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인사들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편지'의 울림
유명 인사들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편지'의 울림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7.09.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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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55인의 편지 150통이 담겨진 최정호 교수의 책 '편지'
 

평생을 언론과 대학에 몸담아온 최정호 교수가 평생동안 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이미 작고한 55인의 편지 150통을 공개한 책 <편지>(열화당)가 출간됐다.

이 편지는 최정호 교수가 독일 유학 시절 알게 된 독일 현지의 인사들부터 귀국 후 한국에서 사귀었던 지난 시대의 학자, 언론인, 문인, 화가, 음악가, 정치인, 출판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먼저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며 '삼일운동의 제34인'으로 불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편지가 있다. '삼일운동의 제34인'이라는 표현은 바로 최 교수가 1958년 한국일보 편집기자 시절에 기사에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5.16 쿠데타 직후 서울대 영빈관에 머물던 스코필드 박사는 서독 유학 중인 최 교수에게 "서울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갖가지 부패가 사라지고 있다. 드디어 우리는 성실한 정부를 갖게 됐다. 나는 박정희 장군을 매우 존경한다"라고 편지에 남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언니 바르바라 도너의 편지도 있다. 이 대통령 서거 직후 최 교수가 보낸 조문 편지에 대한 답장인 이 편지에서 바르바라 도너는 "이 박사에게 가장 심각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을 기억하는가? 분명한 것은 그 일격이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아무 축복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편지>에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를 비롯해 철학자 박종홍, 미술사학자 김원용, 민중신학자 안병무, 역사학자 고병익, 언론인 천관우 송건호 이규태, 학자 리영희, 화가 이응로,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완서, 극작가 신봉승 등의 편지가 실려있다.

김원용이 남긴 친필 그림 연하장과 리영희 선생이 털어놓은 시인들에 대한 추억,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아홉 통의 편지가 실린 이규태 조선일보 대기자, 이헌조 전 LG 회장과 최정호 교수의 진한 우정, 하이델베르크에서 귀국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털어놓는 안병무의 한숨, 이역만리 파리에서 동양화를 그릴 종이를 구하지 못해 종이를 부탁하는 이응로의 세심함 등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 서두에는 책을 엮은 배경과 함께 편지에 관한 최정호 교수의 담론이 담긴 '편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가 실려있다. 최 교수는 "서간문화의 선진국이었던 우리가 당대에 와서는 편지를 잘 쓰지도, 잘 간수하지도 않고 있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바로 그 아쉬움이 이 책을 엮어내기로 한 동기"라고 배경을 밝히고 있다.

최 교수는 "편지를 쓰고 받고 간직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선대로부터 이어온 오랜 관습이요 전통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 와서도 그를 이어가는 것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겠구나 하는 것을. 만일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해준다면 책을 펴낸 사람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책은 세 파트로 나누어 말미마다 편저자의 수록필자 소개 글이 실려 있고 오늘날 갈수록 희귀해져가는 육필 편지의 뜻과 값진 모습을 살려보기 위해 수록된 모든 편지의 원본 이미지와 함께 활자화된 텍스트를 곁들였다.