다 이사오의 <나라타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 번째 살인>이 갈라 프레젠테이션으로,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가 새로 선을 보이는 '뉴 커런츠' 10편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영화의 광장으로 인식시킨 '아시아 영화의 창'과 더불어 '한국영화의 오늘'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감독판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한국영화 회고전'은 한국영화계의 영원한 스타인 신성일의 대표 출연작 8편을 선보인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부산을 찾고 <마더!>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과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부산에 온다. 허우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지아장커, 바흐만 고바디, 아오이 유우 등 부산의 단골손님들도 잊지 않고 영화제를 찾는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주요 상영작에서 중동이나 제3세계 영화가 많이 줄어든 대신 중국과 일본, 특히 일본영화에 치우친 듯한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제 측은 "일본영화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고 강수연 위원장도 "하나의 흐름이다. 편중은 의도적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폐막작 <상애상친>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그런 점에서 이번에 주목할 것은 역시 故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빈 자리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든 이 중 하나였으며 영화제와 영화인을 중재하고 아시아 영화, 특히 중동의 영화들을 발굴하면서 오늘날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세운 그가 지난 5월 갑작스럽게 타계했고 그 빈 자리가 이번 프로그램에서 드러났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물론 이번 영화제에서 그를 기억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가 생전에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아시아 독립영화인 네트워크 '플랫폼부산'이 이번에 런칭되며 '아시아 영화의 창'에 초청된 월드프리미어 영화를 대상으로 '지석상'을 수여한다. 

결국 올해는 일단 순항을 할 듯하다. 여전히 영화인들의 보이콧 문제가 걸림돌이기는 하지만 영화제를 치르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이상 영화제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앞으로가 문제다.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어떤 일이 또 벌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전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안갯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